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철거판결을 받아 철거집행을 앞둔 어느 의뢰인의 안타까운 상담을 받았다. 의뢰인 건물이 상대방의 토지를 일부 침범했지만, 법정지상권이 성립할 수 있어 철거재판에서 잘 방어했더라면 철거판결은 피할 수 있었지만, 소송대리인 실수로 법정지상권 항변을 전혀 못하는 바람에 철거판결이 선고되고 그 후 그대로 확정되어버렸다.


너무 억울하기는 하지만, 민사소송법상 판결의 기판력 때문에 의뢰인이 더 이상 철거의무를 다툴 방법은 없다고 판단된다.


★ 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1다49981 판결[소유권이전등기절차이행]
확정판결의 기판력은 소송물로 주장된 법률관계의 존부에 관한 판단에 미치는 것이므로 동일한 당사자 사이에서 전소의 소송물과 동일한 소송물에 대한 후소를 제기하는 것은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어 허용될 수 없다. 또한 동일한 소송물에 대한 후소에서 전소 변론종결 이전에 존재하고 있던 공격방어방법을 주장하여 전소 확정판결에서 판단된 법률관계의 존부와 모순되는 판단을 구하는 것은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반하는 것이고, 전소에서 당사자가 그 공격방어방법을 알지 못하여 주장하지 못하였는지 나아가 그와 같이 알지 못한 데 과실이 있는지는 묻지 아니한다


때문에 의뢰인으로서는 법정지상권 항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부실변론을 한 변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제기를 염두에 두고 있다. 건물철거소송에서의 법적 방어 즉 항변은, 시효취득, 권리남용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법정지상권이 성립하는지에 대한 검토는 다른 어떤 것 보다도 매우 기본일 수 있다. 따라서, 해당 변호사의 손해배상책임은 인정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판단된다.


한편, 이 문제와 별개로 의뢰인의 케이스는 철거 집행과정에서의 쟁점도 간단치 않았다. 원칙적으로 철거대상 건물에 건물주 이외의 별도 점유자(예를 들어, 세입자)가 있을 경우에는 철거집행을 위해 반드시 점유자에 대한 채무명의(퇴거판결 등)가 필요하다. 철거집행절차가 진행 중인 해당 건물에는 세입자가 영업 중이라, 그 세입자에 대해서 당연히 퇴거판결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퇴거판결은 없는 상태였다. 퇴거판결 없이 어떻게 철거집행이 진행 중일까 싶어 확인결과, 이 세입자는 과거 건물주에 대해 진행된 건물에 대한 점유이전금지가처분집행 이후의 점유자로 처리되고 있었다. 점유이전금지가처분 집행 이후의 점유자로 승계집행문부여를 통해 철거집행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건물주를 상대로 한 “건물”에 대한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이 가능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런 가처분의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만약 이런 가처분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의뢰인의 경우처럼 철거판결 이후에 세입자를 임의로 넣어 철거집행을 방해할 수도 있는 것은 물론, 이런 세입자를 염두에 두고 퇴거소송과 점유이전금지가처분 집행을 마친 다음 철거집행을 하는 단계에서, 기존 건물점유자를 내보낸 후 건물주가 새로운 세입자를 들여 점유자를 변경할 경우, 기존 점유자에 대해 이루어진 점유이전금지가처분집행이 무력화될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점유자에 대한 명도를 위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별도의 (퇴거)소송을 다시 할 수 밖에 없게 되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결국 건물철거집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 대법원 2015. 1. 29. 선고 2012다111630 판결 [승계집행문부여에대한이의]
☞ 기존 점유자를 상대로 한 점유이전금지가처분집행 이후 새롭게 점유하게 된 원고를 상대로 한 승계집행문부여에 대해 이의의 소가 제기된 사안


