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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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을 마실 때 아버지는 국그릇을 양손에 받쳐 들었다. 비운 밥그릇에 물을 부어 마실 때도 꼭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마셨다. 결혼해서 부모님과 같이 살 때다. 며느리가 시집올 때 예물로 해온 백자 반상기(飯床器) 그릇을 쓸 때만 그랬다. 다른 그릇으로 마실 때는 한 손만 썼다. 겸상할 때만 그러나 했더니 독상을 받을 때도 그렇게 했다. 궁금해서 여쭸다. 아버지는 봤구나! 일부러 그렇게 한다. 작가가 도자기를 빚을 때 손길처럼 그릇을 감싸 안아 마시면 그 마음을 느낄 수가 있어서다. 또 요즘 흔치 않은 투박한 백자 밥그릇을 선물한 며느리의 초심도 읽을 수 있어서다라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예물은 시댁에 대한 예의와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거다. 도자기는 흡수성이 낮아 음식물이 잘 묻지 않고, 내구성이 강해 오래도록 쓸 수 있어 마음에 든다. 조선의 백자를 재현하는 집이 흔치 않은데 용케 구한 그 마음 또한 이쁘다. 더욱이 예부터 반상기는 시부모의 식사를 책임지겠다는 뜻을 나타내며 공경하고 효도하는 마음을 표현한다잖느냐. 매끼 밥을 먹듯 며늘아기의 초심을 그릇에 담아주어 가득한 그 효심을 느낀다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좋아했다.

자리를 옮긴 아버지는 대뜸 원인 없는 결과 없고 근원 없는 현상 없다라는 말을 꺼냈다. 이어 성급한 사람들은 흔히 결과와 현상만 보고 방안을 찾고 문제를 풀 궁리만 한다. 그렇게 해서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며 일을 해결하려면 근원에 집중하라고 강조했다. 아버지는 근원의 원()자는 물 수() 자와 근원 원()자가 결합한 글자다. ()자는 언덕()과 샘()을 함께 그린 것으로 바위틈 사이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어김없이 그날도 고사성어를 인용했다.

말씀하신 성어가 음수사원(飮水思源)’이다.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나라 유신(庾信)이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서위(西魏)에 사신으로 파견 간다. 도중에 그 서위가 그의 나라를 기습 공격해 양나라가 멸망하고 만다. 유신은 나라가 망하자 돌아가려 했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서위의 황제가 만류해 30년 간이나 장안에 반강제로 억류되어 귀국하지 못했다. 황제의 배려로 어렵지 않게는 생활했으나 멸망한 나라의 신하로서 마음이 편치 않았던 그가 남긴 유명한 시가 징조곡(徵調曲)이다. 그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 열매를 따는 사람은 그 근본인 나무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하고, 그 물을 마시려는 사람은 그 물이 흘러온 근원을 잊지 말아야 한다[落其實者 思其樹飮其流者 懷其源].” 줄여서 낙실사수 음수사원(落實思樹 飮水思源)이라 한다. 조국은 멸망해 없어졌는데 타국의 수도에 억류되어 하루하루를 보내는 신하가 자신의 신세를 탓하며 이렇게 읊었다.

아버지는 이 말에서 무릇 물을 마실 때는 그 물이 오는 근원을 생각하고 그 우물을 판 사람의 뜻을 생각하며 마셔라[飮水思源 掘井之人]’는 말이 나왔다. 후세 선인들이 저 성어의 고마움을 강조해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하며 저 성어에서는 고마움보다 지금은 몸이 편하더라도 자신을 파견한 조국을 잊지 않으려는 각오를 읽어야 한다고 해석했다. 이 말은 많은 지도자들이 즐겨 인용했다. 백범(白凡) 김구(金九)의 좌우명이었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발전시킨 정수장학회의 청오회에 내린 휘호이기도 하다.
초심을 잊지 마라. 열정과 도전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본질을 잊지 않기 위해서, 진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초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두세 번 강조하며 초심은 첫 생각이다. 그래서 순수하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영향에 의해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아직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왜곡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단언했다. “초심은 밥 먹을 때나 물 마실 때처럼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걸 잊지 않으려고 상징물을 두는 건 현명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버지는 근원은 현상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요인이다. 어떤 현상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근원이 존재해야 한다. 원인과 근원을 파악하면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원인과 근원을 간직한 마음이 초심이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어 혹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왔던 길을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왔던 길을 돌아가기는 쉽지 않지만, 잘못 들어선 길 끝에서 후회하는 것보다는 낫다라며 말을 맺었다. 왔던 길을 돌아가면 새로운 기회를 얻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지만,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다. 왔던 길을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손주에게 꼭 물려줘 유념시켜야 할 심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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