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업계가 구조조정 태풍속으로 급속히 빨려들어가고 있다. 작년 사상최악의 불황을 딛고 상승무드를 타는 듯하던 반도체경기가 다시 침체조짐을 보이면서 한계상황에 봉착한 일본과 대만업계를 중심으로 사업을 포기하거나축소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4일 발표된 일본 엘피다의 미쓰비시 D램사업 인수와 대만 파워칩과의 전략적 제휴, 히타치-미쓰비시 비메모리 통합 소식은 불황속에서 합종연횡이 가속화되고 있는`반도체 빅뱅'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생존위한 몸부림 = 세계 5위인 일본 엘피다 메모리는 내년 4월까지 미쓰비시D램사업을 인수하겠다고 이날 공식 발표했다. 작년 기준으로 엘피다의 D램 시장점유율은 8.5%로 미쓰비시(2.6%)와 합치면 11.1%에 이르러 인피니온(9.7%)을 제치고 4위로 올라선다는 계획이다. 내년 목표선은 15%. 이처럼 희망찬 청사진이 나와있지만 엘피다의 미쓰비시 인수는 사실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 작년 사상최악의 한해를 보내면서 누적된 경영적자로 퇴출위기에 직면하자, 통합카드로 돌파구를 찾았다는 것이다. 서둘러 D램사업을 포기하려던 미쓰비시와의 이해가 공교롭게 맞아떨어졌다. 일본 D램업계는 99년 일본의 대표적 양대 D램업체인 NEC와 히타치가 합친 엘피다가 다시 미쓰비시 D램사업을 통합함으로써 사실상 `엘피다 1사체제'로 정리가 끝났다. 앞서 지난 4월 D램사업 포기를 천명한 도시바는 미국 도미니온 공장을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팔았다. 이번 통합에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않다. NEC와 히차티의 통합모델인 엘피다 자체가 시너지 효과 부진에 화학적 결합 지연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미쓰비시 D램사업을 합쳐봐야 기대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으리란 얘기다. 삼성증권 임홍빈 연구위원은 "합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얼마나 경쟁력을 갖고 시장을 선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짝짓기 분주 = 엘피다와 미쓰비시 D램사업 통합은 물밑에서 가속화되고 있는D램업계 구조조정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는 시각이다. 합병이나 사업통합 형태의 `빅딜'이 아니더라도 공정.기술개발 등 전략적 제휴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일본과 대만업계는 어떤 식으로든지 `공동전선'을 펴지않고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엘피다가 대만 3위의 D램업체인 파워칩과 미세회로 공정과 관련한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것이 단적인 예. 99년 통합 이후 줄곧 적자에 허덕여온 엘피다로서는 0.13㎛ 이하의 공정개발투자에 나서지 못해왔기 때문에 공정개발이 앞선 파워칩과 손을잡는 고육책을 선택한 것이란 분석이다. 대만 D램업계 대표주자인 난야와 작년기준 세계 4위인 독일 인피니온이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주로 300㎜(12인치) 웨이퍼 생산을 위한것이지만 사실상의 `연합'형태로 D램시장 내의 입지를 크게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프로모스와 모젤바이텔릭도 인피니온-난야 연합군에 가세할 공산이 커 보인다. 비메모리 분야를 중심으로 한 짝짓기도 눈여겨볼만 하다. 히타치와 미쓰비시는이날 시스템LSI와 플래시 메모리, S램 등 비메모리와 일부 메모리 부문을 통합키로합의했다. 하이닉스[00660]반도체는 비메모리 분야를 분리.매각키로 방침을 정함에따라 전략적 제휴를 꾀하려는 반도체업체들의 `입질'이 한창이다. ◆ 판도변화는 어떻게 = 이처럼 연이은 짝짓기로 반도체업계 판도에 일대 변화가 일고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 삼성전자[05930]와 나머지 `빅4' 연합군이 한판 승부를 벌이는 대결장으로 압축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마이크론.하이닉스.인피니온으로 대변돼온 기존 `4강(强)' 체제는 작년부터 지속돼온 구조조정의 거센 물줄기를 거치면서 `1강(强)4약(弱)' 체제로 변모하고 있다. 다시말해 삼성전자 1강을 상대로 마이크론, 하이닉스, 인피니온-난야-프로모스, 엘피다-미쓰비시-파워칩 등 `4약(弱)'의 대결 양상이 된 것. 삼성전자는 시장점유율이 작년 26.9%에서 올해 33%로 도약할 것으로 전망된다.그러나 나머지 `빅4'는 대략 10% 안팎에서 시장지배력을 균점할 것으로 분석된다.사업모델이 비슷한 마이크론(작년 19.6%)과 하이닉스(14.9%)는 경영악화로 시장점유율이 크게 하락하고 엘피다 역시 사정이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피니온(작년 9.7%)-난야(8.5%) 연합군도 시장침체의 영향을 받았지만 DDR 시장에서 난야의 선전으로 점유율이 다소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삼성전자의 독주체제는 나머지 빅4 내부의 연대 내지 통합 움직임을 촉진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rhd@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