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호 칼럼] 할 일을 자꾸 미루는 이유
중요한 일을 피하기 위해 밑도 끝도 없이 쓸데없는 일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포털 사이트를 열어 관련 없는 뉴스를 클릭하거나 재미있는 영상을 찾아 유튜브를 들락거린다. 전혀 필요하지도 않은 쇼핑몰을 둘러보기도 하고, 전화나 문자가 온 것도 아닌데 수시로 핸드폰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거나 일을 미루며 꾸물거리는 것을 ‘procrastination’이라고 한다. 학술용어로 ‘지연행동’이라고 하는데, 쉽게 ‘꾸물거림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적당히 여유 부리는 수준이 아니라 불필요하게 계속 미뤄서 결국 나쁜 결과를 얻는데도 이 패턴을 버리지 못한다면, 지연행동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미루는 습관, 이 지연행동 때문에 의사결정 붕괴, 자의식 저하, 우울과 무기력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하루 평균 1시간 50분을 꾸물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일주일로 따지면 12시간 53분이다. OECD 평균 수명인 81세까지 산다고 가정할 경우 꾸물거리며 보내는 시간이 무려 6년 2개월이나 된다. 이처럼 지연행동은 일상 속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파고든 탓에 그 심각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꽤나 흔한 현상임에도 심리학자들이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렇게 할 일을 미루며 꾸물거리는 걸까? 꾸물거리는 이유가 꼭 게을러서거나, 일을 못해서가 아니다. 내면의 불안과 스트레스 때문이다. 자신을 입증해야 하는데서 오는 불안을 느낄 때 두려운 결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찾게 되고 그 중 하나가 꾸물거리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시카고 드폴 대학의 조 페라리(Joe Ferrari) 교수와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의 심리학자인 다이앤 타이스(Diane Tice)의 연구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별 의미 없고 그저 재미로 시험을 치르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자신의 능력을 평가하는 의미 있는 시험을 치르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시험 준비를 더욱 미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 시험이 중요하지 않다면 어떨까? 그들은 일을 미루지 않는 사람과 별다를 것 없이 행동했다. 즉 그 결과가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절박하게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 로버트 행크스(robert hanks)는 “나는 거의 항상 겁먹고 슬퍼하기 때문에 일을 미룬다.”고 말한다.

이런 미루기의 역사는 실로 유구하다. 르네상스의 거장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자신만만하게 약속했다가 낙심하고 미루기를 반복하는데 선수였다. 그는 여유가 있을 때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나서는 한 번도 실행에 옮긴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빈치의 전기를 쓴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다빈치는 많은 일을 늘어 놓았지만 자신이 상상한 것을 그대로 구현할 완벽한 기술이 자신에게 없다.”며 완벽주의가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특출난 인물도 해야 할 일을 미룬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꽤 위로가 된다. 그런데 다빈치의 사례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다. 바로 ‘완벽주의’이다. 우리는 완벽주의를 마치 위대함을 드러내는 명예의 훈장인 듯 생각하고 추종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것이 미루기를 불러오는 강력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완벽주의는 다음의 세 가지 경로로 지연행동을 야기한다. 첫 번째는 일을 완벽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것이다. 게임에서 질 것 같으면 아예 게임을 시작하지 않는 등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이고 완벽한 결말’에서 벗어나느니 아예 판을 엎어버리겠다고 하는 다소 극단적인 행동을 보인다. 모 아니면 도인 경우다.

두 번째는 일을 완벽하게 해낼 때까지 계속 붙잡고 있느라 일을 제때 마무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림이 마음에 들 때까지 덫칠에 덫칠을 반복해서 처음 스케치와는 완전히 다른 그림이 되어버렸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처음 버전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또다시 수정의 수정을 반복하는 경우다.

마지막으로 스트레스와 에너지 고갈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의 경우 바람직한 결과에 대한 생각이 너무 확고한 탓에, 거기서 하나라도 달라지면 쉽게 좌절하고 불만족스러움을 느낀다. 본인만 느끼는 그 작은 차이를 메꾸는데 전력을 다하고 그 과정에서 큰 스트레스와 에너지 소모를 겪으며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스테디셀러 《앵무새 죽이기》를 쓴 하퍼 리가 그렇다. 무명작가의 첫 작품이었음에도, 출간되자마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초판 발행 부수가 200만 부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고, 출간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34살의 젊은 작가는 차기작을 준비했지만, 압박감에 시달리다 8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결국 아무것도 출간하지 못했다.

일상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미루는 행동은 무척 사소한 일처럼 여겨지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것이 실패나 비난에 대한 두려움, 불안감에 맞서는 방어책으로 쓰이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런 행동 패턴이 반복된다면 자신이 무엇으로부터 회피하고 싶어하는지 관찰해보길 권한다.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족함을 직면하는 것이 미루는 습관과 완벽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열쇠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 삶의 어떤 부분은 미루기 일쑤라 해도 여전히 당신은 장점도 많고 성취해내는 것도 많은 존재다. 그러니 지금 시작하고, 나중에 완벽해져라. 또 다른 하퍼 리로 남지 않도록 말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경영평론가(ijeong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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