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기억 80년 싸움… 야외촬영 갈때 당신 어깨엔?
[세기의 라이벌] 캐논 vs 니콘
기자회견장을 가보면 으레 누군가에게 플래시 세례가 쏟아진다. 대다수 사람들은 플래시 빛을 뒤집어 쓰고 있는 앞쪽의 주인공을 보게 마련이다. 하지만 잠깐만 뒤로 시선을 돌려보면 검은색으로 칠해진, 척 봐도 묵직한 카메라의 머리 부분에 거의 예외없이 쓰여진 철자를 발견하게 된다.

‘Nikon’ 혹은 ‘Canon’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IDC가 발표한 지난해 디지털 카메라 시장 점유율 현황을 보면 캐논이 19%로 1위, 이어 소니가 17.9%로 그 뒤를 바짝 따라잡고 있다. 니콘은 12.6%로 3위, 삼성이 11.1%로 4위를 차지했다. DSLR(디지털 일안반사식) 카메라 부문에선 역시 캐논이 44.5%로 절반 가까이 시장을 잠식한 모습이다. 니콘이 29.8%로 2위, 소니가 11.9%로 3위다. 하지만 각 회사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프레스(언론보도) 시장에선 캐논과 니콘이 대등한 수준으로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전쟁통에 생겨난 광학회사들


[세기의 라이벌] 캐논 vs 니콘
근대 이후 광학기술의 발전은 제1,2차 세계대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레이더나 전파추적 장치가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포격을 하거나 전투기로 폭탄 등을 떨어뜨리려면 광학 장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독일이 광학 분야에서 선두로 손꼽혔다. 최고의 렌즈로 일컬어지는 라이카, 칼 차이스, 슈나이더 등은 모두 독일 회사다.

당시 독일의 전력을 눈여겨본 일본은 군사력을 키우기 위해선 광학기술 확보가 핵심이라는 점을 간파했다. 일본 해군은 군수회사였던 미쓰비시에 광학회사 설립을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미쓰비시는 후지이렌즈 제조소 등을 인수해 1917년 ‘일본광학공업주식회사’를 만들었다. 창업자는 미쓰비시 재벌의 당주였던 이와사키 고야타, 초대 사장은 와다 요시히라였다. 망원경, 라이플 조준경, 잠망경 등을 생산했다.1946년 회사의 이름이 니콘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일본광학’의 일본어인 ‘니폰 고가쿠(Nippon Kogaku)’를 줄여서 만든 것이다. 캐논은 니콘보다 16년 늦은 1933년 설립됐다. 처음에는 정기광학연구소(精機光學硏究所)란 이름으로 출발했다. 창업자인 요시다 고로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는데 자신이 만들려는 카메라에 ‘관음(觀音)’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를 일본식으로 읽으면 ‘콰논(Kwanon)’이다. 회사에선 콰논을 본떠 캐논(Canon)이란 상표를 1935년 출원했고 1947년 캐논 카메라 주식회사로 회사명을 바꾸게 된다.

●독자 생존의 길…니콘의 독주


1950년대 초반까지 니콘과 캐논의 전략은 동일했다. 당시 최고급 카메라였던 독일의 라이카, 콘탁스의 RF(레인지파인더·삼각측량법을 이용한 거리계로 초점을 맞추는 형식으로 뷰파인더가 렌즈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함) 카메라를 모방하는 것이었다.

캐논은 라이카를, 니콘은 콘탁스 카메라를 벤치마킹해 제품을 내놨다. 이같은 전략은 1954년을 기점으로 극적인 변화를 맞게 된다. 라이카는 1954년 9월 독일에서 열린 사진기자재 박람회 ‘포토키나’에서 최신 RF 카메라인 M3를 선보였다. 역사적으로 가장 완벽하고 아름답다고 불리는 카메라다. 캐논의 미타라이 다케시 사장과 니콘의 나가오 마사오카 사장은 현재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기술로는 M3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략을 수정한다. RF 카메라 대신 SLR(일안반사식·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빛이 카메라 상단 펜타프리즘을 통과해 파인더로 들어오는 방식으로 렌즈와 뷰파인더가 연결돼 있음) 카메라에 사활을 걸기로 했던 것. 역설적으로 이들의 전략 선회는 카메라 시장의 주류가 RF에서 SLR로 바뀌는 결과를 낳았다. 카메라 시장의 중심이 독일에서 일본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절치부심한 니콘과 캐논은 1959년 각각 ‘니콘F’와 ‘캐논플렉스’란 이름의 SLR 카메라를 만든다. SLR 카메라는 RF보다 다양한 렌즈를 사용하기가 쉬웠고 렌즈 기술의 발달로 초점거리를 바꿀 수 있는 줌렌즈가 활성화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이때부터 니콘의 독주가 시작된다.

