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물러난 안경환 >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16일 서울 서초동 대한법률구조공단 사무실에서 ‘위조 혼인신고’ 등의 의혹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고 머리 숙여 사죄했다. 안 후보자는 기자회견 후 9시간여 만에 “정부의 개혁 추진에 걸림돌이 될 수 없다”며 자진 사퇴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 결국 물러난 안경환 >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16일 서울 서초동 대한법률구조공단 사무실에서 ‘위조 혼인신고’ 등의 의혹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고 머리 숙여 사죄했다. 안 후보자는 기자회견 후 9시간여 만에 “정부의 개혁 추진에 걸림돌이 될 수 없다”며 자진 사퇴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6일 자진 사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개혁의 적임자”라며 법무부 장관에 지명한 지 닷새 만이다. 문재인 정부 첫 장관 후보자의 낙마 사례다. 새 정부의 내각 구성과 개혁 작업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안 후보자는 이날 오후 8시40분 법무부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개혁 추진에 걸림돌이 될 수 없어 직을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음주운전, 여성비하 논란 등에 이어 ‘몰래 혼인신고’ 등 위법 행위가 잇따르면서 여권 내에서도 자진 사퇴 압박 요구가 쏟아진 데 따른 것이다.

안 후보자는 이날 오전 11시 자신의 의혹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는 ‘사죄’ ‘후회’ ‘반성’이란 표현을 써가며 잘못을 인정했지만 사퇴 표명은 하지 않았다. 안 후보자가 9시간여 만에 전격 사퇴의사를 밝힌 것은 자신의 탄원서로 고교 시절 퇴학 처분을 면한 아들이 지난해 서울대에 수시모집으로 합격한 의혹이 추가로 드러났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안 후보자의 사퇴로 인해 문 대통령의 ‘마이웨이식 인사’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야 3당이 일제히 반대하고 있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기로 하는 등 80%를 웃도는 높은 지지율을 기반으로 ‘여론정치’를 시도하고 있다. 야당은 논문 표절, 음주운전 등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송영무 국방부 장관·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사퇴 공세를 펴고 있다.

청와대와 야당 간 대치로 추가경정예산안과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 등 국정 운영은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 초기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내각’과 박근혜 정부의 ‘수첩 인사(인사가 수첩에서 나온다)’처럼 문재인 정부에서는 안 후보자로 대표되는 ‘까도남(까도 까도 의혹이 나오는 남자) 인사’가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 정부 출범 때마다 반복되는 인사 난맥상은 청와대의 부실 검증과 야당의 발목잡기가 겹친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1월22일 한승수 총리를 지명한 지 45일 만에 조각을 완료했다. 박근혜 정부에선 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는 진통 끝에 첫 후보자 지명부터 조각까지 83일이나 걸렸다.

출범 38일째인 문재인 정부는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현역 의원 불패’ 신화를 이어간 김부겸 행정자치부, 김영춘 해양수산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만 임명했다. 아직 13개 부처 장관이 청문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 3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태세다. 문 대통령의 ‘마이웨이’ 인사에 야권은 “앞으로 협치는 물 건너갔다”고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6일 첫 낙마 사례가 되면서 야권의 공세도 거세질 것으로 관측된다.

바른사회시민회의에 따르면 2000년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박근혜 정부까지 낙마한 후보자는 모두 30명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장상, 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가 청문회 도중 탈락한 데 이어 노무현 정부 6명, 이명박 정부 12명, 박근혜 정부 10명 등이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16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인사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청와대의 부실한 인사 검증에 있다”며 “해도 해도 너무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비판했다.

야당이 인사청문회를 정권 ‘흠집 내기’로 이용하면서 정권 출범 때마다 인사 파동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당선 직후 70%를 넘던 지지율은 정권 초기 인사 파동을 거치면서 40%대로 추락했다.

최준영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부 출범 초기인 허니문 100일 동안 정책 공약을 집중 추진해야 하는데, 인사청문회를 거치며 정권이 동력을 상실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여야가 고위공직자 후보에 대한 명확한 인사 검증 기준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정환/배정철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