【판결요지】
어떤 부동산에 대하여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이 집행된 이후에 제3자가 가처분채무자의 점유를 침탈하는 등의 방법으로 가처분채무자를 통하지 아니하고 부동산에 대한 점유를 취득한 것이라면, 설령 점유를 취득할 당시에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이 집행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가처분채무자로부터 점유를 승계받고도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의 효력이 미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하여 채무자와 통모하여 점유를 침탈한 것처럼 가장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제3자를 민사집행법 제31조 제1항에서 정한 ‘채무자의 승계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경과한 후에 제출된 준비서면의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를 판단한다.
1. 승계집행문은 판결에 표시된 채무자의 포괄승계인이나 그 판결에 기한 채무를 특정하여 승계한 자에 대한 집행을 위하여 부여하는 것인데, 이와 같은 강제집행절차에 있어서는 권리관계의 공권적인 확정 및 그 신속·확실한 실현을 도모하기 위하여 절차의 명확·안정을 중시하여야 하므로, 그 기초되는 채무가 판결에 표시된 채무자 이외의 자가 실질적으로 부담하여야 하는 채무라거나 그 채무가 발생하는 기초적인 권리관계가 판결에 표시된 채무자 이외의 자에게 승계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자가 판결에 표시된 채무자의 포괄승계인이거나 그 판결상의 채무 자체를 특정하여 승계하지 아니한 이상, 그 자에 대하여 새로이 그 채무의 이행을 소구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판결에 표시된 채무자에 대한 판결의 기판력 및 집행력의 범위를 그 채무자 이외의 자에게 확장하여 승계집행문을 부여할 수는 없으며(대법원 2002. 10. 11. 선고 2002다43851 판결 등 참조), 승계집행문 부여에 대한 이의의 소에서 승계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채권자인 피고에게 있다.
한편 어떤 부동산에 대하여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이 집행된 이후에 제3자가 가처분채무자의 점유를 침탈하는 등의 방법으로 가처분채무자를 통하지 아니하고 그 부동산에 대한 점유를 취득한 것이라면, 설령 그 점유를 취득할 당시에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이 집행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가처분채무자로부터 점유를 승계받고도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의 효력이 미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하여 채무자와 통모하여 점유를 침탈한 것처럼 가장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제3자를 민사집행법 제31조 제1항에 정한 ‘채무자의 승계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2.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원고의 이 사건 점유 부분에 대한 점유 경위 등에 관한 별다른 설시 없이, 점유이전금지가처분결정이 있었고 이후 원고가 주식회사 대경에버그린(이하 ‘채무자 회사’라고 한다) 등의 점유 부분을 승계하여 점유하고 있으므로 원고에게 독자적인 점유 권원이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는 위 점유이전금지가처분 이후 가처분채무자들로부터 이 사건 점유 부분을 승계한 자로서 승계집행문의 부여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가처분채무자들로부터 이 사건 점유 부분을 이전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을 강제로 쫓아내고 이 사건 점유 부분을 점유하기 시작한 것이어서 이 사건 점유 부분의 특정승계인이 아니므로 승계집행문에 기한 집행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원고의 주장에 대하여는, 점유이전금지가처분결정 이후에 그 사실을 알면서 가처분채무자인 채무자 회사 등의 점유를 박탈하고 점유를 그대로 계속한 이상 그 방법이 매매 등의 정상적인 점유 이전 형식이 아니라도 점유승계인이 아니라고 볼 수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3. 