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자유가 입영을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 지를 놓고 유.무죄가 엇갈려온 하급심 판결에 대해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헌법재판소의 병역법 관련 조항에 대한 위헌 여부 결정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법률적인 유,무죄 논란은 사실상 일단락되고 하급심에 계류중인 재판이 곧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등 대안 마련에나서야 한다는 일부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아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병역 거부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쟁점으로 부각될 소지를 안고 있다.

◇ 기본권 행사는 상대적 자유..실정법 `엄격 적용' =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헌법상 기본권 행사는 타인과 공동생활을 영유하면서 모든 기타 법질서에서도 이탈해서는 안된다"며 헌법상 보장된 양심의 자유가 국방의 의무에 우선할수 없다고 판단했다.

기본권 행사 역시 원칙적 한계를 갖고 있는 상대적 자유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대법원은 "병역 의무는 궁극적으로는 국민 전체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보장하기 위한 것이고 피고인의 양심의 자유가 위와 같은 헌법적 법익보다 우월한가치라고는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무죄를 선고했던 하급심 판결은 "병역 거부가 오직 양심상 결정에 따른 것이라면 병역법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히며 개인의 내적 가치에 우선 순위를부여 했으나 대법원은 사회 질서 유지, 공동체의 조화, 국가의 존립에 좀 더 무게를둔 것으로 해석된다.

대법원은 의견 일치가 안될 때 열리는 전원합의부에서 문제를 논의, 판례 변경여부에 관심이 쏠렸지만 1명의 대법관만 양심의 자유가 국방의 의무에 앞선다는 취지의 반대 의견을 냈다.

◇양심적 병역거부 현황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에 따르면 2004년 6월 15일 현재 439명의 양심적병역 거부자가 전국 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9년 최초의 처벌 기록이 보고된 이래 지금까지 병역 거부로처벌받은 사람은 1만여 명에 달한다.

최근 추세를 보면 2000년 683명, 2001년 804명, 2002년 734명, 2003년 705 명등 매년 700명 내외의 병역거부자들이 총을 드는 대신 감옥행을 선택하고 있다.

국내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대부분이지만 2001년 12월불교신자이자 평화운동가인 오태양(29)씨가 병역거부 선언을 한 뒤 불교 신자를 비롯해 개인적.정치적 동기에 의해 병역거부를 선언한 사람이 12명에 이를 정도로 점점 병역 거부 문제는 이념적, 사상적 자유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 논란 불씨는 남아 = 서울남부지법은 2002년 1월 "대체복무를 통한 양심 실현의 기회를 주지 않는 병역법 규정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이모(23)씨가 낸 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 제청을 했고 헌재는 다음달 최종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대법원 상고심에서 변론을 맡은 김수정 변호사는 "헌재의 판결을 기다려보고 위헌 결정이 나오면 재심 신청을 하겠지만 헌재에서도 유죄가 확정되면 유엔인권위에제소하겠다"고 말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장해온 시민.사회단체들은 대법원의 유죄 선고에 대해 재판부의 판결은 존중하지만 병역거부자의 실체를 인정하고 이들의 인권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연대회의 최정민 간사는 "헌재의 전향적 판결을 기대하고 있지만 유죄가 확정된다면 국가인권위원회와 정부, 입법부를 통해 빠르게 인권 보호를 위한 제도 마련을요구하겠다"며 "하반기에는 정기국회를 통한 입법운동과 대체복무제 공청회를 열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기자 gc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