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 세대교체 바람이 이는가.

LG그룹이 오는 2월 정기주총 시즌을 전후해 구본무부회장(51)에
대권을 안겨주는 "3세 경영체제"를 구축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문제에 대한 재계의 관심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LG이외에도 현대 한라 코오롱 한진 한보등 현 총수의 나이가 70이
넘은 그룹들도 "대권 대물림"이 멀지않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일단 LG그룹의 총수직 대물림이 기정 사실화된 것으로 본다면 "다음
차례는 어느 그룹이 될 것인가"도 관심거리인 셈이다.

먼저 LG그룹의 경우 구자경현회장(71)이 경영일선에서 은퇴하고
장남인 구부회장에게 그룹회장직을 물려주는 것은 "공식 발표만
남은 사안"이라는 게 재계의 한결같은 관측이다.

연초 그룹명을 구럭키금성에서 "LG"로 바꾸고 계열사들의 사명과
각종 로고를 통일하는등 기업이미지 통합(CI)을 단행한 것은 대권승계를
앞둔 사전정지 작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룹안팎에서는 <>"기업윤리강령 선포 2주년 기념식"을 갖는 내달
20일 구회장이 은퇴를 선언할 것이라는 "2월설"과 <>고객의 달 5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4월초가 유력하다는 "4월설"이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다.

구인회-자경-본무등 장자상속을 이어가고 있는 LG그룹의 세대교체는
다른 그룹들에도 적지않은 파급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우선적인 관심대상은 코오롱그룹이다.

창업자인 고이원경명예회장의 장손이자 이동찬현그룹회장(74)의
맏아들인 이웅렬부회장(40)이 "표나게" 그룹경영의 전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서다.

이회장은 작년 7월 장남에게 그룹 주력기업인 (주)코오롱의 사장직까지
겸직시키면서 "아들이 40세가 되기 전에 경영권을 이양해 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회장의 말을 액면대로 받아들인다면 코오롱그룹의 "3세체제"는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얘기가 된다.

LG나 코오롱에 비해 "속도"는 늦어질지 모르지만 현대와 한라그룹도
머지않아 대권상속이 가시화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LG나 코오롱의 경우와 다른 게 있다면 장자집중 상속이 아닌 "분할
상속", 곧 계열분리를 전제로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그룹의 경우 보기에 따라서는 이미 2세들에 의해 분할 운영되고
있는 "연방그룹"으로 보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창업자인 정주영명예회장(81)이 지난 93년이후 그룹총수업무를
실제인 정세영회장(68)에게 맡기고 있으나 실제로는 정명예회장의
2세들이 주요 계열사의 회장자리에 앉아 소그룹회장역할을 해내고
있다.

차남 몽구씨(58)가 현대정공 현대자동차써비스 인천제철 현대강관등을
이끌며 이른바 "MK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3남인 몽근씨(54)는 금강개발, 5남인 몽헌씨(48)는 현대전자, 6남
몽준씨(45.민자당의원)는 현대중공업, 7남 몽윤씨(41)가 현대해상화재보험,
8남 몽일씨(37)가 현대종합금융을 맡는 식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이중 몽근씨의 금강개발계열과 몽윤씨의 현대해상화재보험은 계열분리가
결정돼 지분정리등의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한라그룹도 정인영회장(76)이 몽국(43) 몽원(41) 두 아들에게 각각
부회장직함을 주어 한라중공업.시멘트.레미콘과 만도기계.한라건설.공조등을
나누어 관장토록 하고 있다.

한라의 경우는 그러나 정회장이 고령의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그룹경영의 온갖 사안을 직접 챙기는등 "의욕"을 보이며 후계문제에
일체 언급을 않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권승계가 의외로 늦춰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얘기다.

이밖에 한진그룹은 조중훈회장(76)의 장남인 양호씨(47)가 주력기업인
대한항공의 사장을 맡고있는 것을 비롯해 차남 남호씨(45)는 한진건설사장,
3남 수호씨(42)는 한진해운 사장, 4남 정호씨(38)는 한진증권 전무로
계열사를 나누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다만 조중훈회장이 후계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창업자에게는 정년이
없다"고 강조해 온 점에 비추어 경영권 승계작업이 아직 구체화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보그룹은 정태수회장(73)이 3남인 보근씨(33)에게 그룹부회장을
맡겨 철강 신.증설작업을 직접 진두지휘하도록 맡기는 등 실질적
후계자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동국제강은 올초 장상태회장(69)이 그룹회장실을 기획조정실로
확대 개편하면서 인천제강소장으로 나가 있던 장남 장세주전무(43)를
기조실장에 앉히는등 후계구도를 가시화하고 있다.

재계의 세대교체 움직임은 이처럼 현총수가 70고령인 그룹들에만
그치지 않는다.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제일모직은 고이병철회장의 장손인 재현씨(33)가
상무로 사실상의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경그룹도 최종현회장이 장조카인 윤원씨(46)에게 선경인더스트리
부회장직을 맡기고 있고 자신의 장남인 태원씨(36)에겐 (주)선경
이사직을 주는등 후계구도에 신경을 쓰고 있다.

재계는 이같은 주요 그룹들의 세대교체 움직임이 "공격 경영"의
새 바람을 동반하지 않을까 주시하고 있는 눈치다.

"부모 잘만나 운좋게 대기업총수가 됐다"는 식으로 주변에서 제기될
수 있는 사시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도 다양한 사업확장이나 질적
고도화에 주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가장 최근인 지난 87년 11월 이건희회장체제로 세대교체를 이룬
삼성그룹이 최근 "신경영"의 모토를 내걸고 자동차.석유화학.유통등
굵직한 분야로 사업영역을 적극 확대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LG그룹도 구본무체제 출범을 앞두고 작년말 중역진을 50대위주로
대폭 물갈이, 공격경영의 틀을 다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웅렬코오롱부회장도 "이건희회장의 신경영과 1등주의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공격적인 경영의지를 가다듬고
있다.

최근 정부가 밝히고있는 업종진입제한 철폐등 산업정책의 큰 흐름이
바뀌고있는 현실과 맞물려 재계의 "신세대 바람"이 재계판도에 어떤
변화를 몰고올 지 주목된다.

<이학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