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지난 3일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프로그레시브 필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시카고 컵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월드시리즈 7차전이 열리고 있었다. 컵스가 8-7로 앞서던 연장 10회말 2아웃 상황, 1루수 앤서니 리조가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올리는 공을 받자 경기는 끝났다.

컵스가 108년 만에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순간이었다. 1945년 한 열성팬이 경기장에 애완 염소를 데려왔다가 쫓겨나면서 “컵스는 다신 우승하지 못할 거야”라고 외쳐 ‘염소의 저주’가 시작된 이후 71년 만이다. 그 순간 TV카메라는 관중석에 있던 테오 엡스타인 시카고 컵스 사장(43)을 비췄다.

엡스타인 사장이 리그 최약체 팀으로 꼽히던 컵스를 우승팀으로 바꾼 데 걸린 시간은 5년. 그는 29세 나이로 보스턴 레드삭스의 단장을 맡아 2004년까지 86년간 지속되던 ‘밤비노(1940년대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의 별칭)의 저주’도 깨뜨렸다. 현지 언론은 그를 ‘저주를 깨뜨리는 자(curse buster)’, ‘퇴마사(exorcist)’로 불렀다.

최고의 멘토를 만나다

엡스타인은 1973년 미국 뉴욕의 부유한 ‘작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인 필립 엡스타인은 영화 ‘카사블랑카’의 대본을 쓰고 아카데미상을 받은 유명 작가다. 아버지인 레슬리 엡스타인은 보스턴대 글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여동생인 안야도 대본작가로 ‘강력살인’ ‘날 사랑한다고 말해줘’ 등 유명 드라마 대본을 썼다.

엡스타인은 예일대에 입학하자마자 교내 신문인 ‘예일 데일리 뉴스’에 들어갔다. 2학년 때 스포츠 섹션 부장을 맡으면서 야구 팀에 뜻을 품게 됐다. 1995년 MLB팀인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교내 신문사 경력을 고려해 홍보부서 직원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여기서 멘토인 래리 루치노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루치노는 엘리트 출신이면서도 선수, 코치, 스카우터 등 현장 직원과 거침없이 얘기하는 엡스타인을 주목했다.

루치노는 다른 MLB팀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엡스타인을 선수개발 책임자로 데려갔다. 엡스타인은 매일 아침을 경기장에서 먹었고, 밤까지 경기장에 나와 투수들의 직구부터 타격 자세에 이르기까지 훈련을 일일이 챙겨봤다. 또 루치노의 권유에 따라 샌디에이고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법학지식을 갖춘 덕에 선수 트레이드를 위한 협상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2001년 11월15일,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 CEO로 부임한 루치노를 따라 팀을 옮겼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1920년 홈런왕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보낸 뒤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현지 언론은 이를 일컬어 밤비노의 저주라고 불렀다.

루치노는 29세의 엡스타인을 보스턴 레드삭스 단장에 전격적으로 임명했다. MLB 역사상 가장 젊은 단장이었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40세는 넘어야 오를 수 있는 MLB 단장에 ‘풋내기’가 발탁된 것이다.

전설을 쓴 30세 단장

엡스타인은 단장에 오르자마자 바로 전 시즌 28홈런을 때려낸 간판 유격수 노마 가르시아파라를 내보내는 초강수를 뒀다. 그는 대형 선수 대신 공격 혹은 수비를 못해 ‘반쪽짜리’라는 평을 듣고 500만달러 미만 연봉을 받는 선수들을 대거 데려왔다. 엡스타인의 선수 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인격’과 실제 능력을 반영하는 ‘데이터’다.

그는 스타 선수라도 팀의 균형을 해치면 과감하게 내보냈다. 또 선수들이 난관에 대처하는 방식을 중요하게 봤다. “최고의 타자도 열에 일곱은 실패한다는 말처럼 야구는 실패를 통해 완성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관점이다.

엡스타인은 당시 대세로 자리잡던 ‘세이버 메트리션’에도 밝았다. 세이버 메트리션은 수리·통계학적 방법론을 적용해 뽑아낸 데이터를 선수평가에 동원하는 전문가를 뜻한다. 엡스타인은 그들의 분석으로 실제보다 가치가 저평가된 선수를 찾아냈다.

단장 취임 두 시즌 만인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는 86년 만에 우승을 일궈냈다. 대타 요원에 불과하던 빌 뮬러는 그해 타격왕을 차지했고, 뚱뚱하다는 이유로 전 소속팀에서 방출된 데이비드 오티즈는 무려 41개의 홈런을 터뜨렸다.

밤비노의 저주가 깨지자 관중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는 새 구장을 짓지 않고 보스턴 팬들에게 성지(聖地)로 불리던 홈구장 펜웨이파크를 전면 개보수했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30개 구단 중 가장 적은 좌석을 보유하면서도 입장료 수입은 2위를 기록했다. 엡스타인의 취임 직전 시즌인 2001년 1억5200만달러였던 보스턴 레드삭스의 매출은 2007년 2억6300만달러로 늘었다. 숙식을 펜웨이파크에서 해결하며 그곳의 가치를 알아본 덕분이었다.

엡스타인은 벌어들인 돈을 ‘팜(farm)’에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보스턴 레드삭스엔 팜이라 불리는 4개의 마이너리그 구단이 있고, 여기서 유망주들이 성장한다. 보스턴 레드삭스가 2007년 다시 한번 우승을 이뤘을 땐 팜 출신 선수인 더스틴 페드로이아, 자코비 엘스버리 등이 대활약했다.

젊은 방망이로 염소의 저주를 깨다

엡스타인은 2011년 10월21일 시카고 컵스 사장으로 옮겼다. 컵스는 그가 사장으로 취임하기 직전 시즌인 2011년 간신히 꼴찌를 면한 팀이었다.

엡스타인이 취임한 이후에도 컵스의 성적은 3년간 최하위였다. 하지만 그는 눈앞의 성적에 집착하지 않았다. 팀내 2선발이었지만 분위기를 해친 카를로스 잠브라노 등을 팀에서 내보냈다. 대신 저평가된 투수와 유망 타자 영입에 집중했다. 2014년 에이스인 제프 사마자를 당시 나이 22세의 에디슨 러셀(유격수)과 트레이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엡스타인은 제대로 된 과정이 결국 좋은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단 말단 직원의 의견까지 종합해 선수 트레이드 등 의사결정에 반영했다. 또 직원들이 의사결정을 따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데 집중했다. ‘엡스타인 사단’으로 불리는 세이버 메트리션들의 의견도 반영했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3차원 모션 캡처 신기술을 도입해 선수들의 역량을 분석하고 끌어올리는 데 활용하기도 했다.

컵스가 올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103승58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이 뒷받침됐다. 2011년 부임 당시의 주전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팜에서 자란 평균 20대의 주전 야수들이 리그 최고의 공격·수비를 선보이는 동안 팀의 중심을 존 레스터(지난해 33세) 등 노련한 투수들이 잡아줬다.

올해 컵스는 2011년에 비해 약 30% 증가한 3억40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할 전망이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2340만달러에서 올해 5080만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불혹의 나이를 지난 엡스타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월드시리즈 6차전(2승3패)을 보기 위해 호텔에서 클리블랜드 홈구장까지 걸어가던 엡스타인은 꼭 세미나에 참석하러 가는 사람처럼 침착했다”고 전했다. 당분간 컵스 ‘왕조’는 계속될 전망이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