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간 이라크를 철권통치해 온 사담 후세인 이라크전 대통령이 피고인의 모습으로 법정 피고석에 앉아있는 모습이 1일 TV를 통해 전세계에 방영됐다.

수척한 모습의 사담 후세인은 여전히 창백한 표정이었지만 지난해 12월 체포됐을 당시 보다는 덜 부수수한 모습으로 자신에 대한 혐의사실을 들어야만 했다.

특히 전범과 반인도주의적 범죄 등을 포함한 7가지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이 내려질 경우, 그의 운명은 자신이 생사여부를 결정했던 국민들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사담 후세인 연보.

▲37년 4월 28일, 이라크 바그다드 북부 티크리트 인근 우자에서 탄생.
▲57년, 바트당 가입.
▲58년, 공산주의자인 처남 살해 혐의로 체포돼 징역 6개월형 선고.
▲59년 10월 7일, 바그다드 중심가에서 동료 당원들과 함께 압델 카림 카심 원수 저격에 가담했지만 암살에는 실패. 자신도 다리에 총상을 입고 망명길에 오름.
▲63년 2월 8일, 바트당이 참여한 쿠데타로 카심 정권 붕괴되자 이집트에서 이라크로 귀환. 11월 군부에 의해 바트당 축출.
▲68년 7월 17일, 바트당과 군 장교들, 정권 전복.
▲68년 7월 30일, 사촌인 바르크가 대통령이 되고 후세인은 2인자가 돼 혁명평의회 부의장에 취임.
▲79년 7월 16일, 바르크 사임 대통령 취임. 취임후 바트당에 대한 피의 숙청시작.
▲80년 9월 22일, 이라크 침공. 전쟁은 8년간 계속됨.
▲88년 3월 28일, 쿠르드족에 대한 화학무기 사용 인종청소(5천여명 살해)
▲90년 8월 2일, 쿠웨이트 침공.
▲91년 1월 17일, 미국 연합군의 공격받음. 쿠웨이트는 1개월만에 함락됨.
▲91년 3월, 남부 시아파, 북부 쿠르드족 반란 발생.
▲91년 4월 17일, 유엔 결의안 687조에 따라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정보제공에 협조했으나, 거짓자료를 제공했다는 비난을 받음.
▲98년 12월 16일, 유엔 무기사찰단 이라크서 철수. 미국과 영국군이 무기사찰비협조를 이유로 미사일 공격 단행.
▲2002년 11월 8일, 유엔안보리 결의안에 의거한 무장해제를 하지 않으면 `중대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경고를 받음.
▲2002년 11월 27일, 98년 이후 처음으로 유엔 이라크내 활동 허용.
▲2002년 12월 7일,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고 유엔측의 선언을 유도. 미국은 신뢰할 수 없다고 반박. 이후 유엔도 사찰이 끝나지 않았다고 천명.
▲2003년 3월 1일, 아랍에미리트연합 사담 후세인 하야 요구.
▲2003년 3월 7일, 미국과 영국, 스페인 3월 17일까지 금지무기 포기요구. 그렇지 않을 경우 전쟁발발 경고. 프랑스 등은 군사적 행동을 포함한 유엔결의안 반대입장 천명.
▲2003년 3월 17일, 미.영.스페인은 외교적 노력 종료 선언. 조지 부시 미 대통령 후세인에게 48시간내에 이라크에서 떠날 것을 요구. 후세인 다음날 이를 거부.
▲2003년 3월 20일, 미군 전쟁개시. 후세인 은신처로 추정되는 도라지역 공격.
▲2003년 4월 7일, 미군 후세인과 아들이 모여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바그다드맨서 지역 공습.
▲2003년 4월 9일, 이라크인들 바그다드 진출 미군 환영. 사담 후세인 동상 끌어내림.
▲2003년 7월 22일, 사담의 아들 쿠사이와 우다이 미군과의 전투중 사망.
▲2003년 7월 31일, 사담의 딸 라그하드와 라나 9명의 아들과 함께 요르단 망명.
▲2003년 12월 13일, 미군 티크리트 외곽에서 사담 후세인 체포. 2004년 6월 30일 이라크에 법적 관할권 인도.
▲2004년 7월 1일, 첫 재판에서 전범죄와 인종청소 등 혐의 부인.

(바그다드 AFP=연합뉴스) choinal@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