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이 16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 정치인들이 유엔의 '이라크 석유-식량 프로그램' 시행 과정에서 대규모 부정을 저질렀다고 폭로하자 러시아측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 1996~2003년 시행된 `석유-식량 프로그램'은 유엔의 금수조치 대상국이던 이라크 정부에 일정량의 원유 수출을 허용함으로써 식량이나 의약품 등 생활 물품을 구입하도록 한 것으로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은 이라크에 대한 유엔의 제재 조치를 풀기 위해 러시아 정치인들에게 수백만달러 상당의 석유를 배당했고 이들이 거액의 리베이트를 챙겼다는 의혹이 제기돼왔다. 상원 보고서에 언급된 정치인중 한명인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 자유민주당 당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난 이라크 석유와 관련해 어떠한 계약을 체결한 적도 없고 이라크로부터 1센트, 아니 1코페이카(러시아 화폐)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러시아 기업이 이라크의 석유를 싸게 구입한다고 해서 내가 이라크를 보호할 것 같은가"라면서 "지금 난 드네스트르(몰도바내 자치공화국), 압하지야(그루지야내 자치공화국)를 지지하고 있지만 그들이 내게 돈 한푼 주는가"라고 강변했다. 17일자 일간 이즈베스티야에 따르면 지리노프스키는 1997년 6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7천580만배럴 상당의 석유 판매권을 분배받았으며 석유를 기업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이윤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지리노프스키 뿐 아니라 알렉산드르 볼로신 전 크렘린 행정실장, 공산당, 외무부, 정교회까지 이라크 프로그램을 통해 석유를 할당받았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 미국 CIA 특별보좌관인 찰스 듀얼퍼가 작성한 보고서도 해당 프로그램에 지리노프스키, 볼로쉰을 포함해 예고르 스트로예프 전 연방회의 의장, 유리 샤프라닉 전 자원에너지부 장관, 겐나디 쥬가노프 공산당 당수 등 20여명의 러시아 정관계 인사들이 개입됐으며 이들이 착복한 금액이 총 1억3천만달러에 달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편 러시아 외무부는 "이 프로그램과 관련해 러시아측의 위반이 있었는지에 대해 미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자료를 받은 적이 없다"면서 "현재 유엔에서 진행중인 조사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모스크바=연합뉴스) 김병호 특파원 jerom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