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정몽헌 회장의 유서에는 "명예회장님께는 당신이 누구보다 진실한 자식이었습니다. 모든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다.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에게 남긴 고인의 마지막 당부였다. 그럴만도 했다. 김 부회장은 1989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최초로 방북했을 때부터 15년간 현대 대북사업의 핵심 참모 역할을 했다. 2003년 8월 정몽헌 회장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뒤 2년여.현대의 대북 관광사업은 순풍에 돛을 단 듯 풀려갔다. 육로가 뚫리면서 금강산엔 관광객이 몰렸고 지난달 이뤄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면담을 통해 개성과 백두산 관광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그러나 활기를 띠던 금강산 관광이 다른 사람도 아닌 김 부회장 문제로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북측이 "김윤규 부회장과 관련해 관광객을 600명 선으로 줄이겠다"고 통보해온 것. 북측의 의도는 아직까지 분명치 않다. 김 부회장과의 의리를 지키려는 '제스처'라는 시각도 있고,개성 관광 비용 협상을 염두에 둔 '현정은 회장 길들이기'라는 분석도 있다. 금강산 관광이 난관에 봉착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김 부회장은 개인 비리로 대표이사직에서 해임된 지난 19일 이후 중국에 머물다 30일에서야 귀국했다. 그 사이 일각에서는 김 부회장이 중국 현지에서 자신의 구명운동을 펴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김 부회장은 귀국 후 "금강산 관광이 이렇게 된 줄은 몰랐다. 현정은 회장 중심 체제로 가는 이 사업이 잘 되기를 바라고 모두 도와주길 바란다"고 했다. 또 "보지도 못하고 소명할 기회도 갖지 못한 감사보고서가 언론에 보도되고 본인의 거취가 거론된 데 대해 매우 당혹스러웠다"고 심경을 밝혔다. 물론 김 부회장으로선 억울한 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지금까지의 처신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미리 입장을 밝혔더라면 북측의 일방적인 조치로 금강산 관광이 축소되고 수천명이 여행을 포기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대북사업의 산증인'인 김 부회장의 뒤늦은 해명이 사태를 수습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류시훈 산업부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