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개막한 ‘2017 몽펠르랭 소사이어티(MPS) 서울총회’ 개막식에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앞줄 왼쪽 여덟 번째)과 바츨라프 클라우스 전 체코 대통령(일곱 번째), 김인철 성균관대 명예교수(아홉 번째), 김기웅 한국경제신문 사장(열 번째),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열한 번째), 존 테일러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열두 번째) 등이 참석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8일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개막한 ‘2017 몽펠르랭 소사이어티(MPS) 서울총회’ 개막식에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앞줄 왼쪽 여덟 번째)과 바츨라프 클라우스 전 체코 대통령(일곱 번째), 김인철 성균관대 명예교수(아홉 번째), 김기웅 한국경제신문 사장(열 번째),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열한 번째), 존 테일러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열두 번째) 등이 참석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한국은 내 관점에서는 자유시장경제 체제가 아닙니다.”

페드로 슈워츠 스페인 카밀로호세셀라대 교수의 발언은 귀를 의심케 했다. 8일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개막한 ‘몽펠르랭소사이어티(MPS) 서울총회’ 첫 번째 세션 연사로 나선 그는 한국 경제와 관련해 ‘폭탄 발언’을 잇달아 했다.

◆“한국, 따라잡기 전략 끝났다”

‘호랑이들을 위한 생각’이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그는 신흥국 경제가 채택할 수 있는 통화정책에 관해 논의한 다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의 수출주도 성장전략을 언급했다.

슈워츠 교수는 한국을 방문하기 전에는 한국에 대해 “동화와 같은 환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자유시장경제 덕분에 성장한 줄 알았는데, 자세히 알아보니 좀 달랐다”며 “한국은 따라잡기(catch-up) 성장을 하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선진 기업의 운영 방식이나 해외 직접투자(FDI) 제도 등을 수입함으로써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거시경제 안정성이 갖춰지고 법치 제도가 잘 적용돼 그런 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런 ‘따라잡기 성장’은 이제 끝났다고 잘라 말했다. “원래 모델로 삼았던 선진국 수준에 가까워지면서 기업들이 정부의 수출 촉진 지원에 기대기 어려워진다”는 이유에서다. 중앙은행의 지원과 재무상태가 나쁜 국영기업 등을 유지하는 데 따른 기회비용이 커지고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슈워츠 교수는 한국이 자유시장경제 체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이유에 대해 “한국은 무역과 (기업) 거래가 너무 많은 관리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제 성장이 정체되고 있는 만큼 현 상황을 돌아보라고 조언하고 싶다”며 “한국 국민은 뛰어나기 때문에 자유주의 시장경제로 돌아갈 수 있다면 더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몽펠르랭소사이어티 서울총회 개막] "복지국가 되면 모든 게 해결?…정치인들 장밋빛 약속 믿지 말아야"
◆“복지국가 환상 경계해야”

슈워츠 교수는 정치인의 장밋빛 약속도 경계했다. 그는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국가들이 잇달아 ‘경제가 발전했으니 우리도 이제는 복지국가를 추구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도 내일(9일)이 대선인데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싶을지 모르겠으나 권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많은 사람이 기존 정책과 정치인에게 분노를 느끼는 큰 이유는 복지국가만 세우면 복지, 후생, 연금, 실업문제 등을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약속하지만 그게 다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이 존재하는 것은 엘리트들이 이룰 수 없는 약속으로 사람들을 이끌었기 때문”이라며 “전철을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호한 정치적 규제 줄여라”

슈워츠 교수에 이어 연사로 나선 허버트 그루벨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명예교수는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는다”며 “경제성장이 둔화한 원인은 규제”라고 역설했다. 그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창고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창고에서 시작하려 해도 각종 서류를 갖춰서 제출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루벨 교수는 규제로 인한 미국의 경제적 비용이 1조8800억달러에 달했으며, 2014년 은행들의 규제 준수 비용이 순수익의 22%에 달했다는 내용 등을 소개했다. 2014년 미국 연방규제집에는 ‘해라’ ‘하지 말아라’ ‘요구한다’ ‘금지한다’ 등의 표현이 110만개 등장한다는 점을 소개하며 촘촘한 규제가 기업가정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규제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이 중에서 “도로 규칙이나 안전장치 의무화 등 효율성을 위한 규제는 편익이 비용보다 크기 때문에 정당한 규제”라고 봤다. “실업수당 등 사회보험도 사회 전체의 안녕에 도움이 될 수 있고, 편익이 비용보다 작은 경우에도 대중이 원하기 때문에 규제를 없애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편익이나 비용을 측정할 수 없는 규제와 그 결과를 정당화하기 어려운 정치적 목적의 규제는 줄일 수 있으며,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종 은행 규제나 반(反)독점법, 기후변화 대응 규제 등을 그 예로 들었다.

◆“숫자 채우기식 규제완화는 안돼”

그루벨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시장에 긍정적인 만큼 규제를 많이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규제 하나를 도입할 때 기존 규제 두 개를 풀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에 대해서는 “19세기에 도입한 사문화 규정을 찾아내서 숫자를 채우는 식이 될 뿐”이라며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치인들이 도입을 주장하는 기본소득 제도에는 반대했다. 그는 과거 밀턴 프리드먼 미국 시카고대 교수와 제임스 토빈 예일대 교수가 처음에는 기본소득 구상에 찬성해 이를 실험했다가 완전히 실패하고 반대로 돌아선 일화를 소개했다. “사람들은 기존 복지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는 것은 원치 않고, 기존 복지에 기본소득이 더해지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되면 돈이 안 필요한 사람에게도 돈을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비용이 많이 들어 실행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상은/임현우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