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생명 5000운동" 새정부 출범과 함께 교통부장관자리에 오른 이계익씨
가 장관시절 벌였던 켐페인이다. 92년 교통사고사망자는 1만1천6백40명.
이를 2000년까지 5천명으로 낮추자는게 운동의 핵심이다.

교통안전진흥공사 도로교통안전협회 운수사업자단체 모범운전자회 등
시민단체들이 총동원돼 운동추진본부를 결성했다. 장관이 직접 본부장
으로 나섰다.

교통부 등 관계기관에 대형 현수막까지 걸렸음은 물론이다. 주무부처인
교통부는 <>안전의식제고 <>안전시설정비 <>운전자관리등 과제별로 9개
분야에 걸쳐 30개 실천과제를 내세웠다. 시시각각 일별 추진실적을
점검해댔다.

그러던중 10월에 서해페리호 참극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3백명가까운
생명을 잃는다. 장관이 바뀌었다. 새장관이 오자 "운동"은 흐지부지됐다.

"글쎄요. 뭔가 한건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전시행정의 대표적인 표본
이랄까요. 장관이야 생색이 나겠지만 현실성없는 일에 투입되는 인력과
예산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뿐이지요. 힘센장관이 밀어부치니 않할수도
없고"(교통부 K과장) 있을때 한건 올려야한다는 한탕주의.

이는 장관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어떤 자리에 오르면 뭔가 그럴듯안
업적을 남겨야 한다는 것. 엘리트의식이 강한 경제관료에겐 강박관념에
가깝다.

"내가 과장때 그법을 만들었죠""그건 내가 청와대에 파견나가 있을 때
한겁니다" 뭔가 "한건"했다는 것은 그래서 경제관료들이 은근하게
내비치는 자랑이기도 하다.

"개혁"을 강조하는 문민정부에서는 더욱더 "한건"에 대한 강박관념이
더욱 심해진게 사실이기도하다. 한건중에 가장 확실한 것은 새로운
기구나 단체를 만드는 것. 우리나라 금융기관 생성사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금융제도가 지금과 같은 틀이 짜여진 것은 24대 재무부장관으로 최장수
기록을 가지고 있는 남덕우장관때. 사채동결을 골자로한 "8.3"조치이후
사금융을 제도권으로 흡수하기위해 투자금융 상호신용금고 신용협동조합
등 "2금융권"을 만들었다.

25대인 김용환장관때 종합금융회사를 설립되어 1.2금융권의 구조가
완성됐다.

이 두장관이 짠 틀은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고있다. 변한게 있다면
금융기관의 수. 새로 부임하는 장관들은 예외없이 금융기관수를 늘려놨다.

26대 김원기장관은 79년말 정치사회적 혼란기에도 7개의 투금사를 인가
했고 27대인 이승윤장관때 11개의 투금사를 세워줬다. 5개월남짓 장관을
했던 28대 나웅배장관은 신한은행 설립을 인가했다.

29대 강경식장관때도 투금사신설은 계속됐고 설립이 억제됐던 신용금고
신설도 허용됐다. 30대 김만제장관때는 3개회사에 불과했던 리스회사가
8개로 늘었다.

31대인 정인용장관때는 신설이 주춤했다. 32대 사공일장관시절엔 6개였던
생명보험회사가 10개로 됐다. 하일라이트는 33대 이규성장관때. 생보사를
기존 숫자보다 더많은 13개 인가했고 리스회사 12개 지방투신사 5개등을
만들었다.

34대 정영의장관은 "합전법(금융기관합병및 전환에관한법률)"을 통해
투금사수를 줄여나갔다. 그러나 8개투금사가 은행(하나 보람)으로, 증권
(상업등)으로 새로 태어났다.

35대 이용만장관도 예외는 아니다. 리스회사가 5개 설립됐고 동화은행
평화은행이 이때 생겼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던 종금을 추가 설립하기로 하고 공식발표까지
했으나 대기업로비설등 여론에 밀려 성사되지 못한 경험도 있다.

모든 정책에는 합목적성이 있다. 나름대로 "시대의 요구"에 맞는 논리를
갖고있다. 명분없이 설립된 금융기관은 하나도 없을 정도다. 지방리스
지방투금은 지방경제활성화를 위해, 동화은행은 이북5도민을 위해,
평화은행은 근로자들의 복지향상을 위한다는 각각의 논리로 포장되어있다.

장관마다 뒤질세라 세워놓은 금융기관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지난 6월
24일 재무부와 은행감독원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두기관이
같은날 "생보사 지급능력확보규정"과 "은행경영 건전화를 위한 종합대책"
을 발표했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간단하다. 부실금융기관은 도태시키겠다 것. 장관
들이 장기적인 계산없이 세워놓은 금융기관들의 상당수가 "과당경쟁"
"부실" "도태"란 단어로 결론이 난 셈이다. "설립인가서에 잉크로 아직
마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벌써 사망신고서를 준비해야하니 착찹한
심정이지요"한지방생보사 임원의 푸념이다.

역대 장관들이 대부분 "확대"지향이었음을 비춰볼때 홍재형현장관이 이런
확대의 찌꺼기들을 정리하겠다고 나선 것은 일단 평가할만하다는게 금융가
의 얘기다.

그것도 다른 금융기관으로의 전환등 편법이 아닌 "문을 닫으라"는 정공법
으로.. 그러나 그런 홍장관도 다른 금융기관협회들이 기능을 축소해가는
마당에 새로 "투자신탁협회"설립을 검토하고있는 알려지고있다.

아이러니치곤 상당한 아이러니다.

정책은 한건.한탕주의에 앞서 미래를 보고 해야한다. 조순전부총리가
강화해놓은 경제교육기획국이 정재석부총리가 취임하면서 없어지는 등
사람에 따라 정책이 바뀌는식은 곤란하다.

누구 생각이 옳은지는 물론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그러나 정책이 왔다
갔다하는데 들어가는 비용 파장에 대해선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92년 필리핀에 있는 ADB(아시아개발은행)로 파견나갈때 "1급상당"이란
직급을 재무부 K국장이 장관이 바뀐 지금 "상당"직급을 인정받지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도 그중 하나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