그러나 앞서 본 법리 및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이러한 원심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이 집행되어 공시된 후 해당 부동산에 대한 점유가 이전되었다고 하더라도, 가처분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채무자가 여전히 점유자의 지위에 있는 것으로 취급되는 것일 뿐, 소유자에 의한 처분 자체를 금지하거나 점유를 취득한 제3자에 대하여 곧바로 가처분의 효력이 미치는 것은 아니다.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의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집행력 있는 본안판결을 집행권원으로 하여 제3자에 대하여 강제집행을 하려면 그 제3자가 민사집행법 제31조 제1항에 정한 채무자의 승계인이어야 한다.
그런데 제3자가 법률의 규정 또는 법률행위에 기하여 가처분채무자로부터 점유를 이전받지 아니하고 채무자의 점유를 불법으로 침탈한 경우라면, 그를 채무자의 승계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이 집행된 이후에 해당 부동산에 대한 점유를 취득한 제3자는 그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의 집행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고 가처분채권자로 하여금 별소를 제기하도록 하는 것이 번거로운 면은 있지만, 판결의 기판력 및 집행력의 범위를 확장할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령의 근거 없이 채무자의 승계인 이외의 자에게 승계집행문을 부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채무자와 제3자가 통모하여 점유의 침탈을 가장하였다거나, 제3자가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의 집행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런 실체법상의 권원 없이 해당 부동산의 점유를 침탈한 경우라면 채권자가 그러한 점을 소명하여 제3자를 상대로 해당 부동산의 인도단행가처분을 구하는 등의 다른 구제절차로 보호받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원고가 실제로 이 사건 점유 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것인지, 만일 점유하고 있다면 점유의 원인이 된 법률관계와 점유의 경위, 원고와 채무자 회사 등의 관계 등을 심리하여 원고가 채무자 회사 등의 이 사건 점유 부분에 대한 점유를 승계한 것인지를 판단하였어야 한다.
그럼에도 원심은 이에 관하여 제대로 심리·판단하지 아니한 채 원고가 민사집행법 제31조 제1항의 채무자의 승계인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는바,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승계집행문의 부여 대상인 채무자의 승계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이런 점을 의식해서, 상대방은 건물주인 의뢰인에 대해 건물에 대한 점유이전금지가처분신청까지 제기해서 이미 집행이 된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처분은 실무상 적절치 않을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철거청구와 관련된 법리를 개괄적으로 정리해보기로 한다. 건물철거청구권을 가지는 토지주는 건물주에 대해 건물철거청구, 토지인도청구권을, 건물주 아닌 세입자와 같은 별도의 건물점유자에 대해서는 건물퇴거청구권을 가지고, 그에 따른 보전소송은 건물주를 상대로 건물에 대한 처분금지가처분, 토지에 대한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이, 건물 점유자 상대로 건물에 대한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이 가능할 수 있다. 결국, 건물주를 상대로 한 건물에 대한 점유이전가처분결정 법리에 맞지 않는 이례적인 결정이었던 셈이다. 이 점에 관해, 2019. 10. 현재 대법원 판결은 없고, 하급심 판결은 엇갈리고 있다. 이를 허용하는 판결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서울북부지방법원 2016라1156), 불허하는 판결이 대부분이다(춘천지방법원 2015라120호, 제주지방법원 2018라27호, 청주지방법원2019라1137호 각 결정 등). 피보전권리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피보전권리로 퇴거청구권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대법원 판례상 인정되지 않는다.


