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살 나이 차 딛고 걸어서 왕릉 속으로…"함께 배우고 지켜야죠"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5박 6일간 조선왕릉 40기 답사한 '조선왕릉원정대'…일본인도 참여
"왕릉은 역사와 함께 숨 쉬는 공간…우리가 지키고 널리 알려야" 500년 조선 왕조의 왕과 왕비를 모신 무덤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왕릉은 흔히 '신들의 정원'이라 불린다.
왕의 마지막 쉼터를 위해 가장 좋은 땅을 선택했고, 당대 제일가는 장인을 모아 유교적 가치와 풍수적 전통을 근간으로 한 독특한 건축과 조경 양식을 만들어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왕릉 40기를 직접 걸으며 배워보면 어떨까.
지난 22일 조선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의 무덤인 경기 구리 건원릉에서 고유제를 올리며 첫발을 내디딘 조선왕릉원정대는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원정대는 10월 열리는 조선왕릉문화제에 앞서 신한은행의 후원을 받아 열린 특별 프로그램이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아우르는 대원 40명이 구리 동구릉을 시작으로 영월 장릉, 서울 태릉과 강릉, 고양 서오릉 등 총 18곳, 40기의 왕릉을 답사했다.
매일 평균 11㎞, 5박 6일을 걸어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원정대원 가운데 최연장자였던 엄동현(67) 씨는 2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만약 혼자 왕릉 40기를 돌라고 했으면 못 했을 것"이라며 "처음 대원들을 만난 날, 다들 활동 경력이 대단해서 놀랐다"고 떠올렸다.
부산에서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엄씨는 자신을 '동네의 남아도는 아저씨'라고 소개하며 '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라는 뜻의 '마포불백'으로 불러달라 했다.
조원 가운데 가장 어린 대원은 2003년생, 그러나 47살의 나이 차는 아무렇지 않았다고 한다.
엄 씨는 "퇴직한 뒤 과거 역사에 관심이 많았을 뿐인데 좋은 기회로 40기 왕릉을 모두 둘러보는 행운을 얻었다.
아들딸 같은 동료 대원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라며 웃었다.
그는 같은 조원이었던 일본인 오오세 루미코 씨를 언급하며 "70년대생 일본인과 50년대생 한국인이 일정 내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어 정말 뜻깊었다"고 말했다.
엄 씨와 같은 조였던 문성민(24) 씨는 함께 배우는 역사의 가치를 배웠다고 했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는 문 씨는 "어렸을 때 문화유산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했지만, 현장에서 사람들과 부딪치고 답사하며 배우는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고 말했다.
"시대에 따라, 왕릉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조선 왕조(1392∼1910) 왕과 왕비의 무덤을 형식에 맞춰 체계적으로, 또 자연과 어우러지게 조성했다는 걸 직접 경험하니 생생하게 다가왔죠." (웃음) 대원들은 다음 달 개방을 앞둔 효릉(孝陵)을 처음 둘러본 감회도 전했다.
인종(재위 1544∼1545)과 인성왕후을 모신 효릉은 그동안 일반인 관람이나 출입이 제한돼 왔으나 다음 달부터 관람객을 맞는다.
미공개 상태로 있던 마지막 왕릉이 열리는 것이다.
올해 2월 대학을 졸업한 김연수(25) 씨는 "아직 개방 전이라 모두 방역 작업을 거쳐 들어갔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울창한 숲에 쌓인 듯한 느낌이 생생하게 기억 남는다"고 말했다.
김 씨는 "왕릉이라는 게 사실 무덤이다 보니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대하기 어려웠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속에서 평온해지는 마음을 느꼈다"고 했다.
원정을 마친 대원들이 생각하는 조선왕릉의 의미는 무엇일까.
엄동현 씨는 조선왕릉을 '우정한다'라고 지칭하며 "과거 왕은 존엄한 존재였고, 왕의 무덤은 접근이 금지된 곳이었지만 이제는 역사 속에서 함께 숨 쉬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왕릉과 함께 친구가 되고 우정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김연수 씨는 "40기의 왕릉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며 "친구들에게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고, 우리가 오래도록 잘 보존해야 할 유산이 있다고 알리고 함께 지키고 싶다"고 했다.
한국문화재재단은 향후 원정대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지난 27일 서울 선릉과 정릉에서 5박 6일간의 일정을 마친 대원들이 가장 먼저 물어본 질문은 '다음 원정대는 언제 출발하냐?'였다고 한다.
