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새로 산 청바지가 구겨지는 게 걱정된다면 트리즈의 원리 중 ‘미리 조치하기’를 활용해 보자. 어차피 구겨기는 청바지라면 예쁘게 구겨보자. 주름 청바지를 발명한 원리다.

#2:자명종 시계를 꺼버려 못 일어나게 될 것이 걱정된다면 트리즈의 원리 중 ‘중간 매개체 활용’을 해 보자. 알람이 울리면 퍼즐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다 맞춰야 시계 울림이 꺼진다. 안 일어날 재간이 없다.

앞선 사례는 생각의 전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예다. 이 방법들은 각각 트리즈(TRIZ)가 제시하는 40가지 창의적 문제 해결 방법에 들어 있다.

트리즈란 ‘창의적 문제 해결’을 뜻하는 러시아어의 약자로 1956년 러시아 학자 겐리히 알츠슐러가 개발했다. 그는 러시아 특허 200만건을 분석한 뒤 파급력 있는 기술들은 단지 수십가지의 패턴으로 정형화돼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활용된 아이디어 패턴 40개를 뽑아내 트리즈 이론을 정립했다. 트리즈는 요즘 생산 현장에서 적용되는 데서 벗어나 전략 경영 활동으로 적용 범위가 넓어지는 추세다. 전사품질관리(TQM), 6시그마 등 기존 혁신기법이 생산현장의 품질 개선과 원가 절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트리즈는 제품 구성이나 생산라인, 작업 시스템 등을 통째로 바꾸는 경영혁신 기법이다.

○‘창조경영’의 열쇠, 트리즈 콘퍼런스

트리즈를 집중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트리즈학회와 한국경제신문, 연세대, 한국산업기술대는 지난 10일부터 서울 신촌동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이틀간 ‘2012 국제트리즈 콘퍼런스’를 열었다. 이 자리에선 국내외 트리즈 전문가와 기업 관계자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트리즈를 활용한 기업들의 창조경영 사례를 소개하고 트리즈의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

김세현 한국트리즈학회장 겸 포스코 생산성연구센터장은 “정보사회에서 창조사회로 패러다임이 변화하며 구성원의 창의력이 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창조경영’이 화두가 되고 있다”며 “콘퍼런스가 각 분야에서의 트리즈 활용 사례를 논의하는 공유하는 장(場)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행사를 축하하고 포스코의 트리즈 활용 사례를 발표하기 위해 터키 출장 중임에도 영상을 통해 참석자들을 만났다. 그는 손자병법 36계를 활용한 포스코의 트리즈 경영전략 등을 설명했다. 정 회장은 “도요타는 히말라야를 넘는 두루미를 연구해 차체 무게를 줄였고, 나비의 원리를 보고 차량용 내비게이션을 개발했다”며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걷는 도전의식에 뿌리를 두고 세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리즈 전도사’로 불리는 손욱 서울대 교수는 “인류가 도구의 발견을 통해 발전했듯 트리즈와 같은 생각의 도구가 있어야 창조적인 혁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포스코·삼성전자·이즈미의 활용 사례

첫날 세션은 세르게이 이코뱅코 러시아 국제 트리즈협회장의 기조강연으로 시작됐다. 그는 “트리즈는 제조업 중심 기업뿐 아니라 의료, IT 등 모든 분야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매력적인 제품을 설계하는 것은 물론 사업 분석과 시장 조사분석에도 트리즈 기법을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트랙별 주제 발표에선 일본 이즈미사의 트리즈를 활용한 전기면도기의 소음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이즈미 관계자는 “소음을 일으키는 원인이 진동뿐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재검토했다”며 “트리즈를 활용해 문제의 원인을 찾은 뒤 제품을 처음부터 새로 조립해 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포스코, 삼성전자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트리즈 적용 사례를 소개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웨이퍼 인식오류 문제를 트리즈를 활용, 손쉽게 해결한 사례를 발표했다. 김성환 SK하이닉스 책임은 “웨이퍼 공정에서 불량의 원인을 트리즈 기법으로 발견했다”며 “국내 트리즈 발전을 위해 이해하기 쉬운 혁신 사례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소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가치 혁신에도 도움

둘째날 세션에선 트리즈를 활용해 제품을 개발한 중소기업 사례가 발표됐다. (주)매직카라의 음식물쓰레기 처리기 개발과정에 참여한 신정호 박사는 “트리즈의 ‘나누기’ 등의 방법을 응용, 제품 건조통을 분리하고 건조상태를 인식하는 센서를 추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결과 음식물 처리시간을 단축시키고 전기료를 획기적으로 줄였다”고 강조했다. 김세현 트리즈학회장은 “중소기업의 트리즈 도입이 늘고 있다”며 “기술력 향상은 물론 기업가치를 단번에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한국 일류기업들이 트리즈 분야에서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쓰던 과거엔 좋은 품질의 물건을 싸게 만들어내면 됐지만, 1등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 현대엔 창조와 혁신이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국제 트리즈저널 창립자 겸 편집장을 지낸 앨런 돔 PQR 컨설턴트는 “미국에선 정부 부문의 트리즈 전략 활용이 늘어나고 기업들도 도입에 적극적”이라며 “사업 분야와 목표에 맞는 전략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