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에서 최근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이면에는 삼성전자의 '골든 프라이스 전략'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골든 프라이스 전략은 높은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경쟁사들이 이익을 내지 못하게 하면서 자사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가격 전략을 말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29일 "세계 D램 시장의 40% 가까이를 점유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가격이 하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공급을 계속 확대하는 것은 물론 다른 업체에 비해 가격을 낮춰 대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격을 낮추더라도 삼성전자의 원가경쟁력이 높아 충분히 이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전략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또 미래 생산성을 좌우하는 주요 반도체 장비까지 조기 대량 발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반도체 장비를 만들 수 있는 회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 장비를 미리 확보해두면 경쟁사들은 생산성 향상을 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반도체 미세 공정의 힘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DDR3 1기가비트(Gb)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내년 초 1.6~1.7달러 선까지 하락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한승훈 연구원은 "반도체 가격은 수요보다는 D램 업체들의 공급능력과 관련이 있었다"며 "하반기에도 D램 업체들이 공급을 늘릴 것으로 보여 가격하락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세계 1위 삼성전자는 이미 3분기 공급을 30% 가까이 늘리기로 했다. 수요위축과 공급증가,1위 메이커의 가격인하정책이 가세하면 충분히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8월 대만에서 9,10월 공급물량을 경쟁업체에 비해 낮은 가격에 대량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전망(1.6달러)이 현실화할 경우 현재 상태에서 이익을 낼 수 있는 곳은 삼성전자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에서 40나노미터(㎚ · 1㎚는 10억분의 1m) 공정이 D램 생산의 절반을 넘는 회사는 삼성밖에 없다"며 "삼성전자의 원가는 1.4달러 선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40㎚ 공정이 50%를 넘고 그 뒤를 추격하고 있는 하이닉스는 30% 수준이다. 미국 마이크론은 여전히 50~60㎚대를 중심으로 생산하고 있고 대만업체들은 60㎚가 주력이다. 반도체 생산공정이 한 단계(10㎚) 미세해질 때마다 생산효율은 50~60% 증가하게 된다.

이를 기초로 각 회사들의 반도체 원가를 추산해보면 하이닉스는 1.5달러 선,마이크론은 2달러 선,대만 회사들은 2달러 초반대가 된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가격이 1.6달러 선까지 떨어지면 삼성전자는 약간의 이익을 내고 다른 업체들은 겨우 원가수준이거나 적자를 보게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시장전망은 주가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상반기 한때 3달러를 넘어섰던 반도체 가격이 최근 2달러 선까지 추락했으나 삼성전자 주가는 연초 대비 4% 하락하는 데 그쳤다. 반면 하이닉스는 10% 정도 떨어졌고 엘피다,마이크론,난야 등은 30%가량 추락했다.

◆10년 만에 부활한 점유율 전략

삼성전자의 이 같은 전략은 2000년대 초와 비슷하다. 삼성전자의 2000년 D램 시장 점유율은 20% 선이었다. 2001년 삼성전자는 앞선 기술을 무기로 가격인하에 나서 점유율을 27%로 끌어올린 데 이어 2002년에는 32%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업계 전문가는 "삼성전자가 메모리 설비투자액을 5조원에서 9조원으로 늘린 것은 10년 전 D램 시장의 기반을 다질 때 펼쳤던 전략과 비슷하다"며 "장기적으로 시장점유율을 50%대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골든 프라이스 전략과 장비 선구매,미세공정 전환 등을 통해 D램 산업의 구조 자체를 바꾸려 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장상황에 따라 급등락하는 불안정한 산업이 아니라 항구적으로 삼성만이 이익을 낼 수 있는 구도 재편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 골든프라이스 전략

높은 원가 경쟁력을 갖춘 회사가 가격정책을 통해 경쟁업체를 고사시키는 전략을 말한다. 자기 회사는 이익을 낼 수 있지만,경쟁사들은 원가 수준이거나 적자를 내게끔 낮게 가격을 결정한다. 평소에 비해 이익은 줄어들지만 시장점유율 확대를 목표로 할 때 이 전략을 구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