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수소연료전기자동차(FCEV) 충전소 설치와 운용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일본 내 수소차 시장 확산에 힘을 보태기 위한 조치다. 글로벌 차세대 자동차 시장이 급속도로 전기자동차(EV) 중심으로 바뀌고 있지만, 한국과 함께 일찌감치 수소차 분야에 투자한 일본으로선 관련 시장을 포기할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소차에도 베팅하는 일본…규제 풀어 충전소 늘린다
전기차 시대가 오면 기존 내연기관(엔진) 관련 부품업체 대부분이 도태될 수밖에 없지만 수소차는 상당수 부품산업을 보존할 수 있다는 점도 일본 정부가 수소차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꼽힌다.

◆수소충전소 규제 20개 완화

2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수소를 연료로 달리는 수소연료전기차 보급을 위해 수소 스테이션(충전소)을 설치·운영하는 것과 관련한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2018년까지 시설 및 관리감독 요건 등 20개 항목의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유럽과 중국시장을 중심으로 전기차가 차세대 자동차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장기적 시각에서 수소차도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보고 보급 확대를 위한 환경 정비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일본에선 수소충전소 한 곳에 4억~5억엔(약 40억~50억원)의 설치비용과 연간 5000만엔(약 5억원) 안팎의 운영비가 들었다. 수소차 보급 확대를 위해선 충전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본 일본 정부는 저렴한 설비 개발과 규제 완화 등으로 설치비용과 운영비를 절감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시설 안전 감독자에게 요구되는 요건을 완화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수소를 다루는 시설에서 일한 경험이 필요했지만 천연가스 등 일반 고압가스 시설을 다룬 경험이 있는 경우에도 수소충전소 안전감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수소를 담은 용기에 직사광선이 닿지 않도록 지붕 등 덮개 설치를 의무화한 규정도 완화해 용기의 온도 관리만 하도록 할 방침이다.

◆개화 직전 수소차 시장

수소차는 전기를 외부에서 충전해야 하는 일반 전기차와 달리 연료로 수소를 사용한다. 연료전지를 통해 충전한 수소와 공기 중 산소를 반응시킬 때 생기는 화학에너지를 전기로 바꾼다. 배터리를 거친 전기로 모터를 돌리는 만큼 수증기만 나올 뿐 유해가스는 전혀 배출되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충전시간이 짧고 한 번 충전으로 400㎞ 이상을 달릴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한국 현대자동차가 2013년 세계 최초로 수소차 상용화에 성공한 뒤 도요타자동차(미라이·2014년) 혼다자동차(클래리티·2016년) 등 일본 자동차업계도 수소차 경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대당 8000만원이 넘는 비싼 가격과 충전 인프라 부족으로 판매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수소차는 일본과 미국시장에서 주로 판매됐는데 누적 판매 대수가 1000대 정도에 불과하다. 올해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가 탄력을 받기 시작해 내년에는 연간 3만 대 이상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프로스트앤드설리번에 따르면 2020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누적판매 대수가 16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산업성도 2020년까지 일본에서 4만 대의 수소차를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8월 말 현재 일본 전역에 91개에 불과한 수소충전소를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160개로 늘리기로 했다. 2025년까지 320개 수준으로 늘리는 것이 목표다.

◆“전기차와 경쟁 끝나지 않았다”

도요타 등 주요 기업이 전기차와 병행해 수소차 개발에도 발을 들인 일본으로선 유럽·미국 자동차업체에 비해 기술 우위를 지닌 수소차를 선뜻 포기할 수 없었다는 분석도 있다. 전기차와의 경쟁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특히 현재의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되는 것에 비해 수소차가 차세대 자동차 시장을 석권하는 것이 부품산업 등 전후방 산업에 미치는 충격이 작다는 점도 고려 요인이다.

전기차는 엔진 대신 모터로 구동하기 때문에 기존 내연기관 차량의 엔진에 들어가던 수만 개의 부품이 필요 없다. 가솔린차에 비해 부품 수가 40% 이상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수소차는 전기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존 부품과 비슷한 부품이 다수 사용된다. 덴소를 비롯해 굴지의 자동차 부품산업을 구축하고 있는 일본으로선 부품산업에 미칠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수소차 시장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