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 이대리] "건설사 여직원? 드셀 것 같아"…소개팅 앞두고 돌연 '퇴짜'
“저기 커~다란 건물 보이지? 저거 아빠 회사가 지은 거야.” 쌍용건설에 다니는 박 과장은 지난 연휴 가족 여행지로 택한 싱가포르에서 이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높이 200m에 달하는 마리나베이샌즈 빌딩 등 쌍용건설이 지은 랜드마크가 많아서다. 다른 건설사 직원들도 비슷하다. 롯데건설에 다니는 김 대리는 123층짜리 잠실 롯데타워를 볼 때마다 뿌듯하다. 현대산업개발의 최 과장은 부모님과 간 부산 여행에서 해운대 아이파크를 자랑했다.

건설업계 종사자라면 “이거 우리 회사가 지었다”며 으쓱거려본 적이 한 번씩은 있기 마련이다. 건물과 도로, 발전소, 다리 등 대규모 프로젝트가 많아 자랑거리도 많다. 하지만 주변의 오해도 적지 않다. 술 많이 마시고, 위계질서가 엄격할 것 같다는 편견 등이다. ‘노가다’ ‘토건족’ 등으로 불릴 때는 마음도 상한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웃고 우는 일도 많다. 건설업계 김과장 이대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장이 승패를 가른다”

건설업체 직원들은 현장을 중시한다. 어느 지역이든 직접 돌아보는 것이 원칙이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분양 일정을 앞두고 지방에 상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화건설의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근무하는 손 팀장은 지난 8월 2주 연속 주말을 전남 여수에서 보냈다. 여수 웅천지구에 분양 단지가 연이어 나와서다. 손 팀장은 “2주간 주말을 반납했지만 테라스하우스가 이틀 만에 완판(완전판매)되는 등 분양 결과가 좋아 피곤이 싹 달아났다”고 했다.

재건축 아파트 단지 수주전에서도 현장이 승패를 가르곤 한다. 한 대형 건설사의 강 과장은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재건축 아파트 단지를 지날 때마다 신입사원 시절이 떠오른다. 당시 그는 한 조합원이 운영한 금은방을 1주일 내내 방문했다. 조합원의 표심을 얻기 위해서였다. 강 과장은 “대학생 때도 귀걸이를 하지 않았는데 그 금은방에서 처음으로 귀를 뚫었다”며 “귀걸이, 목걸이 등도 여럿 샀다”고 말했다.

해외 현장에서 독특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최근 쿠웨이트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박 대리는 “쿠웨이트에서의 첫날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여독을 풀기 위해 샤워기를 틀었는데 시원한 물은커녕 모래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중동의 강한 모래바람과 먼지 탓에 비염도 얻어왔다. 박 대리는 “중동의 햇빛이 워낙 강하다 보니 한국에서 사간 선글라스는 무용지물이었다”며 “중동 전용 선글라스가 있다는 걸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장거리 연애도 흔한 일이다. 같은 건설사 직원과 사내커플인 신 대리는 남자 친구가 해외에 파견되면서 결혼 준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신 대리는 “남자 친구가 4개월마다 한 번씩 서울에 왔다”며 “첫 번째 귀국 때 상견례와 신혼집 마련을 마치고, 두 번째 귀국 때 웨딩촬영을 한 뒤 세 번째 들어왔을 때 결혼식을 올렸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에 웃고 울고

건설사의 주요 사업 부문 중 하나인 주택은 일반 대중이 사서 쓰는 재화 중 가장 비싸다. 사업 하나의 규모가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달하는 경우가 많다. 대출 규제나 분양제도 개편 등 정부 정책 변화에 업계가 큰 영향을 받는 이유다.

요즘 건설업계는 ‘8·2 부동산대책’으로 시장 상황이 바뀌면서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곳의 분양 단지를 담당 중인 김 과장은 매일이 초조하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분양 단지 중도금 대출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금융당국과 은행권, 예비입주자 사이를 뛰어다니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간다. 김 과장은 “요즘은 꿈에서도 은행 관계자들과 대출 협의를 한다”며 “1년 전만 해도 금융권에서 서로 돈을 빌려 가라고 했는데, 이젠 금융회사와 미팅을 잡기도 어려울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정책 기조에 따라 부서 크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최근 건설사에선 정비사업 관련 부서가 확 뜨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도시재생을 주요 사업으로 꼽았기 때문이다. 한 중견 건설사의 정비사업 부서 몸집은 4개월 만에 두 배로 커졌다.

‘토건족’ 편견은 서운

가끔 건설업을 향한 편견 때문에 힘이 빠질 때도 있다. 한 대형 건설사에서 일하는 양 대리는 최근 소개팅을 앞두고 얼굴도 모르는 상대에게 퇴짜를 맞았다. 주선자에게 이유를 묻자 “건설사에서 일하는 여성은 성격이 드세고, 술도 많이 마실 것 같아 피하고 싶다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평소 그와는 정반대 이미지다. 양 대리는 “건설업을 ‘노가다’라고 칭하며 싸잡아 편견을 갖는 이들이 있다”며 “이곳도 다른 업계처럼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두 모여 있는 곳”이라고 했다.

한 건설사의 개발부서에서 근무하는 임 과장은 최근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을 보고 몹시 서운했다고 털어놨다.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예산을 두고 “토건족 배 불리려는 예산”이라고 폄하하는 내용이 많아서다. 그는 “SOC 투자는 공공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며 “이를 단순 먹거리 싸움인 양 취급하는 모습이 아쉽다”고 했다.

건설업계만의 독특한 문화도 있다. 건설업계 종사자들은 회사가 서로 달라도 형님·아우처럼 지내는 경우가 많다. 대규모 사업을 수주할 때 여러 건설사가 컨소시엄을 이뤄 함께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다. 같은 지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서로 낯을 익힐 기회도 잦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업계는 서로 경쟁과 협력을 계속하는 구조로 돼 있다”며 “수주를 앞두고 서로 신경전을 벌이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서로 상생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수영/선한결/설지연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