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판 브레이브걸스' 곽보미 우승이 주는 울림
“매년 시드를 걱정하며 경기했는데, 이제 2년간 시드 걱정을 덜어 정말 기쁩니다.”

지난 9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교촌 허니 레이디스오픈에서 우승한 직후 곽보미(29)가 밝힌 소감은 소박했지만 큰 울림을 남겼습니다. 프로 데뷔 11년차, 정규투어 86번째 대회에서 거둔 첫 우승이었습니다.

이번 대회가 시작될 때 우승 후보로 곽보미를 주목한 이들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지난해 상금 60위인 곽보미는 올해 시드를 턱걸이로 따냈습니다. 올 시즌 출전한 세 번의 경기에서도 모두 커트 통과에 실패했죠.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이변을 만들어냈습니다. 첫날 공동 2위, 둘째날 단독 1위를 거쳐 마지막 라운드에서 심적 부담을 떨쳐내고 끝내 우승컵을 품에 안았습니다.

곽보미는 ‘롤린’으로 가요계 역주행 신화를 쓰고 있는 그룹 ‘브레이브 걸스’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브레이브 걸스 역시 데뷔 10년간 이렇다 할 히트곡을 내지 못해 ‘여기까지 하자’며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서른이라는 나이도 멤버들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자격증을 따고, 취업을 준비하던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군부대 공연들을 편집한 영상이 유튜브에서 인기를 얻으며 새롭게 주목받게 됐죠. 멤버들의 탄탄한 기본기와 ‘운전만 해’ 등 숨은 곡들은 ‘차트 역주행’을 정주행으로 만들었습니다. 대중이 알아주지 않던 때도 끊임없이 무대를 찾고, 좋은 곡을 선보이며 내공을 쌓은 덕분에 행운을 기회로 만든 것이죠.

이번 곽보미의 우승에서도 기본기의 힘이 드러났습니다. 그는 “올해까지만 해보고 접자”고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서른이 주는 부담감, ‘무관’의 설움은 골프를 즐길 수 없게 했을 겁니다.

최종라운드 18번홀(파5)은 우승컵을 사이에 두고 곽보미와 필드가 벌이는 한판의 ‘밀당’ 같았습니다. 티샷 미스로 도로 위를 굴러간 공이 운좋게 구제받았지만 두 번째 샷이 벙커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말았죠. 온 그린을 하려면 벙커를 가로질러 넘겨야 하는 상황. 그는 침착하게 공을 띄웠고 다행히 3온에 성공했으며, 파로 마무리해 우승을 확정지었죠. 그는 “앞선 대회에서 웨지 샷에서 기회를 놓친 적이 많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그날 벙커를 가로지르는 샷은 나오기 힘들었을 겁니다.

한국 여자골프는 단연 세계 최강입니다. 고진영, 박인비, 김세영이 세계랭킹 1~3위를 장악하고 있고 김효주, 이정은, 박성현 등도 세계 무대를 호령하고 있죠. KLPGA에서도 쟁쟁한 스타들이 수준 높은 경기를 펼치는 것은 곽보미처럼 숨은 보석 같은 선수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겁니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프로의 세계.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신의 길을 접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긴 시간을 견뎌 우승컵을 안은 곽보미와 구슬땀을 흘리며 샷을 다듬고 있을 수많은 선수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버텨줘서 고마워요.”

조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