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화의 매트릭스로 보는 세상] "환율 상관 없는 옛날 장돌뱅이들이 좋았어"
원-달러 환율이 치솟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같은 거대 기업처럼 짜장면 집, 칼국수 집도 환율의 영향을 받는다. 밀가루의 원료인 밀을 대부분 수입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장사하는 사람치고 환율에 민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발볼넓은, 베어풋 신발을 수입 판매하는 비바미도 마찬가지이다. 일부 고급 신발은 한국에서 만들지만 가죽을 수입하는 관계로 국내 제조 신발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불과 1년 사이에 원달러 환율이 거의 15%나 올랐다. 이 정도면 왠만한 제품의 마진율을 다 깎아 먹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나도 고민 중이다. 가격을 올려야 하나, 올리면 얼마나 올려야 할까? 도매와 소매 판매망이 별도로 있는데 모두 올려야 하나, 유통망에 따라 차등을 두고 올려야 할까?
IMF때였다. 어느 무역회사의 친구가 수리남의 바이어와 30만불어치 철강 제품 수출 계약을 하였다. 계약 환율은 890원 내외. 우리 돈으로 약 2억 6천 7백원이다. 그런데 IMF가 터지고 석 달 뒤엔가 신용장을 네고해서 환불할 때는 무려 1400원 까지 올라갔다. 4억 2천만원이 되었다. 원래 계산했던 마진에 무려 1억 5천 3백만원이 더 입금되었다. 기분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같았다. 그리고 그 바이어와 다시 30만불어치 동일한 제품을 계약하였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환율이 3000원까지 올라간다고 했지만 그는 안전하게 1900원으로 계약했다. 하지만 서너달 후 물건이 선적되고 수출 대금을 받을 시점에서 환율은 1300원 내외가 되었다. 결국 벌었던 돈을 도로 뱉어내고 6-7개월 동안 기분좋게 애만 쓴 꼴이 되었다. 그 때 떼돈 번 수출회사들 많았다. 그런데 수출회사이니 망정이지 수입회사들은 그 때 무너진 회사들 엄청 많다. 왜냐하면 수출회사들은 일단 선수금이나 신용장을 받고 시작하지만, 수입회사들은 내 돈을 내고 시작해야 한다. 한 번 나간 돈의 액수가 크고 그로 인한 타격을 회복하지 못하면 망한다. 예를 들면 900원에 30만불어치 계약하면 2억 7천만원이다. 그런데 1800원이 되면 5억 4천만으로 30만불의 한국 돈 값어치가 바뀐다. 그냥 앉아서 2억 7천만원이 날라간다. 다시 시작해서 1800원이 900원 되어 원상 회복이 되어도 나간 돈의 갭을 못 메꾼 회사들은 쫄딱 망했다.

지금 내가 그 기로에 서있다. 상황이 불안하다.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을 언급하는 경제 전망이 많다. 이럴 때는 현물, 즉 비바미는 발볼넓은 제로드롭 신발 재고를 많이 갖고 있는 게 좋다. 그런데 환율이 많이 올랐다. 매달 일정한 금액만큼 수입하는 데 하루하루 환율이 바뀐다. 10원만 바뀌어도 꽤 큰 금액이 된다. 하루를 미룰까? 그럼 내일은 떨어질까? 지금 당장 할까? 더 오르기 전에. 여지껏도 무리해서 재고를 들여놓았다. 이제까지는 그런대로 재고 확보 전략이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지금 세계는 더 많은 달러를 필요로 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달러를 거둬들이려고 한다. 유럽이나 중국과 달리 미국은 식량과 자원이 모두 국내에서 조달이 가능하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어려움이 덜 할 가능성이 높다. 자기 의지대로 실물이든, 화폐든 경제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그래서 난 원-달러 환율이 더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자금이다. 구멍가게의 특성상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늘 쥐꼬리만큼 한정되어 있고, 세상은 겁나게 빨리 변하면서, 환율을 미친 듯이 올려놓는다. 그렇다고 바이든, 시진핑, 푸틴한테 가서 적당히 하고 끝내자고 할 입장도 아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친해 놓을 걸.

엊그제 봉평에 가서 메밀국수 먹고 왔다. 봉평은 이효석의 메밀로 먹고 사는 동네가 되었다. 맛있었다기 보다 이효석의 허생원 생각하며 국수를 후루룩했다. 허생원은 장돌뱅이를 해도 봉평장만 생각하면 되었는데, 현대판 장돌뱅이 홍서방은 바이든, 시진핑, 푸틴 머리 속을 들락날락해야 겨우 먹고 산다. 역시 옛날이 좋았다. 환율없는 세상에서 장돌뱅이 하고 싶다. 피곤해~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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