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과 보존은 본질적으로 충돌하기 쉬운 가치다. 현대 도시에선 더욱 그렇다. 고밀도 개발을 통해 공간 이용의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경제적 요구와 문화유산, 자연환경을 보존하려는 공공적 요구는 양립 불가능한 경우가 적지 않다.서울 도심의 세운 4구역 재개발을 놓고 서울시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대립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서울시는 낙후된 세운상가 일대를 전면 재정비해 종묘와 남산을 잇는 녹지축을 복원하고, 고층 랜드마크 건립을 통해 침체된 도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문체부는 사업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의 정전에서 바라보는 역사적 경관을 훼손할 우려가 있어 새로 지어질 건물의 높이를 하향 조정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특별한 희생' 강요 안 돼답답한 교착상태를 타개할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상기할 만한 두 개의 역사적 판결이 있다. 첫 번째는 1998년 12월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이다. 당시 헌재는 “재산권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그린벨트 제도가 합헌이라고 결정하면서도 중요한 단서를 달았다. 공익을 위한 규제라도 개인에게 감내할 수 없는 ‘특별한 희생’을 강요한다면 국가는 반드시 금전적 보상을 하거나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이다.이 원칙을 세운 4구역에 적용해보자. 이 지역은 2004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됐지만 종묘 경관 보호를 위한 고도제한 규제에 막혀 20년 넘게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조합원들이 겪은 재산상 손실과 정신적 고통은 ‘특별한 희생’의 한계를 넘어섰다. 공공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개인
역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들은 관료와 정치인을 제외하면 현장 예술가 출신이 많았다. 유인촌·이창동·김명곤 전 장관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문체부 장관 중 기업인 출신은 최휘영 현 장관이 유일하다. 지난 7월 11일 대통령실에서 최휘영 당시 놀유니버스 대표를 장관으로 지명했다는 소식이 파격으로 받아들여진 이유다. 기업인 출신 문체부 장관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문화예술 분야의 직접적 경험이나 식견은 부족할 수 있지만, 기업인 특유의 합리성, 추진력, 균형감각을 갖췄을 것이라는 기대도 많았다. 영화정책 전환 예고한 최 장관문화예술계에선 최 장관이 전문 분야인 관광산업 육성에 정책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가 가장 선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분야는 영화산업이다. 취임 직후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영화에 대한 정의 변경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발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행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선 영화를 ‘영화 상영관 등의 장소 또는 시설에서 공중에게 관람하게 할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런 탓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에서만 공개하기 위해 제작된 작품은 영화진흥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불합리한 점을 정면으로 겨냥한 발언이었다.최근 국정감사에선 “정부의 영화정책이 ‘지원’ 위주에서 ‘투자’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K컬처 300조원 시대’를 열겠다는 이 대통령의 국정 목표와도 부합하는 발언이다. 문화정책에서 지원과 투자는 근본적으로 철학이 다르다. 지원이 문화의 공공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마침내 넷플릭스 역대 콘텐츠 중 누적 조회 1위에 올랐다. 지난 10일 기준 누적 시청 수 2억9150만 회로 ‘오징어 게임’ 시즌1(2억6520만 회)을 제쳤다.K콘텐츠에 세계가 열광하는 건 익숙한 일이지만 케데헌의 글로벌 흥행은 왠지 모르게 낯설다. 제작사가 일본계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데헌이 그 어떤 K콘텐츠보다 한국적이라는 점은 놀랍다. 케데헌을 둘러싼 낯섦과 놀라움은 영화를 만든 매기 강 감독의 인생 스토리를 듣고 나서 해소됐다. 이민 1.5세대가 만든 케데헌강 감독은 다섯 살 때 가족을 따라 캐나다로 이주한 1.5세대 이민자다. 초등학교 시절 캐나다 사람들은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잘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언젠가 한국을 제대로 알리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H.O.T 같은 1세대 K팝 아이돌과 한국 TV 프로그램을 즐기는 동시에 ‘심슨 가족’ ‘루니 툰’ 같은 서구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자랐다.이런 성장 배경은 그에게 자연스럽게 ‘문화적 혼종성’을 부여했다. 완전히 한국적이지도, 완전히 서구적이지도 않은 그 중간 정도의 정체성이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케데헌도 한국 문화와 서구 문화의 정수가 절묘하게 결합돼 있다. 강 감독은 K팝의 세계관과 팬덤 문화, 그리고 저승사자와 같은 한국적 요소를 해외 관객이 낯설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를 서구 문화권에서 친숙한 슈퍼히어로 장르로 쉽고 매력적으로 풀어냈다.한국 근현대사의 소외된 단면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전시하기 위한 미술관은 전 세계에 10곳 정도 있다. 그중 피카소의 작품을 시대별로 모두 볼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한 컬렉션을 보유한 곳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립 피카소 미술관이 유일하다. 이 미술관은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대신 낼 수 있는 ‘미술품 물납제’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 1973년 피카소 사망 이후 그의 작품과 재산을 물려받은 6명의 상속인은 막대한 상속세를 낼 돈이 없어 약 5000점의 피카소 작품을 세금 대신 냈다. 프랑스 정부는 이때 확보한 작품을 기반으로 1985년 파리 시내에 피카소의 삶과 작품 세계를 기리기 위한 미술관을 건립했다. 허울뿐인 미술품 물납제미술품 물납제는 공공 미술관의 컬렉션 강화, 국민의 예술 향유 기회 확대, 국가 예술 유산의 해외 유출 방지 등을 이유로 주요 선진국에서 오래전부터 시행해 왔다. 국내에선 2023년이 돼서야 도입됐다. 일제강점기에 전 재산을 바쳐 우리 문화재를 지켜낸 간송 전형필 선생의 후손들이 막대한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문화재를 경매시장에 내놓은 사건이 알려진 것이 계기가 됐다. 제도 시행 초기 미술계에선 국내에서도 미술품 물납제가 활성화될 것이란 기대가 높았다. 그런데 제도 시행 후 약 2년 반이 지났지만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납부한 사례는 단 한 건에 불과하다. 왜 그럴까.전문가들은 국내 미술품 물납제가 선진국과 비교해 지나치게 엄격하게 설계됐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꼽는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상속받은 미술품 자체에 부과된 상속세액의 한도 내에서만 해당 미술품으로 물납이 가능하다. 가령 총상속세
