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새 정부를 이끌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아흐마드 찰라비 이라크 국민회의(INC) 의장이 날개도 없이 추락하고 있다. 지난 18일 미국이 INC에 대한 월 34만달러의 자금지원을 중단하고, 20일 찰라비자택과 INC 사무실을 압수수색한데 이어 급기야는 `이란 스파이설'까지 나오고 있다. 45년간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지난해 3월 미군과 함께 `개선장군'으로 귀국한뒤 연초에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때 로라 부시 여사 뒷자리에 앉아 위세를 떨치던 그가 5개월여만에 급전직하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망명시절 부터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및 네오콘 등 워싱턴 강경파의 적극적인 후원속에 `미국의 친구'였던 그가 갑자기 `미국의 수사대상'으로 전락한데 대해선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다. 우선 찰라비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 워싱턴 매파들이 아브그라이브 수용소 고문학대 파문으로 곤경에 처하자 찰라비를 불신해온 국무부 등 온건파쪽에서 집중적인 견제구를 던지기 시작한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찰라비는 그동안 국무부가 적극 후원해온 라크다르 브라히미 유엔특사의 과도정부 구성방안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맞서왔고, 폴 브리머 미군정 최고행정관이 현재의치안부재 원인이 이라크 점령초기 후세인 군대의 해산과 바트당 출신자들의 공직추방을 주장한 찰라비의 잘못된 조언에 있다고 보고 이를 전면 수정하는 정책을 펴면서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워싱턴내 매패와 비둘기판간 갈등의 산물이란 분석은 지나치게 음모론적인 시각에 입각한 분석이란 지적도 적지않다. 바그다드에서는 오히려 미국이 주권이양과 임시정부 출범을 앞두고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있는 찰라비의 영향력을 견제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던 찰라에 이란 스파이혐의가 드러남에 따라 용도폐기라는 결단을 내린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찰라비는 그동안 모하메드 바흐르 알-울룸 과도통치위원을 비롯해 시아파 과도통치위원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핵심요직인 석유부장관에 알-울룸 과도통치위원 아들을 앉히는 등 국방, 통신부 등 행정부처 주요 포스트에 자신의 가족 및측근들을 대거 기용했다. 또 사담 후세인 당시 정보기관이던 `무카바라트'의 존안자료 등 비밀자료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자유 이라크군'이란 사병조직도 운영할 정도로 `실세'로서의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요르단에서 사기 혐의로 기소된 경험이 있는 `부패'한 전직 은행가인데다 오랜망명생활으로 이라크 국민들의 인지도는 물론 지지도 조차 낮은 그가 향후 출범할임시정부가 안보와 치안을 직접 통제하고, 이라크 발전기금도 관리해야 한다며 미국의 수렴청정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까지 보여왔던게 저간의 사정이다. 찰라비의 `구린 대목'까지 알면서도 묵인해 오던 미국으로서는 그의 `방자한'행위를 더이상 이를 방치할 경우 임시정부 구성 등 향후 정치일정을 미국 의도대로끌고갈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던 찰라에 정보기관의 감청에 의해 찰라비가 같은시아파인 이란의 정보당국과 긴밀히 접촉하는 혐의가 드러나자 본격적인 `용도폐기'수순에 돌입했다는게 현지의 시각이다. 찰라비 파문이 어떻게 끝날지는 계속 주시해야 할 대목이지만 찰라비라는 `실세'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안개정국'이 조성됨에 따라 각 정파간 임시정부의 핵심 요직을 둘러싼 권력투쟁은 물밑에서 더욱 치열해 지고 있다. 자랄 탈라바니 등 쿠르드족 지도자들이 블랙윌 미 대통령특사와의 면담에서 차기 임시정부 구성시 쿠르드족에게 대통령 또는 총리직을 배분하지 않을 경우 임시정부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선 것은 단적인 예이다. (바그다드=연합뉴스) 안수훈 특파원 a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