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낮 김대중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간의 청와대 여야 총재회담이
무산된 배경은 표면적으론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고문조작의혹" 등을 명문
화 해 발표문에 넣느냐 하는 문제가 쟁점이 됐다.

그러나 실제론 경제청문회 개최 시기, 나아가 개최 여부에 대한 여야간
미묘한 입장차이가 무산의 직접적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여야는 총무접촉등을 통해 경제청문회를 오는 12월2일 새해예산안 합의처리
후 정기국회 회기내에 실시하자는 데 잠정 합의했었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경제청문회를 회담 의제에서 제외하는 대신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 등 3개항을 의제에 새로 포함시킬 것을 주장했다.

반면 국민회의는 이들 사건은 현재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안인
만큼 "정치적 의제"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여권은 한나라당의 이같은 입장 변화가 경제청문회를 할 의사가 없음을
드러내는 반증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와관련, 여권은 경제청문회를 실시할 경우 현재의 경제난이 나아지지
않고 있는 부분에 대한 책임을 "과거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야권에서는 보고 있다.

야권은 또 청문회 개최가 자칫 과거 정권의 실정뿐만 아니라 현 야권에도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야권은 현정권에 "경제실정"의 면죄부를 주고 자신들에게 "독약"이
될 수 있는 청문회는 예산안 처리가 끝난 뒤 다시 논의하는 쪽으로 입장을
굳혔다는 관측이다.

한때 청와대에서도 한나라당의 주장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이날
아침 자민련 박태준 총재가 김대통령과의 조찬회동에서 "무조건 청문회개최"
를 주장함으로써 김 대통령의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는 분석이다.

여야간의 뿌리깊은 불신도 이번 총재회담 무산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나라당 입장에선 이번 총재회담을 계기로 당내 "이회창 체제"를 뿌리내리
고 당을 정상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다.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 등을 회담의 의제로 넣자고 강경입장을 고수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막판에 여권이 총재회담을 그저 정기국회를 "조용히"넘기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강하게 일면서 "들러리를 설 수 없다"
는 강경론이 힘을 얻었다.

반면 여권은 야당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이번 회담무산으로 더욱 깊어졌다.

사무총장, 원내총무간 막후대화에서 합의된 사항마저도 번번히 "비토"를
놓는 이회창총재의 정치스타일에 대한 거부감이다.

이번 여야총재회담이 무산됐지만 김 대통령의 중국방문(11일)이전에 전격적
으로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여야간 물밑접촉을 통해 현안해결을 시도하고 있는데다 "게임의 파트너"로서
상호간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으로선 정기국회의 원만한 운영과 각종 경제개혁의 연내 매듭,
내년봄까지 정치구조 개혁 마무리 등 야당측의 협력이 필요한 "청사진"을
실현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총재 또한 정치적 위상을 가능한한 빨리 확보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있는
만큼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질 여지는 남아있다.

여야가 이같은 이해를 공유할 때 김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후에라도 총재
회담은 성사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만일의 경우 총재회담이 완전히 무산된다면 정국은 무한정쟁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의 정치쟁점에다 경제청문회 실시 여부, 각종 경제개혁 및 민생법안
처리 등 현안이 추가되면서 정기국회는 여야간 정쟁터로 전락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정치불안은 김 대통령의 정치개혁 구상과 맞물려 내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 이의철 기자 ec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