한국 현대사의 문화예술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남긴 대통령을 꼽으라면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을 거론하는 이들이 많다. 박 대통령은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을 제정했고, 이후 5년에 한 번씩 문화예술 진흥 계획을 수립해 실천에 옮겼다. 서울 광화문에 세종문화회관을 건립한 것도 박 대통령이다. 김 대통령은 외환위기 와중에 집권했지만 정부의 전체 예산에서 문화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처음으로 1%대로 끌어올렸다. 문화산업이 한국의 차세대 성장산업이 될 것으로 보고 ‘문화산업진흥 기본법’을 마련하기도 했다. 문화 대통령의 전제조건이재명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문화예술 분야에 적지 않은 관심을 표명했다. 대선 출마 선언 때 소프트파워 측면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를 만들 것이라며 문화강국을 핵심으로 하는 ‘K-이니셔티브 비전’을 제시했다. 지난달 30일엔 토니상 6관왕에 오른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박천휴 작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김원석 감독 등 문화예술계 인사를 초청해 문화산업 발전방안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성남시장, 경기지사 등을 거치면서 문화예술 분야에는 특별한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의 행보로 받아들여진다.그런데 이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제시한 문화예술 분야 공약들을 뜯어보면 윤석열 정부 시절 만든 ‘문화한국 2035 비전’과 큰 차이가 없다. 콘텐츠산업 세제 지원 및 정책금융 확대, K컬처 글로벌 브랜드화, 국내 콘텐츠 플랫폼 해외 진출 지원 등의 정책과제가 구체적인 표현만 다를 뿐 공통으로 포함돼 있다. 문화예술 분야는 외교 안보 노동 환
이달 초 개봉한 영화 ‘바이러스’는 감염되면 사랑에 빠지는 균이 퍼지면서 일어나는 소동을 다룬 로맨틱 코미디다. 개봉에 앞서 열린 시사회에서 한 참석자는 “바이러스를 꼭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라고 물었다. 주연 배우 배두나는 “관객이 영화를 큰 스크린으로 볼 것이라는 전제하에 섬세하게 연기했다”고 답했다.언젠가부터 우리는 새 영화가 개봉하면 1단계로 ‘영화가 얼마나 재미있을까’를 평가한 뒤 2단계로 ‘이 영화를 꼭 영화관에서 봐야 할까’를 따져보기 시작했다. 영화관이 아니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을 통해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보편화되면서 생긴 변화다. 앞으로는 이런 흐름이 더욱 확산할 것이고 콘텐츠산업 주도권은 강력한 OTT 플랫폼을 보유한 자가 쥐게 될 것이다. 20조원 vs 1000억원정부는 토종 OTT를 육성하기 위해 나름의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작년 말 ‘K-OTT 산업 국제 경쟁력 강화 전략’을 발표했다. 1조원 규모의 K콘텐츠 제작 펀드 조성, 인공지능을 접목한 OTT 가치사슬 고도화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대선 후보들도 비슷한 공약을 내놓으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백화점식 나열에 그친다.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더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바로 ‘규모’와 ‘규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넷플릭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규모의 경제’다. 디지털 플랫폼 산업에서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작동한다. 한번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용자를 확보한 기업일수록 콘텐츠 제작, 마케팅, 기술 개발 등에서 효율성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 클럽 브랜드 엘로드 클럽이 새로운 샤프트인 ‘고탠스(GOTANCE)’를 선보인다. GOTANCE는 GO와 DISTANCE의 합성어로, 흔들림 없이 정확한 방향으로 최대 비거리를 실현시킨다는 의미다.5년간의 개발 과정을 거쳐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는 GOTANCE는 3가지 레이어로 구성돼 있다. 가장 안쪽의 레이어는 GOTANCE의 차별화 소재인 비정질 금속 소재를 적용했다. 기존 Titan에 비해 탄성이 약 3배가 높아 비거리 증가에 도움이 되며 경도 또한 높아서 뒤틀림을 억제하고 방향성 또한 향상시켜준다. 중간에 위치한 BIAS 레이어는 강도와 탄성을 균형 있게 구현한 토레이(TORAY)사의 M46X 원단을 적용했으며, 가장 바깥에 위치한 STRAIGHT 레이어는 레진 함량이 15%인 토레이사의 경량 원단을 여러 겹 쌓아 뛰어난 탄성을 보여주며 안정감 있는 타격감을 제공한다.GOTANCE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비정질 금속 소재는 현존하는 금속 중 최상위 탄성을 자랑한다. 일반 금속보다 고강도의 특성을 가지는 반면, 마모 저항성이 뛰어나 잘 변형되지 않는다. GOTANCE는 이러한 비정질 금속을 사용하여 다섯 가지 주요한 기능을 보여준다. 첫번째로 일관성 있는 스윙 결과를 볼 수 있다. 오프센터 히트, 즉 미스샷이 나오더라도 헤드의 순간적인 비틀림을 억제하고 사이드 스핀을 감소시켜 관용성을 높여준다. 둘째는 비거리의 향상이다. 최상위의 탄성을 자랑하는 소재이므로 스윙시에 탄성력을 최대화해 볼 스피드를 극대화한다.세번째는 효율적인 스윙과 편안함이다. 스윙의 전환지점인 트렌지션에서 샤프트가 휘어졌다가 본래의 스퀘어 형태로 쉽게 복원되기 때문에 편안한 스윙감각을 느낄 수 있어 골퍼가 클
국내 피아노 전공자 사이에선 이런 얘기가 회자된다. 조성진의 공연을 보면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멋진 연주를 하고 싶다’는 꿈을 품지만 임윤찬의 연주를 보면 절망하게 된다고. 임윤찬에게선 보통 사람이 범접하기 힘든 천재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들의 회상에 따르면 임윤찬은 입학할 때만 해도 평범한 학생 중 한 명이었는데, 손민수 교수를 스승으로 만나면서 잠재력이 폭발했다고 한다. 재학 중 세계적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임윤찬에게 한예종 교수들이 느끼는 애정은 각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반기 스승 따라 미국행그러나 임윤찬은 올해 하반기 미국 보스턴에 있는 명문 음악학교 뉴잉글랜드 음악원으로 적을 옮긴다. 손 교수를 따라가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 이유가 아니어도 임윤찬은 한예종을 떠났을 것이라고 한다. 한예종에는 정식 석·박사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1993년 전문 예술인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한예종은 클래식 미술 영화 무용 등 각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를 배출했다. 하지만 고등교육법상 ‘대학교’가 아니라 ‘각종학교’로 분류돼 석·박사 과정을 운영할 수 없다. 대학원에 해당하는 예술 전문사 과정을 운영하고 있지만 정식 학위 수여는 불가능하다.그러다 보니 한예종의 예술 전문사 과정을 졸업한 학생은 대학이나 예술 관련 기관에 취업할 때 불이익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석·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연구자가 없어 국내외 다른 대학과의 공동 연구나 기업과 산학협력을 하는 데도 제약이 따랐다. 학교에 정식 석·박사 과정을 개설하는 것이 언젠가부터
