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컨테이너선 용선료 인하에 사실상 성공함에 따라 회생 발판을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전체 용선료 부담의 70%를 차지하는 컨테이너선 선주들이 용선료 인하에 동의함에 따라 나머지 벌크선 선주들도 용선료를 깎아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 주말까지 용선료 인하 협상이 최종 타결되면 현대상선은 회사채 채무조정, 제3해운동맹 가입, 채권단 출자전환 등의 수순을 밟아 정상화의 길을 걸을 전망이다.
현대상선의 컨테이너선들이 지난 22일 부산신항에서 화물을 선적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상선의 컨테이너선들이 지난 22일 부산신항에서 화물을 선적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말리던 협상 막전 막후

현대상선의 컨테이너선 선주 다섯 곳 가운데 용선료 인하에 가장 비협조적이던 곳은 영국의 조디악과 싱가포르 EPS 등이었다. 조디악은 지난 18일 현대상선이 다나오스, 나비오스, 캐피털십매니지먼트(CCC) 등 다른 컨테이너선 선주를 초청해 서울 연지동 본사 빌딩에서 협상할 때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조디악의 친인척이 세운 싱가포르 이스턴퍼시픽(EPS)도 이날 협상에 직접 나서지 않고 콘퍼런스콜로 참여했다.

이들이 용선료 인하에 부정적인 이유는 “용선료를 낮춰주면 우리도 똑같은 조건으로 낮춰달라”는 다른 해운사의 요구 때문이었다. 용선료를 깎아주더라도 한국 정부가 현대상선을 살릴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웠던 측면도 있었다.

일부 글로벌 해운사는 선주들에 접근해 “현대상선의 법정관리로 용선 계약이 해지되면 돌려받게 되는 선박을 자신들이 대신 이용하겠다”는 식의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 글로벌 컨설팅업계의 한 관계자는 “세계 선복량(선박 보유량)의 7% 정도만 줄여도 해운업계 공급과잉이 해소된다”며 “한국의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사라지면 글로벌 해운업계의 운임이 올라가고 공급과잉도 줄어들 수 있어 이 점을 노린 마케팅”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정부가 나서 외국 선주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차례로 “용선료 인하에 실패하면 현대상선을 법정관리에 보내겠다”고 발언하는 등 측면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것은 현대상선 협상팀이 제시한 여러 가지 당근책이었다. 이들은 외국 선주들에 용선료 인하분을 출자전환된 주식으로 돌려주고, 그 주식도 바로 매각해 현금화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결국 조디악 등이 막판에 돌아섰고, 나머지 선주도 현대상선과 용선료 인하에 동의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독] 현대상선, 벼랑 끝에서 '회생 발판'…해운동맹 가입 길도 열릴 듯
◆디얼라이언스 가입할 듯

현대상선은 당장 올해와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공모채권 8042억원을 모아 한꺼번에 채무재조정을 시도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오는 31일과 6월1일 이틀에 걸쳐 이를 위한 사채권자 집회가 열린다. 용선료 인하 협상이 큰 고비를 넘긴 만큼 사채권자의 동의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 다음 넘어야 할 고비는 제3해운동맹으로 출범한 ‘디얼라이언스’ 가입이다. 해운동맹의 양강구도인 ‘2M’과 ‘오션’을 깨기 위해 만들어진 디얼라이언스에는 한진해운을 비롯해 독일 하파그로이드, 일본 3대 선사(NYK, MOL, K라인) 등이 가입돼 있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용선료 협상이 안 되면 법정관리 처리하겠다는 방침에 따라 일단 현대상선을 제외시켰다. 현대상선은 용선료 협상과 사채권자 집회가 마무리되는 대로 가입을 시도할 계획이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현대상선의 디얼라이언스 가입을 전제로 출자전환을 의결했다. 현재 현대엘리베이터 및 특수관계자의 지분 23.93%는 향후 7 대 1 감자를 거칠 예정이다. 7월 말에서 8월 사이에 채권단은 6000억원을 출자전환하고 사채권자와 용선주가 7000억원을 출자전환해 총 1조3000억원의 채권이 주식으로 바뀌면 현대상선은 채권단 회사가 된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현재 1500%인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이 200%로 낮아져 재무구조가 급속도로 개선될 것”이라며 “정부의 선박 건조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으면 경쟁력을 어느 정도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대규/좌동욱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