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지주회사격인 SK㈜가 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는 혼돈에 휩싸여 있다. 13일 재계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근 영국계 투자펀드인 크레스트 증권이 SK㈜의 12.39% 대주주로 올라서면서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주식을 전부 담보로 제공한 데다 구속 상태인 최태원 회장측에서는 이렇다할 반격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따라 SK㈜ 임직원들은 최 회장과 크레스트 증권 사이에서 뚜렷한 구심점을 상실한 채 조직력이 와해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SK㈜의 크레스트측과의 유일한 대화창구인 유정준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크레스트의 경영참여 여부 등 일체의 대화진행상황에 대해 함구하고 있어 소액주주와 투자자는 물론 회사 내부에서도 무슨 얘기들이 오가는지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회사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홍보팀조차 유 전무와의 접촉이 극히제한돼 있어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뒤늦게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허둥지둥하는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크레스트측은 최근 유정준 CFO와의 면담에서 "적대적 M&A나 그린메일이 아니라장기투자가 목적"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으나 시장에서는 크레스트측의 SK㈜ 주식매집 행태 등을 고려할 때 여전히 적대적 M&A나 그린메일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 M&A 전문가는 "이미 칼자루는 크레스트가 쥐고 있는 만큼 다음 수순도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크레스트가 처음엔 시세차익을 노렸는지 모르지만 상황이 가변적인 만큼 적대적 M&A를 시도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 지경이다 보니 SK㈜ 직원들 사이에서도 회사의 정체성에 대한 심리적불안감과 혼돈이 가중되고 있다. 한 직원은 "지분상으로만 보면 SK㈜가 외국계 회사가 된 셈인데 크레스트 증권의 정체도 잘 모르는 데다 최 회장측과 크레스트간 경영권 싸움이 벌어지면 우리사주를 갖고 있는 직원들이 누구편을 들어야 되는지도 헷갈린다"고 말했다. 증권계 일각에서는 SK㈜에 대한 최 회장의 지배력이 상실될 수도 있는 위험에처한 상태에서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주체가 불분명해 조직적 방어가 가능할지에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세종증권 유영국 연구원은 "SK쪽에서는 우리사주 4%와 SK글로벌 해외파킹지분 8%, 제이너스(Janus) 등을 의결권을 가진 우호지분으로 분류하지만 최 회장의 지배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이들을 우호지분으로 볼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만약 적대적 M&A가 시도될 경우 자사주 매입과 '백기사'(우호적인 제3자)에 의결권이 없는 주식을 넘겨 추가로 의결권을 확보한다는 SK측의 경영권 방어 시나리오가 의도대로 실행될 수 있을지 여부도 불투명한 실정이다. 유 연구원은 "SK㈜는 2조6천억원의 현금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 운영자금 성격이기 때문에 자사주를 매입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정 열기자 passion@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