올해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일본 시코쿠 가가와현에 있는 작은 섬 나오시마를 다녀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나오시마 신미술관’이 오는 5월 말 정식 개관하기 때문이다. 총 3층 구조로 지어진 이 미술관은 혼무라 지역 인근 언덕 위에 자리 잡았다. 나오시마 신미술관은 상설전과 특별전을 병행한다는 계획이다. 개관 기념 전시에선 한국의 서도호, 일본의 무라카미 다카시, 중국의 차이궈창 등 아시아 지역 저명 작가 12명이 이 미술관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대형 설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안도 다다오의 열 번째 건축물안도 다다오가 이 섬에 지은 열 번째 건축물인 나오시마 신미술관은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이 프로젝트는 일본의 출판기업 베네세홀딩스가 1990년대 초 조선업 침체로 쇠락해가던 나오시마를 문화예술의 힘으로 회생시키기 위해 시작했다. 단순히 미술관만 건립하는 게 아니라 섬 전체를 현대미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변화시키려는 장기적인 기획이다.국내에서도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문화예술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달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문화 분야 중장기 비전 ‘문화한국 2035’에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심포니 등 5개 국립예술단체의 지방 이전 방안이 포함된 것도 그런 시도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들 예술단체가 이전하면 지방에서도 문화예술을 향유할 기회가 늘어나고, 이는 인구 유입과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가 깔린 듯하
올해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던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겨울 초입에 발생한 비상계엄 사태와 연이어 터진 제주항공 참사 탓에 두문불출하며 우울한 연말연시를 보낸 사람이 많다. 전시업계에서는 미술관을 찾는 이도 줄어들 것으로 우려했지만 기우였다. 추운 겨울 날씨에도 많은 사람이 미술관으로 향했다. 일부 전시는 주말에 표를 구하기 힘들 정도로 관람 열기가 뜨거웠다. 혹자는 시대가 혼란할수록 고요한 명화 감상에서 위안을 얻으려는 사람이 많아지는 반작용의 사회현상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명화에서 위안을 느끼는 사람들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글로벌 도시의 경쟁력을 논할 때 ‘문화예술 향유 기회’가 주요 평가 항목으로 포함되기 시작했다. 컨설팅 회사 AT커니는 2008년부터 전 세계 150개 도시를 평가해 ‘글로벌 도시지수’를 발표하는데 기업 활동, 인적자원, 정보 교류, 정치적 참여도와 함께 문화적 체험을 5대 평가 분야로 삼고 있다.지난해 평가에서 도쿄는 뉴욕·런던·파리에 이어 4위에 오른 반면 서울은 11위에 그쳤다.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서울은 문화적 체험 영역에서 도쿄에 한참 뒤처진 게 사실이다. 명화 관람 기회만 해도 그렇다. 서울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블록버스터급 전시가 도쿄에서는 국립신미술관, 모리미술관, 국립서양미술관 등에서 수시로 열린다.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서울과 도쿄의 경제 규모, 소득 수준, 컬렉터들의 구매력, 전시장 규모와 수 등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미술 전문가들은 제도적 차이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바로 해외 미술품 압류 면제 제도다. 전시를 위해 해외에서 국내로 반입
지난해 강원 원주 만대초등학교에서는 서유리 예술강사의 도움으로 국악 수업이 진행됐다. 학생들은 영상과 퀴즈를 통해 조상들이 농사지을 때 부른 토속 민요인 농요(農謠)를 배우고, 장구 장단에 맞춰 직접 불러보기도 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사계초에선 정진아 예술강사가 탈춤 수업을 이끌었다. 학교 체육관에서 약 40분간 이뤄진 수업에서 학생들은 ‘고개잡이’ ‘다리 들기’ ‘황소걸음’ 등의 춤사위를 익혔다.올해부터는 이런 풍경을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볼 수 없게 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5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학교 예술강사 지원 사업’ 예산을 대폭 삭감했기 때문이다. 존폐 기로에 선 예술강사 지원 사업문체부와 교육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학교 예술강사 지원 사업은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이 예술을 보다 체계적으로 배우고 경험할 수 있도록 예술 전문 강사를 파견하는 것이다. 2005년 제정된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재원은 정부 예산에서 나온다. 문체부가 대부분의 돈을 대고 각 시도교육청이 매칭 방식으로 일부를 보태는 식이다. 그런데 문체부가 갑작스레 이 사업 예산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예산을 편성할 때 전년보다 50% 삭감했고, 올해 예산 편성 때 다시 72%를 줄였다. 결국 2023년 547억원이던 문체부의 학교 예술강사 지원 사업 예산은 올해 8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각 시도교육청도 덩달아 관련 예산을 삭감했다. 경기교육청은 지난해 27억원이던 예산을 올해는 7억5200만원으로 줄였고, 서울교육청은 48억원에서 33억원으로 축소해 예산을 편성했다. 인천·광주·전남·제주 교육청도 마찬가지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중 하나인 굿피플은 종교와 문화, 국경을 초월해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들을 돕기 위해 1999년 설립됐다. 굿피플이 케냐 농가의 소득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농업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코이카와 함께 진행한 사업이 결실을 맺었다. ○ 케냐 농가 소득증대에 기여굿피플과 코이카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지난 3년 동안 코이카 민관협력사업의 일환으로 케냐 서부에 위치한 나쿠루 카운티 수부키아 지역에서 농가 소득증대사업을 진행했다. 두 기관은 수부키아 지역 농민 501명에게 천연 살충 성분이 있는 국화이자 고부가가치 작물인 ‘제충국’ 묘목 170만 그루와 4동의 제충국 생화 건조장, 농업용 물탱크 및 농기구를 지원했다.더불어 수부키아 지역의 제충국 재배 농민을 중심으로 제충국 재배자 협동조합을 설립 및 운영할 수 있게 돕고, 농업 효율성 제고 및 지속가능한 제충국 농업 환경 구축을 위한 역량강화 교육을 연 20회 이상 실시했다. 지역 내 우수 협동조합을 방문하는 등 현장 체험학습 기회도 꾸준히 제공했다.이처럼 굿피플은 제충국 생산, 건조, 판매 및 유통까지 농업 가치사슬 전반을 개선함으로써 농민들이 재배와 판매 역량을 키우고 농산물의 시장경쟁력을 확보해 소득 증대를 도모할 수 있도록 힘썼다.그 결과 조합원 수가 2022년 138명에서 2024년 말 기준 359명으로 260% 이상 증가했으며, 수부키아 지역 농민 2000여명의 제충국 판매 및 유통을 관리하는 농민 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아울러 굿피플은 제충국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사업 참여 농민들과 함께 수확용 앞치마도 제작했다. 앞치마에는 제충국 생화를 담을 수 있는 넓은 주머니가 있어 효율적으로
