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가 '反기업정서' 부추긴다] 초중고 경제교육 '오류 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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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사람이 아닌 돈이 투표하기 때문에 비인간적일 수 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나 운명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제도 때문…."
"기업과 개인은 법률을 위반하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이는 구성원간 신뢰를 저해하고 공정경쟁을 방해…."
재경경제부가 한국개발연구원(KDI) 등과 공동으로 분석한 초·중·고교 경제관련 교과서엔 어린 학생들에게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체제,기업에 대해 나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문제성 내용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됐다.
일부 교과서는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경쟁만을 중시해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체제이고,기업은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악의 화신 처럼 묘사하기도 했다.
반면 기업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사회적 공헌 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시민단체 등은 악한 재벌을 견제하는 정의의 사도처럼 표현하는 등 상당수 교과서들이 균형감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곳곳에서 시장경제 원칙 왜곡
D사가 출판한 고교용 경제 교과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가난에서 탈피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가난이 개인의 책임이나 운명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제도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는 인식이 지배적이다"고 기술했다.
가난을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사회 탓으로 돌리는 듯한 표현이다.
이는 학생들에게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수정이 필요한 대목으로 꼽혔다.
세계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적지 않았다.
한 교과서에는 "지난 1968년 24개였던 최빈국 수는 30년이 지난 1999년 49개로 배 이상 증가했다"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군소 신흥독립국이 늘어나 최빈국 수가 증가한 사실은 간과해 사실을 오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반면 시민단체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D사 교과서는 "시장의 실패를 보완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각종 시민단체에 의한 활발한 시민운동이다.
시장의 성과를 개선하기 위한 시민운동에 거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고 서술했다.
◆반기업 정서 부추겨
대기업에 대해서는 한국경제 성장 과정에서의 공과를 균형 있게 평가하기보다는 무조건 개혁 대상이라는 식의 표현이 많았다.
한 교과서는 "우리나라는 몇 안 되는 재벌에 경제력이 집중돼 있다.
재벌은 문어발 식으로 기업을 늘리고,은행의 돈을 빌려 필요 없는 투자를 많이 함으로써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재벌을 개혁하고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B사 교과서는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망하지 않는다"며 기업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자발적인 질서 유지에 익숙하지 못한 기업과 개인은 법률을 위반하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는 구성원 간 신뢰를 저해하고 공정 경쟁을 방해하고 있다"(고교 공통·D사)거나 "지나친 이윤 추구로 사회에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할 줄도 알아야 한다"(중3 공통·D-2사)는 등의 구절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안 가르치는 게…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 교과서는 학생들이 경제 현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함에도 불구하고,마치 윤리 교과서처럼 국민 계도적 내용이 너무 강조돼 있다"며 "특히 주류 경제학에서 벗어난 편향적인 시각이 들어간 것은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학생들에게 오도된 교육을 시킬 소지가 있는 교과서라면,차라리 안 가르치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천규승 KDI 경제교육실장도 "수용성이 강한 학생들에게 특정한 편견을 심어주는 것은 문제"라며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아이들이 나중에 사회에 나온다면 개인의 경제생활뿐 아니라 국가에도 손해"라고 강조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