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지하(62.명지대 석좌교수)씨가 계미년새해를 열며「화두」(화남刊)라는 제목의 신간을 내놨다. '붉은 악마와 촛불'이라는 부제가 달린「화두」는 지난해부터 올초까지 대학가와 사회단체, 공공기관 등에서 발표된 그의 강연문, 기고문, 일본의 지성지 「세카이(세계)」와의 대담록, 그리고 '촛불'이라는 제목의 미발표 신작 원고를 한데 엮은책. 지난해 한반도를 들끓게 했던 '붉은 악마'와 최근까지 이어진 '촛불시위'를 큰주제로 우리 시대의 대표적 사상가가 이 땅의 지식인들과 보통 사람들에게 던지는 '신년 화두'인 셈이다. "내가 얘기하는 게 이 사회의 화두가 될까..사실 자신은 없지만 이 나라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해명이 안되는 거지..그래도 사회에서 나를 운동권의 선배, 지식인으로 불러주는데 '문제제기'를 해야 하지 않겠어.." 21일 인사동에서 출간기념 기자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김씨는 '화두'라는 제목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그렇다면 그가 무엇보다 '붉은 악마'와 '촛불'에 그토록감명을 받은 까닭은 무엇일까. "700만이 거리에 뛰쳐나와 난리를 친 것은 단순히 월드컵이 아니라 '6월 개벽'이라고 불러야 해.. 붉은 악마들을 보면서 머지않아 또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촛불시위가 열린 첫 날 매스컴 보도를 보면서 '저거다' 싶었어요.. 쟤들은 과연 누굴까, 어디서 왔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쟤들이 바로 붉은 악마고, 그 이전으로 거슬러가면 3.1운동, 또 동학혁명을 이끌었던 힘이 아닙니까" 붉은 악마에 대한 김씨의 해석의 틀은 바로 '음양'과 '태극'이다. 서로 대립되는 듯 보이면서도 결국 하나를 이루는, 다시 말해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역동적균형' '카오스모스'(카오스+코스모스)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엄청난 열광, 혼돈 속에서도 질서와 균형, 예절을 잃지 않았죠. 전부 붉은색으로 물들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태극기를 가지고 다들 제멋대로, 개성이 넘치는 패션이었어요. 그게 바로 한민족 사상의 모티브인 음양과 태극입니다" 그 붉은 악마들이 형태를 달리해 다시 찾아온 것이라는 '촛불시위'에 대해서도그는 감동어린 찬사를 계속했다. "촛불시위는 반미가 아니에요. 민족의 자존심입니다. 두 여중생의 영혼을 위한제사죠. 촛불을 든 학생들이 얼마나 예쁜지 눈물이 나올 지경이야.. 붉은 악마가 '양'이었다면 촛불은 '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고즈넉하고 경건하지만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나죠. 이게 바로 힘입니다. 부드러운 힘.." 덧붙여 촛불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노골적인 반미로 가서는 득될 게 하나도 없어요. SOFA는 개정하고 민족자존심은 살리되 극단으로 치우쳐서는 안되지. 우리는 우리만의 창조적인 메시지를전달하면 되는 거고 그걸 바로 붉은 악마와 촛불들이 해낸 거요. 시위는 그만 끝내고 새 정권에 모든 걸 위임해야 할 때입니다" 김씨가 던진 '화두'는 붉은 악마와 촛불들이 창조해낸 이러한 '문화적 태풍'을한민족의 국운을 상승시켜 '아시아 르네상스'를 이룰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귀결된다. 우리가 월드컵을 개최한 것이 우연이 아닌 천시(天時)에 따른 것이며, 향후 세계사의 중심이 될 아시아에서 '허브' 지역에 놓인 한반도가 바로 국운상승의 때를맞았다는 것이 그의 주장. 21세기의 한민족, 특히 이 민족을 이끌어갈 새로운 세대에 대한 그의 강한 기대와 바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난 붉은 악마와 촛불 세대들이 앞으로 정말 큰 일을 하게 되리라고 믿어요. 우리와는 확실히 다른 세대야.. 붉은 악마들의 외침은 앞으로 계속 되풀이되면서 하나의 문화가 될 것이고, 그 문화는 민족통일이라는 차원으로 상승하면서 또 한 번 '개벽'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y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