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타트업의 패기] 신기술엔 장벽 없다…중국 '사드 보복' 뛰어넘는 K스타트업
한국산 맞춤셔츠를 중국 의류업체에 납품하는 한국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십분정제(十分定制)는 올 들어 벌써 네 곳의 업체와 신규 계약을 맺었다. 한한령(限韓令)으로 한류(韓流) 마케팅을 할 수 없게 된 데다 중국 세관이 한국산 제품 통관을 평소보다 지연시키면서 매출 타격을 우려했지만 실적은 오히려 좋아지고 있다. 박민수 십분정제 대표는 “한류에 기대기보다 제품의 질로 승부하려 했다”며 “수작업과 기계 공정이 적절히 조화된 한국 셔츠를 입어본 중국 소비자가 계속 제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거세지면서 한국 기업의 중국 공포증이 커지고 있다. 중국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도전정신으로 뭉친 스타트업들은 다른 목소리를 낸다. 중국 시장에 대한 이해와 제품 경쟁력이 있다면 ‘사드 역풍’은 충분히 넘을 수 있는 장애물이라는 설명이다.

◆“질 좋으면 계속 쓴다”

스타트업 투에이비는 중국 왕훙(파워블로거) 네트워크를 활용해 화장품 등 한국 제품의 마케팅을 대행해주는 기업이다. 이 회사도 사드 보복 이후 거래처 이탈이나 매출 하락이 전혀 없었다. “정부가 뭐라고 하든 소비자들이 쓰던 화장품을 바꾸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 회사 김성식 대표는 “주로 중국 시장에 대한 이해 없이 무작정 뛰어든 기업들이 정치 등 외부 요소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사드 영향도 베이징에 집중될 뿐 다른 도시는 이전과 별다른 게 없는데 한국에서 너무 과장돼 알려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정보기술(IT) 알고리즘을 활용한 마케팅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 인피니핸스는 한국 거래처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약간의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최근 중국 프랜차이즈 업체들과 마케팅 대행 계약이 순조롭게 이뤄지면서 회사 전체로는 충격이 거의 없다고 한다. 중국 업체들도 국적을 따지기보다 ‘일 잘하는 기업’을 찾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회사 김효기 부사장은 “중국 기업은 물론 시 정부와 일할 때도 한국 기업이기 때문에 느끼는 차별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앱 개발사만 수십만개’라고 불릴 정도로 치열한 중국 앱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한국 스타트업도 있다. 바탕화면 광고를 보면 보상해주는 앱을 제작한 NBT는 올해 1~2월 중국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 정도 증가했다.

중국에서 먼저 찾아와 한국 제품을 사가는 사례도 있다. 스마트스터디는 지난달 중국 게임업체 제트플레이와 손잡고 게임 ‘몬스터슈퍼리그’를 중국에서 출시하기로 했다. 이승규 스마트스터디 중국법인장은 “한 게임 전시회 때 제트플레이 측에서 먼저 찾아와 계약을 제시해 성사됐다”고 말했다.

◆‘위축’이 더 큰 리스크

물론 현장 기업인이 겪는 어려움이 없진 않다. 한국과 교류하는 중국 기업인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한국으로 출국하려는 중국 기업인의 비자 심사를 굉장히 까다롭게 하고 있다는 게 현지 전언이다. 그러나 양국 기업인들은 “곧 지나갈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오랜 기간 신뢰관계를 쌓으며 양국 간 교류가 ‘윈윈’임을 체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액셀러레이터(창업보육업체)를 운영하는 박민지 지상베이스 대표는 “신뢰 깊은 파트너들과는 어차피 거래가 끊기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며 “서로 ‘기다리면 해결될 것’이라고 위로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이 과도하게 위축되는 게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 자체보다 더 큰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지만수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이 관세 인상 등 공식 제재까지 나아가지 않는 한 사드 보복 여파는 유통, 관광 등 중앙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 국한된다”며 “나머지 분야, 특히 스타트업처럼 이전에 없던 새로운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은 큰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에 있는 한국 기업 액셀러레이터인 한국혁신센터 고영화 센터장은 “중국 벤처캐피털(VC)이 중앙정부 눈치를 보면서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위축된 측면이 있지만 그 와중에 중국 기업과 100억원대 상품 공급 계약을 맺은 스타트업도 있다”며 “사드는 사드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라는 게 현지 분위기”라고 했다.

남윤선 기자/베이징=김동윤 특파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