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드에 들어가서 전반 9홀의 성적이 놀랍게도 42타를 기록해 겨드랑이에 바람소리를 내면서 기고만장하였는데,후반 9홀의 타수가 어느새 50타를 훌쩍 넘어 60타 이상을 기록하면서 들숨 날숨이 고르지 못하게 되었다.

체력의 배분이 눈에 띄게 서툴렀던 것도 아니고,동료 골퍼들이나 캐디로부터 면박을 당해 기분을 잡쳤던 것도 아닌데,도대체 전·후반의 성적이 이토록 차이가 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게다가 가까스로 1백타를 깼다고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우쭐대고 다녔는데,이게 무슨 망신인가.

1백타를 깨고 나서 나타나는 뚜렷한 징후 몇 가지가 있었다.

예를 들면,지난날처럼 대여섯 개의 공을 잃어버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

홀아웃을 할 때마다 일일이 게임카드를 기록하지 않아도 자신의 타수를 손쉽게 암기하게 되었다는 것.

숲속을 헤매지 않아서 독립군이라는 별호를 떼어 버리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또 다시 1백타를 넘게 되면,어떤 결말이 오는 것일까.

그것을 생각하니 아찔한 기분이었다.

골프장에서 돌아와 경기 내용을 분석해서 나름대로 얻은 결론은 한마디로 과욕 탓이었다.

전반 42타라는 기록이 내 자신을 오만의 최면으로 몰아붙인 것이었다.

나도 뭔가 되겠다 싶으면서,나도 모르게 욕심이 기량보다 앞서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침 임대규 변호사가 팩스로 보내준 골프 인생이라는 노랫말에 그 날 저지른 실수를 정확하게 지적했던 대목이 있어 소개한다.

''핸디캡을 줄이려면 서두르지 말게나.

열 여덟개 기회 있고 일흔 두번 기대 있네.조금 더 내 보낼까 팔과 몸에 힘을 주니,공이란 놈 잘 가다가 엉뚱한 데로 빠지누나.

상쾌하게 날아가는 공을 한 번 바라볼까.

머리 한 번 번쩍 드니,생크 볼이 나는구나.

한 번 실수 두 번 실수 누구라고 아니 하나.

전 홀에서 잃은 것을 지금 당장 찾으려고,욕심을 내어서는 공이 먼저 알고 도망가네.

항우장사 실패하여 유방에게 잡혔듯이,동탁이가 실패하여 여포에게 죽었듯이,과욕으로 인한 실패는 실수 아닌 업보라네''

김주영 소설가 jykim@paradis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