무등산 뒷고개를 넘다 보면 김삿갓이 썼다는 樂山樂水라고 적힌 비석이 있다.


남녀가 호젓한 그 산길을 걷다가 여자가 물었다.


오빠 저게 무슨 말이야.락산락수야 남자가 말해주자 아!여자는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남자를 보았다.


혼자 족두리봉을 오르는 길에 토끼봉 약수보다 맑은 오래전 그 여자의 예쁜 눈이 생각났다.


-이창수 '樂山樂水(요산요수)'전문








사랑은 맹목적이어야 아름답다.


조건이나 논리가 따라 붙으면 순수를 잃고 빛이 바랜다.


설명 같은 것은 더욱 필요없다.


이 시에서 맑은 영혼을 가진 여자가 남자친구에게 보내는 무한한 신뢰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비록 배움이 짧고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다 한들 어떤가.


봄 햇살에 움트는 연녹색 잎처럼 순수한 믿음으로 이뤄진 사랑은 같이 있다는 것 만으로 충분하니까.


시인은 우리의 삶 곳곳에 파고든 하드코어 문화에 밀려나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박꽃 같은 사랑을 회상하며 '진짜 사랑'의 부재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