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마감된 서울 1차 동시분양 청약결과는 주택건설업체들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침체된 분양시장에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던 이들에게 시장돌파구의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분양=1백% 계약'의 공식이 이어져온 강남권에서 1군 건설업체가 내놓은 고급아파트의 절반이상이 미분양으로 남았다. 반면 중견 건설업체가 내놓은 대형아파트는 2순위에서 마감되는 이변이 연출됐다. 이처럼 상황이 심상치 않자 최근 분양시장에서는 '사전 기획'이 키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주택시장에도 '기획상품(아파트)'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청약일정만 잡으면 수십대 1의 경쟁률을 보장받던 호황기는 이미 막을 내렸다. 강남 미분양이 속출하는 가운데서도 너끈히 청약기간 내 1백% 청약률을 기록하는 등 분양시장 양극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철저한 시장조사와 마케팅 등 달라진 시장환경을 읽어내려는 업계의 노력 유무가 성공분양의 핵심요인이 되고 있다. 주력 수요층을 사전조사를 통해 찾아낸 뒤 이들이 원하는 가격과 평면을 맞춰내는 '맞춤 아파트'를 선보인다는 전략인 셈이다. 그동안 백화점이나 영화산업을 중심으로 활용돼온 '기획' 개념이 아파트 개발에 적극 도입되고 있는 것은 업계가 느끼는 분양시장의 체감경기가 그만큼 악화됐다는 것이다. ◆ '묻지마' 분양은 미분양 분양시장의 분위기는 지난해 11월 이후 확연히 달라졌다. 분양시장에서만큼 강남불패는 막을 내렸다. 이처럼 침체된 시장상황에서도 선전하는 사업장은 있게 마련이다. 이들 상품은 사전조사를 통해 미리 수요층들의 입맛을 읽고 제대로 포장한 제품을 내놓았다는게 공통점이다. 지난해 12월 초 분양에 들어간 한일건설의 삼성동 '채널리저브'(1백41가구)는 초기계약률이 80%를 넘어선 반면 영풍산업의 서초동 '레지나 카운티'(58가구)와 남광토건의 서초동 '쌍용플래티넘'(2백56가구) 등은 초기계약률이 50%대를 밑돌았다. 이어 이달초 1차 동시분양 청약결과 청담동 동양파라곤이 2순위에 마감된 것과 달리 방배e-편한세상은 3순위에서도 절반이상이 미분양됐다. 업계관계자는 "시장의 변화를 읽고 이에 대처하느냐가 분양의 승패를 좌우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기획'이 화두 강남에서조차 '제값주고 아파트를 사겠다'는게 요즘 분위기다. 입지여건, 교통여건만 보고 무턱대고 비싼 분양가를 지불하진 않겠다는 얘기다. 시장흐름을 반영하지 못한 어정쩡한 아파트는 곧바로 미계약이란 등식이 성립되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건설업체들은 달라진 분양시장환경에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지난해 분양시장에서 침묵을 지켰던 삼성중공업은 올해 기획상품을 잇따라 선보일 계획이다. 우선 맞벌이 부부들을 겨냥한 맞벌이 부부용 아파트 공급을 준비하고 있다. 단지 내 상가비율을 줄이고 맞벌이 부부들이 안심하고 자녀들을 맡길 수 있는 24시간 운영이 가능한 탁아시설을 갖춘 아파트를 내놓는다는 복안이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어린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들은 자녀를 맡길 수 있는 시댁이나 친정이 가까운 곳을 우선순위로 꼽는다"며 "안전하게 믿고 맡길 수 있는 탁아시설을 갖춘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한라건설도 특정수요층을 겨냥, 이들의 라이프사이클, 경제능력 등을 감안해 분양가를 거꾸로 산정한 맞춤아파트를 공급할 계획이다. 배영한 한라건설 상무는 "인근 아파트 시세를 따져 공사비를 산정하는 방식은 당분간 미분양을 각오해야할 것"이라며 "침체된 시장상황에서도 수요는 있게 마련이고 이들이 원하는 가격대의 아파트를 내놓으면 분양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자신했다. 한라건설이 아산 천안 등 서울 출ㆍ퇴근이 가능한 고속철 인근에 지난달 이미 올 수주목표액인 6천억원의 절반이 넘는 3천6백억원규모의 사업을 수주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무주택자를 겨냥한 5백만원 미만의 아파트를 공급하기 위해서라는 얘기다. '파라곤'이란 브랜드로 강남권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동양고속건설도 기획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파라곤'외 별도의 브랜드를 개발하고 있다. 박청일 동양고속건설 사장은 "토지매입에서부터 평면, 분양가 산정, 마케팅까지 무주택자용 아파트를 겨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