얼마 전 한 모임에 초대받았다. 장소는 서울시립미술관. 퇴근 후 찾아가 보니 증권사 대표, 대학교 총장, 사모펀드 운용사 부회장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로비에 마련된 만찬장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 후원회 설립 1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오랜 시간 함께 활동해온 사람들의 모임이어서 그런지 시종일관 활기차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2014년 3월 사단법인으로 출발한 후원회는 현대미술의 저변 확대와 시민들의 문화 향유권 증진을 위해 소장품 기증, 예술인 창작 지원, 후원금 조성 등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다. 최은주 미술관장은 미술관이 어려울 때마다 도와주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가 바로 후원회라며 감사를 표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키다리 아저씨'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립미술관에 후원회가 왜 필요할까 싶지만 국립중앙박물관, 예술의전당, 국립발레단 등 상당수 공공 문화예술 기관에는 민간의 자발적인 후원회가 존재한다. 예술의전당 후원회는 누적 후원금이 10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단테,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르네상스 시기에 활약한 예술가 뒤에 메디치 가문이 있었듯이 문화예술이 꽃피기 위해서는 든든한 후원자들이 필요하다.그런데 최근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민간 후원이 위축되고 있다. 2020년 550억원까지 불어났던 국내 문화예술단체의 기부금 수입은 2021년 396억원, 2022년 392억원으로 급감했다. 한국과 미국 문화예술단체의 재원 구조를 뜯어보면 한국의 기부금 비중은 3%로 미국(30%)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자체 수입 비중도 한국은 18%로 미국(60%)보다 낮다. 한국의 문화예
지난달 10일 한강 작가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발표가 나온 이후 문학 번역가들이 일등공신으로 재조명받았다. 외국어 실력뿐 아니라 문학성까지 갖춰야 하는 문학 번역가들은 작가와 전 세계 독자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문학 번역가들 못지않게 한강의 노벨상 수상에 기여한 곳이 있다. 바로 국내 출판사와 서점이다. 재능 있는 작가를 발굴·육성하는 출판사가 없었다면, 전국 곳곳에서 책을 공급하는 서점이 없었다면 한강은 오늘날과 같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국내 출판시장은 최근 단군 이후 최대 불황을 겪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상황이 어렵다. 갈수록 쪼그라드는 출판산업국내 출판시장 불황의 출발점은 독서율 하락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성인 독서율은 10년 전인 2013년 72%이던 것이 지난해엔 43%까지 추락했다. 지난 1년간 책을 한 권 이상 읽은 사람이 성인의 절반이 채 안 된다는 얘기다. 대다수 성인이 ‘독서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또는 ‘다른 매체나 콘텐츠를 이용한다’는 이유로 책을 멀리하고 있었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독서율 하락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독서율이 60~70%대인 점에 비춰보면 한국의 독서율 하락은 지나치게 가파르다.독서율 하락은 출판사에 직격탄이 됐다. 영업 실적이 공개된 국내 출판사의 작년 총매출은 4조9336억원으로 10년 전(5조5147억원)에 비해 10.5% 줄었다. 같은 기간 총영업이익은 70.1% 급감했다. 책 도매업체들은 줄줄이 문을 닫거나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동네 서점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영화 ‘전,란’을 개막작으로 선정함으로써 국내 영화계에 중요한 화두를 하나 던졌다. 바로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영화의 정의에 관한 질문이다. 이 영화는 조선시대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박정민 분)과 그의 몸종(강동원 분)이 임진왜란 발발 후 각각 선조(차승원 분)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만나 대립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작품의 완성도, 출연 배우들의 면면, 제작자가 박찬욱이라는 화제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개막작으로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 9월 초 ‘전,란’이 개막작으로 정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영화인은 비판을 쏟아냈다. 왜 그랬을까. 개막작 '전,란'에 쏟아진 비판비판은 크게 두 갈래였다. 우선 ‘전,란’이 전형적인 상업영화라는 점을 문제 삼는 이들이 있었다. BIFF는 독립영화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완성도 높은 독립영화나 작가주의 영화를 주로 개막작으로 선정한 역사를 감안하면 가능한 문제 제기다.‘전,란’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이기 때문에 개막작이 될 자격이 없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런 주장의 기저에는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국내 영상 콘텐츠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는 넷플릭스에 대한 영화인의 경계심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다른 이유도 있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에 담긴 영화에 관한 정의 때문이다. 2006년 제정된 이 법은 영화를 ‘영화 상영관 등의 장소 또는 시설에서 공중에게 관람하게 할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전,란’처럼 애초에 온
