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암사동의 신암초등학교. 정규 수업이 끝났지만 집에 돌아가지 않고 남은 아이들은 저마다 책상 앞에 놓인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며 바쁘게 키보드와 마우스를 움직여 댔다. 삼성전자가 방과후 수업으로 진행하는 ‘주니어 소프트웨어 아카데미’ 현장이다.

교재는 ‘스크래치와 깜토’. 주인공 깜토가 모험을 떠나는 줄거리에 맞춰 미국 MIT에서 만든 교육용 프로그래밍 언어 스크래치를 익히도록 했다. ‘숲속 친구 찾기’ ‘공주 구하기’ ‘강아지 집 찾아가기’ 등의 과제를 주면 아이들이 직접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만들어가며 깜토가 난관을 헤쳐가는 이야기를 완성해 나간다. 5학년 임용민 군은 “자기 생각대로 만들고, 또 생각한 대로 되니까 너무 재밌다”며 “학교가 끝나고 3~4시간 이것만 계속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코딩 교육에 기업들이 직접 나서고 있다. 소프트웨어(SW) 저변 확대와 창의적 인재 육성이 개별 기업의 성패를 넘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영국과 미국 이스라엘 에스토니아 핀란드 중국 인도 등 각국이 앞다퉈 SW 코딩 교육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지부진한 정부 대책만 기다리고 있을 순 없다는 절박함이 기업들을 움직이게 했다.
[STRONG KOREA] 삼성, 초·중·고 4만명 코딩 교육…네이버, SW개발자 학교 세워
삼성 “21세기는 소프트웨어의 시대”

스마트폰을 개발하며 SW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삼성전자가 가장 적극적이다. 작년 3월부터 초·중·고 학생들에게 방과 후 코딩을 가르쳐 주는 주니어 소프트웨어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다. 교재와 교육용 기기, 프로그램, 강사를 전부 삼성이 무료로 제공한다. 사회공헌 활동 차원이다. 지난해 45개 학교에서 시범적으로 시작한 아카데미는 올해 121개 초·중·고 3300명으로 확대했다. 각 학교에서 신청이 쏟아져 경쟁이 치열했다고 삼성 측은 전했다. 삼성은 2017년까지 4만명 이상의 학생에게 코딩을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삼성전자 사회봉사단장을 맡고 있는 정금용 부사장은 “21세기는 SW의 시대”라며 “청소년들이 어려서부터 SW에 익숙해지고 SW 분야에 대한 꿈과 비전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어렸을 때 배운 코딩 능력이 창의력, 논리력, 문제해결력, 융합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 밑바탕이 된다는 얘기다.

아카데미는 1주일에 두 시간씩 16주 동안 진행된다. 어려운 명령어를 몰라도 코드 블록을 조합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스크래치로 코딩이 무엇인지 맛을 본 다음 난이도를 높여간다. C언어로 본격적인 코딩을 하는 방법이나 ‘아두이노’라고 하는 손바닥만한 회로기판을 이용해 SW와 하드웨어가 어떻게 서로 연결돼 작동하는지도 배우게 된다. 아두이노에 회로를 이리저리 연결하면 게임 조이스틱이나 피아노도 만들 수 있다.

김재동 신암초 교사는 “평소에 딴짓하던 아이들이 주어진 문제를 코딩으로 해결하라고 할 때에는 무섭게 집중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며 “왜 진작 코딩 수업을 하지 않았을까, 정규 과정에 넣어 모든 학생이 배우는 과목이 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네이버·넥슨도 인재 육성 나서

국내 1위 인터넷 포털 네이버도 ‘소프트웨어야 놀자’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겨울방학 때부터 아이들을 위한 SW 교육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올 1학기에는 4월8일부터 6월28일까지 10주간 1주일에 100분씩 수업을 한다. 경기 성남·용인 지역에 있는 서원초 운중초 산운초 3~4학년 중 총 62명이 대상이다. 역시 스크래치를 활용해 동화 ‘오즈의 마법사’의 장면 장면을 애니메이션과 게임으로 만들어 보게 해 아이들이 코딩에 재미와 호기심을 느끼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네이버는 보다 전문적인 개발자를 양성하기 위해 ‘NHN넥스트’ 학교도 세웠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선 우수한 개발자들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신입 사원을 뽑을 때마다 항상 인재 부족의 아쉬움을 느꼈던 게 계기가 됐다.

이민석 NHN넥스트 학장은 “소프트웨어야 놀자가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코딩의 재미를 알려 주고 수학적 사고력과 창의력을 길러주는 데 목적이 있다면 NHN넥스트는 진지하게 개발자가 되고 싶은 사람을 길러내는 곳”이라며 “고교 졸업자부터 명문대 휴학생, 예술을 공부하다 온 사람들까지 다양한 배경의 학생이 한데 모여 SW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학장은 “초·중·고 아이들이 살아있는 코딩 교육을 받기 위해선 학생, 선생님, 현업 종사자 등이 아이디어와 기술,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 문화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딩의 핵심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푸는 데 의의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학교 안에 갇혀 있는 코딩이 아니라 현실과 접점을 가진 코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게임업체 넥슨도 마찬가지다. 특히 최근 들어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빠진 것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넥슨은 서울대 광운대 한동대 등 대학의 컴퓨터공학과와 산학협력을 맺고 넥슨 개발자가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을 개설하는 등 인재 양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넥슨 관계자는 “게임은 SW 개발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분야”라며 “넥슨 오픈스튜디오, 글로벌 인턴십, 드림 멤버스 등 잠재력을 가진 인재를 대학에서부터 조기 발굴·육성하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