★ 대법원 1999. 7. 9. 선고 98다57457, 57464 판결
건물의 소유자가 그 건물의 소유를 통하여 타인 소유의 토지를 점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토지 소유자로서는 그 건물의 철거와 그 대지 부분의 인도를 청구할 수 있을 뿐, 자기 소유의 건물을 점유하고 있는 자에 대하여 그 건물에서 퇴거할 것을 청구할 수는 없다


그 다음은, 건물에 대한 철거청구권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이 역시 적절치 않다.


★ 청주지방법원2019라1137호 결정
--나아가 항고인이 본안의 소에서 주장하고 있는 이 사건 건물에 대한 철거청구권을 이 사건 신청의 피보전권리로 볼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하여 보건대, 타인의 토지 위의 건물로 인하여 그 토지의 소유권이 침해되는 경우에 그 건물을 철거할 의무가 있는 사람은 그 건물의 소유자나 그 건물이 미등기건물일 때에는 이를 매수하여 법률상 또는 사실상 처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대법원 1987. 11. 24. 선고 87다카257, 258 판결 등 참조), 한편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은 그 목적물의 점유이전을 금지하는 것이어서 점유가 이전되었을 때에는 가처분채무자는 가처분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여전히 그 점유자의 지위에 있는 것일 뿐 목적물의 처분이 금지 또는 제한되는 것은 아니므로, 따라서 토지의 소유권에 기초한 건물철거 및 토지인도청구권은 건물 소유자에 대한 건물처분금지가처분의 피보전권리가 될 수 있을 뿐이고, 건물 소유자에 대한 건물점유이전금지가처분의 피보전권리가 될 수 없다--


이런 가처분을 허용한 서울북부지방법원 2016라1156 부동산점유이전금지가처분 재판부는, “--채권자가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채무자가 이 사건 토지 및 건물을 점유(채무자는 이 사건 건물의 소유자임과 동시에 이 사건 건물에서 자동차공업사를 운영하며 이를 점유하고 있다)하고 있다고 충분히 소명되고, 앞서 본 바와 같이 채권자는 이 사건 토지의 소유자로서 소유권에 기한 방해배제청구권의 행사로 이 사건 토지의 인도와 더불어 이 사건 건물에 대한 철거청구 및 이 사건 건물의 점유자에게 퇴거를 구할 수 있다”고 판시하여, 토지소유권에 기한 방해배제청구권의 일환으로 건물 소유자이자 점유자에 대한 퇴거청구가 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건물주에 대한 퇴거청구권이 없다고 본 대법원 판결에 정면적으로 배치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건물을 직접 점유하는 건물주에 대한 퇴거청구를 허용치 않는 현행 대법원 판례상, 이런 가처분은 허용되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만약, 이런 가처분이 가능하게 되면, 이 사건 의뢰인의 경우처럼 건물에 대한 점유이전금지가처분집행 이후의 점유자에 대해 승계집행문부여가 가능할 수 있게 되는데, 건물주에 대한 판결은 건물철거 및 토지인도청구권에 불과한데 이를 근거로 건물의 새로운 점유자에 대한 퇴거집행을 위한 승계집행을 허용하는 꼴이 되면서 논리모순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비록 현행 제도가 철거집행을 앞두고 이루어지는 고의적인 건물 점유자 교체 문제에 유효적절하게 대응하기에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향후 제도개선으로 보완되어야 할 문제이고, 현실적으로는 단행가처분 등의 방법으로 대처해나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대법원 2015. 1. 29. 선고 2012다111630 판결 [승계집행문부여에대한이의]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이 집행된 이후에 해당 부동산에 대한 점유를 취득한 제3자는 그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의 집행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고 가처분채권자로 하여금 별소를 제기하도록 하는 것이 번거로운 면은 있지만, 판결의 기판력 및 집행력의 범위를 확장할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령의 근거 없이 채무자의 승계인 이외의 자에게 승계집행문을 부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채무자와 제3자가 통모하여 점유의 침탈을 가장하였다거나, 제3자가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의 집행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런 실체법상의 권원 없이 해당 부동산의 점유를 침탈한 경우라면 채권자가 그러한 점을 소명하여 제3자를 상대로 해당 부동산의 인도단행가처분을 구하는 등의 다른 구제절차로 보호받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결국, 이런 논리로 건물주에 대한 건물 점유이전가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이의신청을 제기하면서, 별도로 집행에 대한 이의신청절차를 통해 부당하게 이루어지는 집행절차를 방어하는 것으로 자문하였다. 뒤늦게나마 제대로 된 법률자문을 받게 되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고 있지만, 철거재판 당시에 법정지상권 항변으로 막았으면 간단하게 해결되었을 문제가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분쟁으로 이어지게 된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상-


※ 칼럼에서 인용된 판결의 전문은 최광석 변호사의 홈페이지인 www.lawtis.com 에서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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