골프존뉴딘그룹이 MZ 골퍼를 대상으로 골프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전사적 캠페인 ‘2030 골프존 페스타’를 진행한다.대한골프협회가 발표한 ‘2023 한국골프지표’에 따르면 향후 골프를 칠 의향이 있는 잠재 골프 비경험자는 평균 41.7%로 그중 30대가 46.4%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이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년 국민생활체육조사’에서 금전적 여유가 될 경우 참여하고 싶은 운동종목으로 ‘골프’가 1위에 선정됐다.골프존뉴딘그룹은 스크린골프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골프존, 골프용품 시장점유율 1위 골프존커머스, 전국 20개의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는 골프코스 토털 서비스 기업 골프존카운티 등 골프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지원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 골프존뉴딘그룹 지주회사인 골프존뉴딘홀딩스의 최덕형 대표이사는 “2030 젊은 세대가 골프에 보다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 실속 있는 캠페인을 준비했다”며 “앞으로도 골프존뉴딘그룹은 2030 세대를 비롯한 전 골퍼들의 골프 참여에 도움을 주고 골프 업계가 동반 성장할 수 있는 미래 전략을 구상해 골프의 대중화를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골프존뉴딘그룹의 첫 연합 캠페인 ‘2030 골프존 페스타’는 ‘2030 골퍼의 꿈을 응원합니다’라는 주제로 10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한 달간 1985~2004년생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골프존은 골프존 앱에 가입한 2030 회원들을 대상으로 전국 골프존파크 및 골프존 스크린골프 매장에서 사용 가능한 2000원 이용권을 증정한다. 이용권은 10월 1일부터 10월 15일까지 사용할 수 있다. 발행되는 이용권은 약 100만 장 규모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경제를 ‘유용한 것을 지향하는 행위’로, 문화는 ‘아름다운 것을 지향하는 행위’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문화를 경제보다 우월한 것으로 여겼다. 실용주의가 지배하던 근대에는 경제를 인간 활동의 핵심으로 봤고, 문화는 잔여적 활동으로 간주했다. 우선순위는 정반대지만 고대와 근대의 공통점은 문화와 경제를 상호 분리해 생각했다는 것이다.현대 사회로 접어들어 대중문화 시대가 열리자 경제와 문화는 불가분한 관계로 얽혔다. 문화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 됐고, 문화가 경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한 나라의 국력을 결정짓는 것은 경제인데, 경제에서 최고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게 문화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은 자국 문화의 대외 확산을 통해 경제 영토 확장을 도모해 왔다. 문화의 힘이 초일류 선진국의 필수 조건이 된 것이다. 글로벌 주류 문화로 부상한 한류미국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는 1990년 ‘소프트 파워’라는 개념을 ‘사람의 마음을 끄는 힘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 능력’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한 나라의 소프트 파워를 결정하는 요소로 정치적 가치관, 대외 정책, 문화 세 가지를 꼽았다. 글로벌 소프트 파워 경쟁에서 한국의 비교우위는 분명 문화에 있다. K팝, K무비, K드라마 등 문화 콘텐츠가 세계 각국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콘텐츠 수출액은 2013년 49억달러에서 2022년 133억달러로 불어났다. 콘텐츠는 바이오헬스(163억달러), 컴퓨터(159억달러)에 이어 한국 3대 수출품에 올랐다. 프랑스 철학자 기 소르망이 한국을 문화와 상품을 동시에 수출하는 5개
K팝이 세계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던 2010년대 중반 국내에서도 아레나(대형 공연장)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K팝 산업 발전, 관광 인프라 확대, 지역경제 활성화 등 ‘1석 3조’의 효과가 있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경기도와 서울시가 뛰어들었다. 경기도는 2016년 CJ ENM을, 서울시는 2018년 카카오를 아레나 건설 및 운영을 담당할 민자 사업자로 선정했다. 그런데 지난 7월 초 경기도는 일산에 ‘CJ라이브시티’를 건설하기 위해 CJ ENM과 맺었던 계약을 해지한다고 발표했고, 서울시는 창동에 들어설 ‘서울 아레나’ 착공식을 열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전담팀까지 만들어 지원서울 아레나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정치적 승부수였다. 그는 문재인 정부 초기 집권여당의 잠룡 중 한 명이었지만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박 전 시장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강북 균형 개발’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창동에 서울 아레나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2021년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이 당선되자 ‘박원순표 서울 아레나’ 사업은 추진 동력을 잃을 것으로 예상됐다. 대형 공연장은 수익을 내기 쉽지 않아 자칫 ‘제2의 세빛둥둥섬’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오 시장은 그러나 2022년 4월 카카오와 서울 아레나 건설을 위한 협약을 맺었고, 서울시 산하에 사업을 지원하는 전담팀도 만들었다. 서울시 권역별로 문화랜드마크를 조성하겠다는 비전까지 제시했다. 경쟁 정당 전임자가 시작한 대형 사업을 자신의 사업으로 끌어안은 것이다.CJ라이브시티 사업 추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CJ ENM은 2016년 라이브시티 사업자로 선정된
2020년 2월 20일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영화 ‘기생충’ 제작진과 출연진 20여 명이 청와대에 초청받았다.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 문화예술의 우수성이 세계에 알려졌다”고 감사를 표했다. 2022년 6월 12일엔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용산 대통령실을 찾았다. 두 사람은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각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것이 우리의 국격이고, 국가발전의 잠재력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축하했다. 지금 와서 보니 한국 영화는 이때를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조용히 끝난 칸 국제영화제지난 5월 폐막한 제77회 칸 국제영화제는 한국 영화가 봉착한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한국 영화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경쟁 부문에 단 한 작품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비경쟁 부문에서도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만 상업영화 대작을 초청하는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포함됐을 뿐이다. ‘주목할 만한 시선’ ‘비평가주간’ 등 주요 비경쟁 부문에는 들어가지 못했다.칸에서의 초라한 성적표는 최근 몇 년간 한국 영화산업이 겪은 드라마틱한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2020년 초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영화제작 현장과 극장은 올스톱됐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들은 팬데믹을 기회로 삼아 고속성장했다. 상당수 영화제작 인력은 OTT 시리즈물 제작 시장으로 넘어갔다. 대중도 굳이 극장에 가지 않아도 볼거리가 많다는 걸 깨달았다. 그 결과 콘텐츠 소비 습관이 근본적
