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에 블랑샤르 수석이코노미스트가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DC IMF 본부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며 한국의 미래 성장 전략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올리비에 블랑샤르 수석이코노미스트가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DC IMF 본부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며 한국의 미래 성장 전략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세계 경제가 잠재성장률 둔화에 직면했습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누구나 쉽게 창업하고 기업가가 될 수 있게 경제구조의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은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 빠질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올리비에 블랑샤르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가 한국 경제에 던진 충고는 간단명료했다. 선진국에서 수입한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성장 전략으로는 성장을 지속할 수 없을뿐더러 잠재성장률 하락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블랑샤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 IMF 본부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창간 50주년 특별인터뷰를 하고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모방이 아닌 혁신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IMF가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올해는 종전 3.4%에서 3.3%로, 내년은 4.0%에서 3.8%로 내렸습니다. 경제가 어느 정도 어둡습니까.

“세계 경제가 회복되고 있지만 미약하고 불균형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금융위기의 그림자인 과잉 부채에 발목이 잡혀 있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은 회복세가 정체 중이고, 디플레이션(장기적인 물가 하락)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대부분 선진국과 신흥국에서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것도 큰 걱정거리입니다.”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을 비롯해 많은 전문가가 최근의 경기 부진을 ‘구조적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생산성 향상이 둔화되고 동시에 노동력까지 감소해 미래 잠재성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많은 나라에서 잠재성장력이 과거에 비해 둔화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면에서 ‘구조적 장기 침체’에 직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기적으로 실업을 해소하고 성장률을 높이면서 장기적으로 성장동력을 끌어올리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IMF가 정부 인프라 투자 확대를 비롯해 수요 진작과 구조 개혁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미국 경제가 회복 중이지만 과거에 비하면 여전히 성장률이 낮은 수준입니다. 미국도 잠재성장률 둔화에 직면했다고 봅니까.

“미국은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선 혁신 제품, 발명품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생산성이 더욱 향상되고 강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최근의 경기 회복세가 지속돼 1~2년 안에 잠재성장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창간 50주년 특별 인터뷰] "누구든지 기업가 될 수 있도록 창업 활성화시켜야"
▷한국에서도 경제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가 높습니다.

“한국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지만 솔직히 말해 기술 선도국(프런티어)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대기업이 선진국 원천기술을 수입해 낮은 비용으로 제품을 생산·수출하는 구조에 머물고 있습니다. 성장률을 높여 소득 수준을 한 단계 상승시키려면 모방 전략에서 벗어나 혁신 전략으로 가야 합니다.”

▷한국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후진국일 때는 모방이나 선진 기술을 수입함으로써 고속성장할 수 있습니다.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부가 쌓인 후에 한 단계 도약하려면 기술 선도국이 돼야 합니다.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기술 혁신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전략이 필요합니다. 창의성과 이를 키울 수 있는 질 좋은 교육 시스템, 그리고 창업 활성화 등을 통해 누구든지 쉽게 기업가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경제구조와 체질을 바꾸지 못하면 잠재성장률이 둔화되고 중진국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최근 내수 진작을 위해 경기부양책을 펴고 있습니다.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한국 내수시장이 침체돼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서 재정확대 정책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대기업 위주의 수출주도형 경제구조에서 내수주도형 구조, 다시 말해 중소기업이 더 큰 역할을 하는 경제구조로 체질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재정확대 정책이 바람직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성장모델을 바꿔야 합니다.”

▷선진국, 특히 미국을 겨냥해 ‘성급한 통화정책 정상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권고했습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봅니다. 미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회복되고 있지만 노동시장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금리를 인상할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경제 회복세가 지속되고 노동시장 여건이 개선되면 Fed는 내년 중에 금리를 올릴 텐데 구체적인 시기는 경제 회복 강도가 결정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시장의 최대 관심은 Fed의 금리 인상 시기입니다.

“금리 인상 시기가 내년 6월이 될지, 아니면 9월이 될지 예상할 수 없지만 금리 인상이 이미 상당 부분 시장에 반영돼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미국 장기국채 금리는 이미 오르기 시작했고, 외환시장에서도 달러 강세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빠져나갔던 자금도 일부 되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파장이 작을 것이란 뜻인가요.

“과거 경험으로 미뤄보면 Fed가 금리 인상을 단행한 후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금융시장이 혼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미국 금리가 상승하고 그로 인해 미국에서 빠져나갔던 자금이 유턴(U-turn)하면서 신흥국 금융시장이 압박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 큰 충격은 없을 것으로 봅니다.”

▷우크라이나 사태, 중동 분쟁 등 지정학적 위험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큰 파장을 미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국제유가 하락에서 보듯이 중동 분쟁은 국제 원유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사태가 악화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글로벌 경제에 시스템적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의 ‘셰일 혁명’이 국제유가를 장기적으로 하락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최근 유가 하락은 대부분 공급 증대에 따른 것입니다. 특히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 증가가 주된 배경입니다. 유가를 전망하는 일은 매우 어렵지만 당분간 급등이나 급락세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셰일 혁명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줄여주고 에너지 가격을 떨어뜨려 미국 경제에 큰 보탬을 주고 있습니다.”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 출범 2년이 다 돼 가는데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현재로선 아베노믹스가 성공할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소비세를 인상하자 경제가 다시 위축되고 있습니다. 엔저(低)의 수출 증대 효과도 크지 않고, 소비와 투자 증대도 미미합니다. 세 가지 화살로 이뤄진 아베노믹스 전략은 기본적으로 바람직합니다. 특히 세 번째 화살인 구조개혁을 밀어붙여 0.3~0.5% 수준인 잠재성장률을 1%대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IMF가 최근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정부의 재분배 정책을 강조하고 있는데 글로벌 경제의 ‘최후의 대부자’라는 기존 역할에 비춰보면 좀 생소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수년 전부터 소득 불균형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고 두 가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첫째 통계적으로 소득 불균형이 심해질수록 성장동력이 약해지고 지속 성장하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소득 불균형이 소비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고용시장의 이중구조(정규직과 비정규직)가 소득 불평등의 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중산층이 튼튼해지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결론은 소득 불균형 해소를 위한 정부의 각종 재분배 정책이 성장에 이롭다는 것입니다.”

블랑샤르 IMF수석이코노미스트는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대표적 MIT 출신 경제학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거시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미국 경제논문 정보사이트 레펙(RePEc)에 따르면 그는 3만여명의 경제학자 가운데 ‘논문에 가장 많이 인용된 경제학자’ 11위로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를 앞서고 있다. 그가 쓴 ‘거시경제학’은 한국어로 변역돼 국내 대학에서 교재로도 쓰이고 있다. MIT 경제학 박사 출신인 그는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등과 함께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MIT 출신 경제학자’의 대표 인물로 꼽힌다.

△1948 년 프랑스 아미앵 출생 △1971년 파리9대학 경제학과 졸업 △1977년 MIT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1977~1983년 하버드대 교수 △1983~2008년 MIT 교수 △2008년 IMF 수석이코노미스트(현), 미국 보스턴연방은행 및 뉴욕연방은행 고문(현)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