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79년 당시 GDP의 10% 이상을 차지하던 공기업을 민영화하기로 했지만 처음부터 거창한 "그랜드 플랜"이 있었던건 아니다.

"일단 팔고 보자"는게 전략이었다면 전략이다.

대처정부 민영화정책의 1급 브레인이었던 아담스미스연구소의 이먼 버틀러 박사는 "영국의 민영화는 어린애가 수영을 배우는 것과 같았다"고 밝혔다.

어린애가 수영장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잘못하다가도 점차 익숙해져가는 이치다.

일단 민영화라는 화살을 당기자 추진력이 생겼고 좌절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랜드 플랜없이 이루어진 민영화이다 보니 문제도 많았다.

우선 민영화된 기업의 제품 가격이 하락했지만 아직도 민간업체와 경쟁하기에는 요원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가장 큰 민영화기업중 하나인 BT(브리티시 텔레콤)의 국제 및 시외전화요금이 과거보다 떨어졌다지만 아직 경쟁업체에 비하면 비싸다.

완전한 경쟁이 아니고 제한적인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두번째로 공기업 민영화 작업을 거치면서 헐값 매각과 국부유출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BT의 경우 매각당시 주주의 절반이 차익을 조금 남기고 주식을 기관투자가에게 팔았다.

그래서 외국인과 금융기관만 좋은 일 시킨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어떤 기업은 상장이후 가격과 비교해 20%나 싸게 매각한 것도 있어서 국민재산을 헐값에 처분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런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데도 영국민영화가 다른 나라에 비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당초 세웠던 목표를 가장 충실히 이행했기 때문이다.

영국이 어떻게 경쟁촉진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는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시사적이다.

대개 정부가 공기업으로 소유하고 있는 기업은 통신 전기 가스 철도 상하수도 등 이른바 네트워크산업들이다.

이런 산업은 대부분 자연독점산업이다.

그래서 이런 독점산업을 민간에게 판다고 해도 정부독점이 민간독점으로 전환된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경쟁을 도입해야 하는데 거대한 망(네트워크)를 가진 산업이라 다른 경쟁자를 도입하면 중복과다투자가 된다.

그래서 영국정부는 독립적 재규제(re-regulation)라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

영국은 민영화된 통신 가스 전기 교통 상하수도 등 주요산업별로 별도의 규제청이 있다.

예컨대 통신산업에는 Oftel(Office of Telecommunication)이라는 규제청이 있다.

이곳이 하는 일은 가격규제와 경쟁촉진이다.

이 규제청은 정부와는 완전히 독립적인 기관이다.

Oftel은 직원이 약2백여명이 조금 넘는데 통신산업에 대한 가격규제와 경쟁촉진만을 연구하고 지시한다.

실질적인 시장경쟁이 보장이 안되니까 정부가 이런 식의 재규제로 경쟁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이들이 하는 가격규제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다.

원가가 얼마니까 마진을 얼마 먹고 가격을 얼마 받으라는 것은 이른바 수익률규제다.

그러나 수익률을 규제하면 기업은 불필요한 과다투자를 하거나 지출을 늘려서 원가를 높이려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영국은 "RPI-X"라는 합리적인 가격규제 방식을 쓴다.

"RPI"는 소비자물가지수고 "X"는 규제당국이 민간과 합의해서 수익과 비용이 같아지는 수준에서 정하는 가격이다.

이같은 최고가격제로 기업은 수익을 내기 위해 내부경영혁신에 나서지 않을 수가 없다.

또 산업별 규제기관은 기업에 가장 민감한 가격문제를 다루는 곳인 만큼 독립성보장이 중요하다.

독립규제청은 해당정부부처로부터 완전히 독립돼 있다.

예컨대 청장은 현직대학교수같은 민간인이다.

정부로부터의 독립만이 아니라 피규제기업으로부터의 독립도 중요한 이슈다.

초기에 RPI-X 방식을 쓰는데 X라는 경영 효율지수는 자의적인 판단이 가능한 부분이라 담당직원의 부패 등의 문제도 발생해 지금은 업계와의 공개적 협상을 통해 결정하고 있다.

안상욱 기자 sangw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