경기 부천시는 1914년 부평과 인천의 일부 지역이 합쳐지면서 탄생했다. 1973년 단행된 행정구역 대개편 때 ‘부천군’에서 ‘부천시’로 승격했다. 경인공업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1980년대 말 경기도에서 인구 1위 도시였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성남시 고양시 용인시 등지에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부천시에선 인구가 유출되기 시작했다. 도시의 위상도 과거만 못하게 됐다.요즘 부천시가 전국 1등 자리를 다투는 게 하나 있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클래식 음악 전용관 부천아트센터다. 부천시청 바로 옆에 자리 잡은 부천아트센터는 국내 최고 수준의 음향 설비를 갖추고 있어 개관 직후부터 클래식 연주자와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았다.클래식 공연장이 가져온 변화부천시가 1108억원을 들여 지은 부천아트센터는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설계한 영국의 에이럽(ARUP)사가 밑그림을 그렸다. 총 1445석 규모, 객석이 무대를 감싸는 빈야드 구조, 세계 최초로 시도된 이중 음향 반사판 등 클래식 음악 연주와 감상에 최적화된 공연장으로 지어졌다. 만석 시 잔향시간을 2.11초까지 구현할 수 있어 국내 클래식 공연장 중 통영국제음악당과 더불어 ‘투톱’으로 평가받고 있다.부천아트센터 덕분에 부천 시민들은 굳이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최정상급 연주자들의 공연을 즐기고 있다. 지난 1년간 조성진 백건우 김선욱 장한나 조수미 손열음 등이 부천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다. 오는 17일에는 임윤찬의 피아노 리사이틀도 예정돼 있다.부천시 관계자들은 부천아트센터에 대해 “오랜 진심으로 지은 공연장”이라고 말한다. 최초 계획부터 개관까지 무려 28년의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이
러시아는 한때 대표적인 문화예술 강국이었다.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톨스토이 등 수많은 거장을 배출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들이 남긴 문화예술 유산을 활용해 매년 한 국가를 선정, ‘러시아 시즌’을 진행해왔다. 세계 최정상급 러시아 예술단체의 순회공연과 전시회 등을 집중 개최하는 형식이었다. 러시아 문화예술에 대한 각국 대중의 호감을 러시아에 대한 호감으로 치환하려는 의도였다. 잇따라 취소되는 '러시아 공연'2022년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선 러시아 문화예술 보이콧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쟁(내전 제외)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항의와 우크라이나 국민을 향한 연대의 표시였다. 러시아 출신 세계적인 음악가로 손꼽히는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등의 공연이 세계 각지에서 잇달아 취소됐다.한국에서도 최근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이달 중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일 예정이었던 러시아의 발레 공연 ‘모댄스’가 전격 취소된 것. 주연 격인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과거 이력이 문제가 됐다. 볼쇼이 발레단 수석무용수인 자하로바는 ‘살아있는 전설’ ‘신이 내린 몸’이라는 극찬을 받아온 세계 최정상 발레리나다. 푸틴이 이끄는 통합러시아당 연방의원을 지냈고,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지지 서명을 하는 등 ‘친푸틴’ 행적이 부각되면서 논란이 증폭됐다.러시아 문화예술 보이콧은 문화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관련한 문제다. 상호 별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세계 대공황 직후인 1936년 발간한 저서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을 통해 당시 주류였던 고전학파의 자유방임 이론에 반기를 들었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닦은 케인스였지만 문화예술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생각이 달랐다.케인스는 영국 음악예술진흥위원회 초대 회장으로 활동할 때 “문화예술 정책은 ‘팔길이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손과 몸이 팔 길이만큼 떨어져 있듯이 문화예술과 정부도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정부는 문화예술에 대해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해선 안 된다는 게 케인스의 소신이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아야최근 국내에서 일부 문화예술 정책과 관련해 벌어지고 있는 논란을 지켜보면 팔길이 원칙의 현대적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서정가제가 그런 사례다. 2003년 처음 도입된 도서정가제는 말 그대로 책을 판매할 때 ‘정가(定價)’에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온라인 서점의 가격 파괴 공세로부터 지역 중소 서점을 보호하고, 출판시장의 다양성을 제고한다는 게 취지였다. 정부가 상품 가격을 통제한다는 점에서 제도 도입 때부터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다. 정부가 지난 1월 온라인 창작물인 웹툰과 웹소설은 도서정가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영세 서점은 대형 서점보다 더 높은 할인율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영화산업에 대한 ‘홀드백(Hold Back)’ 법제화 논란도 비슷한 사례다. 정부가 1월 말 모태펀드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는 영화는 홀드백 조건을 준수해야 한다고 발표한 게
