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8일. 서울 동부지방법원 경매법정에 입찰자만 226명이 몰려 한차례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말이야 226명이지 입찰자 외에 동행인, 정보업체 종사자, 대리인, 교육 수강생까지 합하면 족히 600명은 넘음직한 인파이니 그 좁은 경매법정이 미어터졌을 법도 하다.

이날 경매 진행되어 낙찰된 물건은 모두 26건. 평균 입찰경쟁률이 8.7대 1로 딱 3주전 DTI규제 확대 직후 같은 법정의 입찰경쟁률 7.6대 1보다 더 높아졌다. 감정가를 넘겨 낙찰된 물건도 무려 11건에 달했으며, 건당 10명 이상의 경쟁률을 보인 물건도 모두 8건(20명 이상은 3건)이나 됐다.

DTI규제 확대, 자금출처조사가 경매시장에서는 먼 남의 나라 얘기로만 들리는가 보다. 이러한 규제보다는 아무래도 감정가가 시세보다 낮은 물건이 상당수 있었고, 지하철 9호선 연장 호재,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학군 등 향후 자산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우량한 물건이 다량 쏟아져 나왔던 점이 더 크게 부각된 탓일 게다.

각설하고 이날 경매진행 결과를 살펴보다 눈에 띄는 사건을 발견했다. 강동구 둔촌동에 소재한 둔촌현대아파트 32평형 2건이 그것이다. 하나는 13동 401호 물건으로 4억5천만 원 감정가에 한차례 유찰되어 최저경매가가 3억6천만 원이었다. 다른 하나는 14동 501호 물건으로 감정가가 5억3천만 원에 어떤 연유에선지 3차례나 유찰되어 최저경매가가 2억7136만 원까지 떨어졌다.

같은 평형의 두 물건 감정평가액 차이는 감정시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됐다. 전자의 경우 감정시점이 올해 2월말이었던 반면 후자는 지난해 9월초였기 때문이다. 올해 2월은 지난해 하반기 금융위기 이후 급락하던 아파트 가격이 다시 상승세로 전환되기 시작했던 때라 가격이 낮을 수밖에 없었고, 지난해 9월초는 금융위기 직전이라 아파트 가격이 급락하기 전이었다.

비록 두 물건간 감정가 차이는 있었지만 여하튼 최근의 시세는 약 5억 원 정도에 형성돼 있다. 최근 리모델링사업이 추진되었다가 입주민들의 반대로 재건축으로 선회되어 재건축이 언제 될지 모른다는 것이 약점 요인으로 작용됐지만 지하철 9호선을 보훈병원까지 연장하기로 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세가 올랐다.

이런 이유로 두 물건 모두 20명이 넘는 최고의 경쟁률을 보이며, 1회 유찰된 13동 401호는 4억4890만 원(낙찰가율 99.76%, 29명 입찰)에, 3회 유찰된 14동 501호는 4억3280만원(낙찰가율 81.66%, 24명 입찰)에 낙찰됐다. 두 물건의 낙찰가 차이는 약 1600만원.

그런대로 좋았다. 현재 시세 5억원을 기준으로 한다면 401호는 시세보다 약 5천만원 정도, 501호는 약 7천만원 정도 싸게 산 셈이다. 이런 셈법으로 모든 게 마무리되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경매시장이 그리 녹록하지가 않다.

문제는 3회 유찰된 14동 501호에 있었다. 기술했듯 이 물건은 세 차례나 유찰됐다. 아무런 이유 없이 강동구에 소재한 재건축이 가능한 단지가, 그것도 지하철 9호선 연장이라는 개발호재가 있는 아파트가 세 차례씩이나 유찰될 수 있었을까?

501호 물건을 유심히 살펴봤다. 등기부등본을 보니 신OO새마을금고가 2007년 5월에 최초 근저당권자로 등재되어 있고 이하 근저당 1건, 압류 1건, 가압류 2건이 설정돼 있지만 모두 낙찰로 말소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

다음으로 법원매각물건명세서를 보니 임대차현황에 'L'씨가 2004년 11월에 전입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러한 사실은 경매정보업체가 조사한 동사무소 전입세대 열람 내역에서도 재차 확인됐다. 그러나 'L'씨는 전입만 돼 있을 뿐 보증금이나 확정일자, 임대차기간 등에 관한 일체의 내역이 공개되지 않았다.

'L'씨가 소유자의 가족인지 아님 임차인인지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L'씨는 권리신고나 배당요구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임대차 내역도 없고 전입일자로 보아 'L'씨가 2004년 11월부터 5년 가까이 장기간 한 곳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칫 'L'씨를 소유자의 가족으로 오인하게 할 소지가 다분했다.

점유자가 임차인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바로 근저당 채권자인 금융기관을 활용하는 것. 금융기관이 근저당을 설정하기 전에 거치는 절차가 임대차 내역 조사이다. 조사 결과 점유자가 임차인이면 대출한도에서 임차인의 보증금을 뺀 나머지 금액을 대출하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에 초기 근저당 설정금액이 적을 수밖에 없다.

또한 소유자나 그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점유하고 있는데 임대차관계 없이 점유하고 있다면 그 점유자로부터 무상거주확인서를 받아두는 것이 금융기관의 통례이다. 점유자에 대한 임대차관계가 미상이라면 즉시 금융기관을 방문하거나 유선상으로 점유자에 대한 임대차 내역을 물어보아야 한다.

아마도 낙찰자는 이러한 절차를 간과한 듯싶다. 신OO새마을금고에 확인 결과 'L'씨는 임차인이 맞고 임대차 보증금은 1억4천만 원이란다. 'L'씨의 전입일이 최초 근저당 설정일보다 빠르므로 'L'씨는 선순위 임차인에 해당되어 낙찰자는 임차인 전세보증금 1억4천만 원을 옴팡 뒤집어쓰게 생겼다.

24명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4억3280만 원에 낙찰됐지만 1억4천만 원의 전세보증금을 떠안게 되는 결과 약 5억7천만 원에 501호를 낙찰 받은 결과가 됐다. 동일한 단지내 동일한 평형대에 하나는 약 4억5천만 원에 다른 하나는 이보다 1억2천만 원이 높은 5억7천만 원에 낙찰이 된 셈이다.

501호 낙찰자가 과연 낙찰대금은 전액 납부할 수 있을까 귀추가 주목되는 사안이기도 하다. 물론 둔촌현대아파트의 재건축 가능성, 5년 이후 개통 예정인 지하철 9호선에 대한 연장이라는 개발호재로 자산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판단에 계속 보유하고자 한다면 모를까.

최초 근저당 설정금액이 적은 것도 그러려니와 1순위 근저당 채권자가 제1 또는 2금융권이 아니라 OO새마을금고나 OO캐피탈 같은 경우에도 선순위 임차인에 대한 존재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임을 잊지 말지어다.

닥터아파트(www.drapt.com) 이영진 리서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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