●‘과거와의 단절 ’선택한 캐논

1977년 캐논 사장 자리에 오른 가쿠 류미치로 사장은 니콘을 뛰어넘기 위해 ‘과거와의 단절’을 택했다. 1980년대 들어 카메라 시장의 화두는 ‘자동 초점(Auto Focus)’ 기술이었다. 1987년 AF SLR 카메라 ‘EOS-650’을 출시한 캐논은 수동 렌즈군인 FD 마운트와 자동 렌즈군인 EF 마운트를 분리했다. 반면 1986년 ‘F-501’로 AF 시대를 연 니콘은 기존 수동 카메라에서 사용하던 렌즈를 신형 카메라에서도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방침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래된 수동 렌즈도 최신 디지털SLR에서 사용 가능하다. 초점을 맞추는 모터를 두는 곳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니콘은 카메라에 모터를 내장했지만 캐논은 렌즈에 모터를 뒀다.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8년 니콘은 ‘F4’를 발표했다. 다음번 플래그십인 ‘F5’는 8년 뒤인 1996년에 나온다. 니콘이 느긋하게 움직이던 이 기간 중 캐논은 발빠른 모습을 보였다. 1989년 EOS-1을 시작으로 EOS-5(1991년), EOS-1N(1994년) 등을 내놨고 2000년 마지막 필름카메라인 EOS-1V를 출시했다.

수동 렌즈가 널리 퍼져 있던 상황에서 캐논이 선택한 과거와의 단절은 모험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EF 마운트가 만들어진 지 25년 정도 지나면서 캐논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입증됐다.

●캐논의 역전…끝없는 경쟁

한 세기가 바뀌면서 카메라 시장도 디지털로 급속히 전환된다. 니콘은 밀레니엄 직전인 1999년 F5를 베이스로 만든 최고급 디지털 카메라 ‘D1’을 발표한다. 캐논은 DSLR 모델인 D30, D60 등을 내놨지만 D1의 성능을 따라갈 수 없었다.

니콘의 우세가 이어지는 듯했지만 신기술을 축적해온 캐논의 저력이 드러나게 된다.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회장은 역전의 발판을 노리며 플래그십 디지털 카메라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니콘은 2001년 말 D1을 개량한 프레스 특화 모델 ‘D1h’를 출시했다. 초당 5연사, 266만화소의 성능이었다. 하지만 캐논은 이듬해 5월 월드컵 직전 초당 8연사, 406만화소의 ‘EOS-1D’를 내놓는다. 1D는 캐논이 디지털 시장에서 한동안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와신상담을 다짐한 니콘이 2007년 새로운 플래그십 ‘D3’를 내놓으면서 다시 시장은 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캐논의 DSLR 카메라에서 고질적으로 일어났던 초점 문제로 사용자들의 불만이 커졌고 그 와중에 최고급 기종인 ‘EOS-1Ds 마크3’에서 오일이 새는 현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현재 프레스 카메라 시장은 캐논과 니콘이 각각 절반씩 차지한 상황이다.

니콘과 캐논의 특성은 명확하게 구분된다. 카메라 업계의 최대 라이벌이라고 하지만 캐논이 카메라뿐 아니라 비디오 카메라, 복사기, 프린터 등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는 반면 니콘은 현미경, 안경 렌즈, 쌍안경, 반도체 노광장치 등 광학 부문에 집중하고 있다. 캐논이란 이름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신기술, 화사함을 떠올린다면 니콘에는 전통, 장인정신, 묵직함 등의 단어가 따라붙는다. 80여년 동안이나 경쟁을 펼쳐온 두 회사의 카메라 전쟁은 이번 세기에도 쉽게 판가름날 것 같지 않다.

이승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