문화체육관광부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콘텐츠 수출액은 2022년 약 132억달러로 2차전지(100억달러)와 가전 수출액(80억달러)을 뛰어넘었다. 세계 곳곳에서 K콘텐츠 열풍이 몰아친 결과다.새해 들어서도 낭보가 전해졌다. 지난 16일 한국계 이성진 감독이 만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이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상인 에미상 시상식에서 8관왕에 올랐다. 이날 소셜미디어에선 ‘성난 사람들을 K콘텐츠로 볼 수 있느냐’는 요지의 글이 간간이 올라왔다. 감독상·작가상·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모두 한국계이니 K콘텐츠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이들의 국적은 미국인이니 K콘텐츠로 보긴 힘들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K콘텐츠 수출 2차전지 추월2022년 에미상 6관왕을 차지한 ‘오징어 게임’은 어떨까. 이 작품도 넷플릭스 오리지널이긴 하지만 황동혁 감독의 국적이 한국이기 때문에 K콘텐츠로 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세계 각국 제작자 간 협업 구조가 자리잡은 상황에서 무엇이 K콘텐츠인지 엄밀하게 정의 내리긴 쉽지 않아 보인다.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콘텐츠의 ‘국적’보다는 콘텐츠 지식재산권(IP)을 누가 가져가는지가 더 중요하다. 콘텐츠 흥행의 과실이 어떻게 배분되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넷플릭스의 독식 구조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국내 영상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서 넷플릭스는 △넉넉한 제작비 △사전제작 시스템 정착 △과감한 스토리 허용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 기회 제공 등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덕분에 2019년 ‘킹덤’을 시작으로
2023년을 돌아보면 미국 경제는 우려했던 것보다 강했고, 중국 경제는 기대했던 것보다 약했다. 작년 이맘때쯤 전문가들은 올해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고강도 긴축으로 실물경제 냉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Fed는 경기 침체 없이 인플레이션을 잠재우는 데 성공한 듯하다.중국 경제는 올 하반기께 회복세로 돌아서고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생길 공백을 메울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했다. 작년 말 중국 정부가 ‘제로 코로나’ 정책 폐기를 선언한 데다 통화·재정 정책을 동원해 경기 부양에 나설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는 그러나 과거와 같은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회복 탄력성 둔화된 中경제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분석 기사에서 중국의 부동산 경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고려하지 않고 중국 경제의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중국 경제에서 부동산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중국 경제가 그동안 고속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로 다양한 요인이 거론됐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동산이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모든 토지가 국가 소유였다. 개혁·개방 초기 중국의 지방정부는 ‘토지사용권’을 부동산 개발업체에 매각함으로써 재정수입을 충당했다.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이 땅에 도시화에 필요한 주택 및 상업용 부동산을 건설했다. 이 과정에서 ‘일자리 창출→소득 증가→부동산 수요 증가→부동산 투자 확대’라는 선순환이 이뤄졌다.중국 주택 가격은 그러나 작년 6월 이후 최근까지 2개월을 제외하고 전년 동월 대
올 상반기 미국 뉴욕주에선 ‘가스레인지 전쟁’이 벌어졌다. 주의회가 신축 건물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바람에 가스레인지를 쓸 수 없게 된 것이 발단이었다. 법안의 취지는 온실가스 감축이었지만 주민들은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결국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나서 “연방정부는 가스레인지 사용 금지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사태를 진화해야 했다. 오늘날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탄소중립 정책이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파리기후협정이 채택될 때만 해도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인식됐다. 이란 터키 리비아 등 7개국을 제외한 대부분 나라가 협정에 참여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이상과 현실의 충돌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뉴욕주처럼 탄소중립 정책에 반대하거나, 피로감을 표출하는 일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녹색정책(green)과 반발(backlash)을 합친 ‘그린래시(greenlash)’란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다.미국에선 내비게이터CO2라는 벤처기업 주도로 중·서부 5개 주를 가로지르는 대규모 파이프라인 건설이 추진됐다. 탄소를 땅속에 가두는 탄소포집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일방적 토지 수용과 안전성을 우려한 지역사회의 반대로 내비게이터CO2는 지난달 프로젝트 중단을 선언했다. 네덜란드에선 지난해 지구온난화 유발 물질로 꼽히는 질소산화물을 줄이기 위해 가축사육 농가 3000곳을 폐쇄하는 방안을 추진하다가 농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탄소중립 문제는 유럽과 미국 등
올 들어 미국과 중국이 요란하게 패권 경쟁을 벌이는 동안 중동에서는 ‘조용한 격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주요 등장인물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그리고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였다. 세 사람 모두 중동 평화 실현에서 정치적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하지만 지난 7일 단행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반인륜적 테러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모든 것을 바꿔놓은 하마스상원 외교위원장 출신인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당시 대외 문제에서만큼은 강점을 보일 것이란 기대가 높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른바 ‘미치광이’ 외교로 망쳐놓은 대외관계를 정상화할 적임자로 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러나 중동 문제에서만큼은 처참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전격 철수하면서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존재감은 급속하게 약화하기 시작했다.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의 배후로 의심받아온 빈 살만 왕세자를 공개 비난함으로써 중동 지역 최대 친미 국가였던 사우디와의 관계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워싱턴 조야에서는 미국의 중동 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은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국교 정상화, 이른바 ‘중동 데탕트’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중동의 맹주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국교 정상화는 중동 지역 질서를 바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시 주석은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하는 틈을 발 빠르게 파고들었다. 올해 초 중동의 앙숙인 사우디와 이란의 외무장관이 중국 베이징에서 화해의 악수를 하도록 중재했다. 시 주석은 지난 6
