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정부의 근시안적 자원정책
지난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출장을 다녀왔다. 미국의 ‘셰일혁명’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휴스턴은 흔히 ‘오일 캐피털(oil capital)’로 불린다. 세계 석유, 가스 개발 인력과 정보가 여기에 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SK와 롯데 정도를 빼면 국내 기업 중 여기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 특히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같은 공기업은 존재감이 미미했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우리도 답답하지만 지금은 뭘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여력도 없다”고 말했다.

의외였지만 자초지종을 듣고 나니 뻔히 예상된 일이었다. 현지 진출 기업인들은 한결같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공기업을 달달 볶아 해외 자원개발에 나섰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선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자원개발에 철저히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때는 무조건 언제까지 얼마만큼 목표를 채우라는 식이었고 박근혜 정부 때는 부채를 줄이기 위해 웬만한 자산은 다 팔라는 식이었다”고 꼬집었다. 이렇다 보니 한 정부에서 비싸게 사들인 해외 유전이나 가스전을 다음 정부에서 헐값에 되파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국내 공기업들은 해외에서 ‘바보’ 취급을 받았다.

휴스턴에서 만난 한 기업인은 “우리와 일본이 다른 점이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미쓰비시상사 등 일본 기업들도 과거 고유가 때 투자했다 유가가 급락하는 바람에 막대한 손실을 봤다”며 “그래도 여전히 석유개발에서 손을 떼지 않고 새로운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 정부 돈이 들어간 기업도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는 자원개발을 독려하기 위해 관련 기업에 각종 융자나 보조금을 주고 있다. 잠시 어렵다는 이유로 자금을 끊는 일은 없다. 조금 어렵다고 손을 떼면 인력도, 노하우도 한순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자원개발업계에선 장기적 안목이 상식으로 통한다. 자원개발 분야 종사자들은 5월10일 들어설 차기 정부가 상식을 지킬지 궁금해하고 있다.

주용석 경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