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소당한 사례가 처음으로 나왔다. 지난해 강원 양양군에서 헬기 추락사고로 숨진 탑승자 유족들이 관할 지자체 수장들에게 책임을 물은 것이다. 경기 성남시에선 정자교 붕괴사고의 책임을 시장에게 물을 수 있느냐를 두고 진상 파악이 한창이다. ‘중대재해법 공포’가 기업을 넘어 지자체까지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헬기사고 책임 논란 휘말린 지자체장

'중대재해법 공포' 지자체장까지 덮쳤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양양 헬기 추락사고’ 유족 측 법률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LKB파트너스는 최근 이병선 속초시장, 함명준 고성군수, 김진하 양양군수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고용노동부에 고소했다. 중대재해법 1장 2조는 사업주뿐만 아니라 중앙행정기관의 장, 지자체장, 지방공기업 의장 등도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건은 지난해 11월 27일 산불 예방을 위해 순찰 중이던 헬기 한 대가 갑자기 야산으로 추락해 탑승자 다섯 명이 사망한 사고다. 헬기의 비행계획서에는 기장과 정비사 두 명만 탑승했다고 신고됐으나 실제 탑승 인원은 민간인 여성 두 명과 헬기회사 직원 한 명을 포함해 총 다섯 명이었다.

유족 측은 “추락한 헬기가 1975년 제작돼 각별한 관리가 필요했음에도 헬기 운영회사가 비행시간을 실제보다 짧게 기록하거나 수명이 정해진 장비의 사용시간을 조작했다”며 “산불 진화·예방에 쓸 헬기를 공동으로 임차해 실질적인 지배관리권을 가지고 있던 속초시와 고성군, 양양군이 안전관리를 게을리해 피해자들을 숨지게 했다”고 주장했다. 유족 측은 헬기 운영회사가 인가받지 않은 부품을 사용하고 피해자들의 휴일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정자교 붕괴’ 1호 중대시민재해 될 수도

이번 고소 건은 그동안 기업의 일로만 여겨졌던 중대재해법이 지자체에도 실체적 위협으로 다가왔다는 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지난달 25일 경기남부경찰청은 정자교 붕괴사고와 관련해 분당구 교량 관리부서 직원 여섯 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교량 점검업체 세 곳의 대표 세 명은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이와 함께 신상진 성남시장에게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정자교는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있는 다리로 지난달 5일 양쪽 가장자리 보행로 중 한쪽이 무너졌다. 이 사고로 다리를 지나던 30대 후반 여성 한 명이 숨지고, 30대 남성 한 명이 다쳤다. 중대재해법에 따르면 연장(총길이)이 100m 이상인 도로교량에서 사고가 나 한 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나오면 중대시민재해 적용이 가능하다. 정자교의 총길이는 108m다. 성남시가 안전관리 확보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다리가 무너졌다는 점이 입증되면 신 시장의 중대재해법 위반을 두고 본격적인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

아직 국내에선 중대시민재해로 규정돼 조사가 이뤄진 사례는 없다. 다만 불특정 다수의 시민이 겪는 다양한 형태의 사고가 중대시민재해로 인정되기 때문에 언제든 지자체장이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진현일 법무법인 세종 중대재해대응센터장은 “고소를 통해 적극적으로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를 수사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왔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며 “비슷한 고소 사례가 잇따른다면 지자체의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