[지금 세계는 新자원 전쟁 중]①글로벌 자원전쟁 판도가 달라졌다일본은 희토류가 전혀 나지 않는 나라다. 이 때문에 2010년까지만 해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필요한 희토류의 약 90%를 중국에 의존했다. 하지만 2022년 한국이 희토류의 85.7%를 중국에 의존하는 반면 일본은 60%까지 의존도를 낮췄다. 중국은 센가쿠 열도를 둘러싼 영토 분쟁이 가열된 2010년 희토류 가운데 하나인 네오듐의 일본 수출을 사실상 금지했다. 네오듐은 일본의 주력 수출 차종인 하이브리드차 모터의 필수 원료였다. 네오듐 수입이 막히자 일본내 가격이 10배 치솟았고, 하이브리드차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이 일은 일본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중국에 대한 희토류 의존도를 줄이는 전환점이 됐다. 미국지질조사소에 따르면 2021년 전세계에서 생산된 희토류는 28만t이었다. 이 가운데 60%가 중국에서 생산됐다. 2~3위인 미국과 미얀마의 비중은 15%와 9%에 불과했다. 또 희토류의 분리·정련은 거의 100% 중국에서 이뤄진다. ‘탈(脫) 중국’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다. 일본은 기술력과 수입처 다변화로 맞섰다. 2018년 도요타자동차는 네오듐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인 신형 자석
글로벌 공급망을 둘러싼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미국이 중국의 첨단기술 발전에 대한 제재를 단계적으로 강화하자, 중국은 갈륨 수출통제 등 ‘자원 무기화’로 맞대응하고 있다. 미국이 9일(현지시간)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같은 첨단 분야에서 미국 기업의 중국 투자를 제한 또는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하면서 중국의 맞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중국은 이달부터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통제를 시작했다. 중국의 갈륨 수출통제는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 조치의 일환으로 네덜란드가 오는 9월부터 일부 반도체 생산 설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한 직후 발표됐다. 미국 주도 대중 공급망 흔들기에 대한 맞대응이다. 중국은 갈륨과 게르마늄 시장 점유율잉 각각 94%와 83%에 달한다. 미국도 2018~2021년 사이 갈륨 수입량의 53%가 중국에서 왔다. 게르마늄 중국 의존도도 54%다.갈륨은 차세대 전력 반도체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마이크로LED(발광다이오드) 등 디스플레이 제조에 쓰인다. 게르마늄은 반도체 공정용 가스 소재로 활용된다. 갈륨과 마그네슘 수출 제한의 파급력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
‘화양연화(花樣年華)’란 말은 1990년대를 풍미한 홍콩 영화감독 왕자웨이의 영화 제목으로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을 뜻한다. 대외환경 면에서 한국의 화양연화를 꼽으라면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1992년부터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2016년까지가 아닐까 싶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덕을 보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시대였다.최근 미·중 패권 경쟁 격화 과정에서 한·중 관계가 악화할 조짐을 보이자 안미경중을 언급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최대 교역대상국이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안타깝게도 과거와 같은 수준의 안미경중은 이제 쉽지 않을 것 같다. 세 가지 기본 전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美 "中은 전략적 경쟁자"우선 미국의 대중(對中) 전략이 달라졌다.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미국의 대중 전략은 ‘관여(engagement)’가 핵심 기조였다. 중국을 세계 경제에 편입시킴으로써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를 확대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 다국적 기업의 이해관계에도 부합했다. 1989년 톈안먼 사태 직후처럼 양국 관계가 잠시 냉각된 적은 있지만, 대중 정책의 큰 흐름은 유지됐다. 2011년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처음 언급한 ‘피벗투아시아(pivot to Asia: 아시아로의 회귀)’정책은 대중전략 변화의 신호탄이었다. 이후 2017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변곡점으로 미국의 대중전략은 180도 달라졌다. 그해 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미국은 수교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전략적
주식시장에서도 학습효과는 작동한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시장에선 “10년 만에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는 얘기가 회자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주식시장이 폭락했다가 반등한 것을 염두에 두고 나온 말이었다. 2008년에 학습 내공이 부족했던 사람들은 2020년 초 코로나19 위기가 시작됐을 때 기민하게 움직였다. 록다운으로 경제활동 자체가 중단되는 미증유의 위기를 맞아 세계 주식시장은 곤두박질쳤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속전속결로 무제한 양적완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주식시장은 다시 한번 드라마틱한 ‘V자형’ 반등에 성공했다. 몇 차례 위기를 거치면서 주식시장에선 ‘나쁜 뉴스는 좋은 뉴스다’라는 등식이 형성됐다. 경제적으로 좋지 않은 뉴스도 주식시장에는 좋은 뉴스로 작용하는 현상을 지칭하는 얘기다. 위기 때마다 반등한 주식시장작년 3월 Fed가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시장은 나쁜 뉴스를 기다렸는데, 이전과는 버전이 조금 달랐다. 경기 둔화로 고용시장이 악화하면 Fed가 기준금리 인상 행진을 멈출 것이고, 이때를 분기점으로 주식시장은 본격적인 상승 랠리를 펼칠 것이란 게 시장의 시나리오였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파로 아마존, 메타 등 미국 테크기업들이 정리해고를 단행한다는 소식을 주식시장에서 호재로 받아들인 이유다. 이달 4일 시장이 손꼽아 기다리던 소식이 전해졌다. 미 노동부가 발표한 2월 구인 건수가 약 993만 건으로 2021년 5월 이후 처음으로 1000만 건을 밑돈 것. “기준금리 인상으로 노동시장을 냉각시키려는 Fed의 노력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인플레이션 진정에 대한 기대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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