일부 참가자는 자진해서 스태프로 참여해 또 한 번 왕릉을 찾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재단 관계자는 "40기 능을 모두 탐방하는 일정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참가자들의 반응이 정말 좋았다"며 "정례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왕릉은 역사와 함께 숨 쉬는 공간…우리가 지키고 널리 알려야" 500년 조선 왕조의 왕과 왕비를 모신 무덤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왕릉은 흔히 '신들의 정원'이라 불린다.
왕의 마지막 쉼터를 위해 가장 좋은 땅을 선택했고, 당대 제일가는 장인을 모아 유교적 가치와 풍수적 전통을 근간으로 한 독특한 건축과 조경 양식을 만들어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왕릉 40기를 직접 걸으며 배워보면 어떨까.
지난 22일 조선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의 무덤인 경기 구리 건원릉에서 고유제를 올리며 첫발을 내디딘 조선왕릉원정대는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원정대는 10월 열리는 조선왕릉문화제에 앞서 신한은행의 후원을 받아 열린 특별 프로그램이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아우르는 대원 40명이 구리 동구릉을 시작으로 영월 장릉, 서울 태릉과 강릉, 고양 서오릉 등 총 18곳, 40기의 왕릉을 답사했다.
매일 평균 11㎞, 5박 6일을 걸어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원정대원 가운데 최연장자였던 엄동현(67) 씨는 2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만약 혼자 왕릉 40기를 돌라고 했으면 못 했을 것"이라며 "처음 대원들을 만난 날, 다들 활동 경력이 대단해서 놀랐다"고 떠올렸다.
부산에서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엄씨는 자신을 '동네의 남아도는 아저씨'라고 소개하며 '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라는 뜻의 '마포불백'으로 불러달라 했다.
조원 가운데 가장 어린 대원은 2003년생, 그러나 47살의 나이 차는 아무렇지 않았다고 한다.
엄 씨는 "퇴직한 뒤 과거 역사에 관심이 많았을 뿐인데 좋은 기회로 40기 왕릉을 모두 둘러보는 행운을 얻었다.
아들딸 같은 동료 대원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라며 웃었다.
그는 같은 조원이었던 일본인 오오세 루미코 씨를 언급하며 "70년대생 일본인과 50년대생 한국인이 일정 내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어 정말 뜻깊었다"고 말했다.
엄 씨와 같은 조였던 문성민(24) 씨는 함께 배우는 역사의 가치를 배웠다고 했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는 문 씨는 "어렸을 때 문화유산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했지만, 현장에서 사람들과 부딪치고 답사하며 배우는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고 말했다.
"시대에 따라, 왕릉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조선 왕조(1392∼1910) 왕과 왕비의 무덤을 형식에 맞춰 체계적으로, 또 자연과 어우러지게 조성했다는 걸 직접 경험하니 생생하게 다가왔죠." (웃음) 대원들은 다음 달 개방을 앞둔 효릉(孝陵)을 처음 둘러본 감회도 전했다.
인종(재위 1544∼1545)과 인성왕후을 모신 효릉은 그동안 일반인 관람이나 출입이 제한돼 왔으나 다음 달부터 관람객을 맞는다.
미공개 상태로 있던 마지막 왕릉이 열리는 것이다.
올해 2월 대학을 졸업한 김연수(25) 씨는 "아직 개방 전이라 모두 방역 작업을 거쳐 들어갔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울창한 숲에 쌓인 듯한 느낌이 생생하게 기억 남는다"고 말했다.
김 씨는 "왕릉이라는 게 사실 무덤이다 보니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대하기 어려웠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속에서 평온해지는 마음을 느꼈다"고 했다.
원정을 마친 대원들이 생각하는 조선왕릉의 의미는 무엇일까.
엄동현 씨는 조선왕릉을 '우정한다'라고 지칭하며 "과거 왕은 존엄한 존재였고, 왕의 무덤은 접근이 금지된 곳이었지만 이제는 역사 속에서 함께 숨 쉬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왕릉과 함께 친구가 되고 우정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김연수 씨는 "40기의 왕릉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며 "친구들에게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고, 우리가 오래도록 잘 보존해야 할 유산이 있다고 알리고 함께 지키고 싶다"고 했다.
한국문화재재단은 향후 원정대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지난 27일 서울 선릉과 정릉에서 5박 6일간의 일정을 마친 대원들이 가장 먼저 물어본 질문은 '다음 원정대는 언제 출발하냐?'였다고 한다.
일부 참가자는 자진해서 스태프로 참여해 또 한 번 왕릉을 찾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재단 관계자는 "40기 능을 모두 탐방하는 일정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참가자들의 반응이 정말 좋았다"며 "정례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