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이테크업계에서 여성파워가 커지고 있다. 미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29일 '기술의 여성(Women of Tech)'이란 특집기사를 통해 "첨단기술업계에서 여성 CEO(최고경영자)와 CFO(재무책임자)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비록 그 수는 아직 남성 CEO나 CFO에 못미치지만 뛰어난 경영능력으로 첨단업계에서 차지하는 여성의 영향력은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 하이테크업계에서 여성기업인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실리콘밸리의 역사를 개척한 휴렛팩커드(HP)의 최초 여성 CEO 겸 회장인 칼리 피오리나,세계 최대 인터넷경매업체 e베이의 멕 휘트먼 사장,복사기의 대명사 제록스의 앤 멀케이 CEO,최대 통신업체 AT&T의 베치 버나드 사장,루슨트테크놀로지의 패트리샤 루소 CEO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미 5백대 하이테크기업 중 여성 총수는 11%에 불과하나,HP 제록스 AT&T가 말해주듯 하이테크 핵심기업의 상당수가 여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21세기 기업의 핵심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CFO와 CIO(정보책임자)직에서도 여성 파워는 날로 강해지고 있다. 인터넷업계 거인 야후의 수잔 데커 CFO,제1의 전화회사 버라이존의 도린 토벤 CFO,그리고 세계 최대 반도체회사 인텔의 샌드라 모리스 CIO,시스템통합업계의 선두 오라클의 매리 데이비슨 CIO,세계 최고의 네트워킹장비업체 씨스코시스템즈의 CIO를 거쳐 현재 패킷디자인사의 회장인 주디 에스트린 등을 들 수 있다. 비즈니스위크는 첨단기술분야에서 여성파워가 확대되는 원인을 두 가지로 분석했다. 첨단업계의 철저한 '능력 제일주의 문화'와 정부의 '직장 내 성차별금지 정책'이 그것이다. 금융업이나 일반 제조업에 비해 훨씬 더 치열한 경쟁과 짧은 신기술 사이클 앞에서 생존해야 하는 하이테크업계는 학연과 지연 성에 상관없이 오직 단기간에 실적을 올리는 능력있는 인물들을 찾다보니 그동안 남성의 그늘에 가려져있던 실력있는 여성들을 발굴해 낼 수 있었다. 정부의 성차별금지라는 제도적 장치도 첨단업계의 여성파워 향상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게 비즈니스위크의 지적이다. 지난 30여년에 걸쳐 직장 내 성차별이 줄어들면서 능력있는 여성들이 회사에서 중도하차하지 않아 여성기업인들을 배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여성기업인의 선두주자들인 피오리나(HP),루소(루슨트테크놀로지),버나드(AT&T),토벤(버라이존)은 모두 성차별이 사라진 AT&T에서 젊은 시절 실력을 키운 여성들이다. 이정훈 기자 lee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