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컴퍼니(Power company)'가 21세기 기업의 생존 키워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갈수록 격화되는 경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언제 도태될지 모르는게 산업계 상황이다. 금융계의 파워 컴퍼니란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와 '범위의 경제(economy of scope)'를 바탕으로 시장을 선도하는 금융사를 말한다. 실제로 외환위기 이후 금융빅뱅 과정에서 상위 소수의 대형 금융사들이 업계를 주도하는 시장 과점현상이 급진전되고 있다. 금융사의 평균 총자산 규모는 외환위기 당시인 지난 97년말에 비해 은행은 83.3%, 보험은 75.7%, 신협은 54.8%가 늘어났다. 상위 금융기관에 대한 집중도도 가속화되는 추세다. 상위 5개 대형은행의 자산집중도는 97년말 46.7%에서 지난해말엔 67.9%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시장을 주도하는 파워 컴퍼니가 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도태되고 만다는 위기감이 금융계에 팽배해 있다. 금융사들이 사활을 건 '대형화'와 '겸업화'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같은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곳은 은행권이다. 서울은행 인수전을 계기로 '빅3 체제'로 대대적인 판도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이 서울은행 인수 우선협상대장자로 선정됨에 따라 총자산 84조원으로 국민과 우리은행에 이어 국내 3위(자산기준)의 대형은행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국민은행도 오는 9월 전산통합을 완료한 뒤 자산규모 1백97조5천억원의 선도은행으로서 시장에 본격적인 위세를 떨칠 태세다. 이에 따라 나머지 은행들은 판도변화에 따른 생존전략을 짜느라 분주하다. 지주회사 모델을 갖춘 우리금융그룹과 신한금융그룹은 겸업화에 승부를 걸고 있다. 우리금융 그룹은 최근 미국의 AIG, 시그마생명, 영국의 프루덴셜 등 국내외 5개 생보사로부터 파트너 참여 제안서를 받은데 이어 내달중 양해각서(MOU)를 체결, 생보사 조인트 벤처를 설립할 예정이다. 우리은행은 이와 별도로 삼성화재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데 이어 국내 생명보험업계 1위인 삼성생명과 업무제휴도 추진하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올해안에 종합금융지주회사의 큰 틀을 완성할 계획이다. 이미 굿모닝증권과 신한증권을 흡수한데 이어 BNP파리바 자회사인 카디프생명과 50대 50 비율의 출자로 3백억원 규모의 합작법인을 설립키로 하고 '신한카디프생명보험' 상호로 예비인가를 받은 상태다. 이처럼 은행권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대형화 및 겸업화는 금융권 전체의 재편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보험업계도 대형화가 빠르게 진전됨에 따라 상위 소수의 대형 보험사가 업계를 장악하고 있다. 지난해말 현재 보험사당 평균 총자산 규모는 97년말에 비해 75.7%나 증가할 정도로 대형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생명보험 시장의 경우 삼성 대한 교보생명 등 빅3의 시장점유율은 77.0%에 달한다. 이들 대형 보험사들은 은행 등과의 업무제휴를 통해 종합금융 서비스 제공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보험사와 다른 금융권과의 제휴건수는 99년말 2백9건에서 2000년말엔 7백65건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일부 대형보험사의 경우 중국과 동남아 지역으로 진출을 꾀하며 글로벌 플레이어(global player)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어 중소 보험사들의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증권업계는 외환위기 이후 삼성증권과 LG투자증권 등 대기업 계열 증권사가 치열한 선두탈환전을 벌이는 가운데 금융종합그룹을 추진중인 은행권과 중소형 증권사의 대형사 도약 움직임이 맞물려 파워컴퍼니를 향한 '빅뱅'이 가시화되고 있다. 시장점유률 4위인 대우증권은 증권업계 인수.합병의 '최대어'에 통한다. 몸집불리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중소형 증권사들의 인수합병 움직임도 활발하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이처럼 증권업계의 인수합병 움직임이 활발한 것은 증권사들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형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최근 덩치를 키우려는 증권사와 매물로 나온 증권사가 많은 만큼 올 하반기중 합병 러시를 거쳐 내년엔 증권계에도 본격적인 파워 컴퍼니 시대가 열릴 것"으로 내다봤다. 금융연구원의 이동걸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금융산업은 국제경쟁력을 갖춘 4~6개 금융사와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5~8개의 특화 금융기관으로 재편될 것"이라며 "파워컴퍼니로 도약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