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성석제씨는 '이 시대의 이야기꾼'으로 불린다. 그의 소설은 대개 의뭉스럽게 작가 자신을 감추고 '주변의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유쾌한 필치로 들려준다. 이런 그가 오랜만에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산문집을 냈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성석제가 말하는 성석제,그리고 세상'(도서출판 강)은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작가가 스스로에 대해,지나간 시간에 대해,그리고 오늘의 세상에 대해 추억하고 이야기하는 한 판의 풍성한 놀이마당이다. 모두 6부로 이뤄진 책의 1부는 '억(憶)'이다. 여름날 신새벽 할머니의 손을 잡고 걸어갔던 낙동강 강변으로의 소풍,'개구멍'을 통해 기차에 무임 승차했던 기억,몰래 먹은 막걸리의 첫맛이 숨어 있는 길이네 점방 등 작가가 풀어놓는 추억담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레밍턴 전동타자기,자전거,자신을 울렸던 책·음반 등 작가가 애지중지했던 물건과 대상을 다룬 2부 '애(愛)'는 또 다른 추억의 마당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3부 '엽(葉)'에서는 작가 특유의 짧은 글이 주는 촌철살인적 해학과 통찰이 경쾌하게 펼쳐지며 4부 '견(見)'에서는 작가가 두루 보고 느낀 세상만사를 꼬집고 비튼다. 스스로를 '유랑(流浪)'하는 인간으로 규정하는 작가는 5부 '유(流)'에서 오늘의 자신을 만들어낸 유랑의 내력을 가감없이 들려준다. 만화에서 시작된 책읽기의 경험에서부터 시의 '순수한'세계와 소설의 '불순한'세계로 겁없이 걸어 들어오게 된 삶의 작은 계기들을 하나하나 반추한다. 6부 '인(人)'은 성석제가 만나고 교류했던 사람들,그러나 지금은 이 곳에 없는 세 사람에 대한 존경과 상심의 기록이다. 이문구 성원근 김소진이 그들이다. 작가는 "사람은 가고 복숭아는 피었다 지고 또 글은 열매와 마른 씨앗처럼 남는다. 나도 남아 있다. 아,슬프구나"라고 썼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