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시계에 자신을 맞춰라" `꿈의 축제' 2002 월드컵이 개막되면서 직장인을 중심으로 예선기간 하루 3∼4게임씩 잇따라 펼쳐지는 경기일정에 자신의 스케줄을 맞추는 등 시민들의 생활패턴이 변하고 있다.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의 국내개최, 한국 대표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 증폭에다 개막전서의 세계 최강 프랑스팀의 `침몰'이라는 드라마틱한 요소가 더해져 사람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 스케줄 연기.취소 = 직장인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당초 예정된 각종 스케줄을연기하거나 취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특히 한국 예선전이 열리는 오는 4, 10,14일은 아예 약속을 기피하고 있다. 김은희(28.여.회사원)씨는 "한국전이 열리는 3일 동안은 저녁시간을 모두 비워놨다"며 "특히 이달초 예정된 대학동창회를 한국전 날짜에 맞추고 집결장소도 광화문 전광판앞으로 해 합동응원후 가벼운 마음으로 생맥주를 즐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문모(58.회사원.부산 금정구 부곡동)씨는 휴가 기간 월드컵 경기 관람을 위해 1일부터 5일간 예정돼 있던 서해안 여행을 아예 취소했다. 4일 부산에서 열리는 한국-폴란드전 티켓 2장과 오랜만에 가져보는 부부여행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최근 우리 대표팀의 평가전을 보고는 여행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그는 "여행이야 다음에 가면 되지만 내 고장에서 열리는 월드컵은 내 일생에 단한 번"이라며 부인을 달래야만 했다. ◇ '집으로' 열풍 = 월드컵을 보느라 여느때보다 일찍 집으로 향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평소 축구를 잘 몰랐던 주부들까지도, 좋아하는 드라마 방영시간까지 조정되고TV가 온통 축구중계뿐이지만 남편의 조기귀가로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늘었다며반색이다. 이동통신회사 직원 김모(34)씨는 "지난 개막전때 가족들과 함께 시청하기 위해일찌감치 회사문을 나서 집으로 향했다"며 "축구를 좋아하는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안방에서 게임을 즐기기 위해 한달간은 가급적 술자리를 피하고 일찍 귀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물론 남편이 집에서 TV 리모콘만 붙잡고 월드컵 시청에만 몰두하고, 밤늦게까지하는 재방송 경기를 보고 또 보고 있어 "일찍 오면 뭐하느냐"는 주부들의 투정도 없지 않지만 "남편이 바깥으로 도는 것보단 집안에 있는게 훨씬 낫다"는 반응이다. 주부 이선래(38.서울 노원구 공릉동)씨는 "일 대신 축구에 남편을 빼앗기게 됐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일찍 귀가해 아이들도 아빠 얼굴을 더 많이 볼 수 있게 됐다"며 반기는 눈치다. ◇ '올빼미족' 등장 = 한국에서 월드컵이 개최돼 과거 유럽, 미주지역 월드컵때처럼 새벽시간때에 월드컵을 시청해야 하는 애로는 없어졌지만, 열성 축구팬들 중심야 재방송을 보고 또 보는 '올빼미족'들은 어김없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이들 '올빼미족'은 심야 월드컵 경기 시청에 따른 늦잠 후유증으로 지각하거나충혈된 눈으로 근무하기 일쑤. `붉은악마' 회원 정모(34.회사원.경기 고양시 일산구)씨는 "여느때보다 일찍 귀가해 생방송으로 개막전을 봤지만 너무 재미있어 녹화분을 계속보느라 밤을 새다시피 했다"며 "앞으로 한달간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지 걱정"이라며 즐거운비명을 질렀다. 이동훈(24.대학3년)씨도 "공중파는 물론 케이블TV에서 계속된 재방송을 밤새 보느라 다음날 졸음을 참느라 혼났다"며 "기말고사가 다가오는데 월드컵을 안 볼 수도없어 큰일"이라며 난감해했다. ◇ 유흥업소 울상 = 월드컵 개막후 조기귀가 현상으로 시내 유흥업소 등은 대형스크린 설치 등 자구책 마련으로 월드컵 손님의 옷자락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개막전이 열린 지난달 31일만 해도 평소보다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 울상이다. 서울 종로구 청진동 T유흥주점 업주는 "월드컵에 대비해 TV를 마련하기도 했지만 개막전이 열린 지난달 31일 밤 평소 금요일에 비해 30%가량 매출이 감소했다"고말했다. 서울 강남의 한 룸살롱 마담 김모(36.여)씨는 "월드컵 개막후 손님의 발길이 뚝끊겨 단골손님들한테 룸에서 TV를 볼 수 있도록 할테니 우리 집에서 술도 마시고 월드컵도 즐기라고 전화판촉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여의도의 한 커피숍은 TV가 없어서인지 저녁내내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 기타 = 월드컵은 사내연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구자연(25.여.경기 일산)씨는 "폴란드전이 끼어있는 3일부터 5일까지 경기도 용인에서 사내교육이 잡혀있다"며 "한국전을 보게해달라는 사원들의 빗발치는 요구때문에 회사에서도 연수원내 대형스크린 관람을 허용키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C레포츠센터는 스포츠 강사들의 월드컵 관람, 수강생들의결석 등을 감안, 스쿼시, 재즈댄스, 수영 등 모든 종목에 대한 레슨을 한국전이 열리는 3일간은 실시하지 않는다고 공고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honeyb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