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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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남영동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는 박모씨(55)는 최근 큰 결단을 내렸다. 학생들에게 5년 동안 해주던 주말 아침 식사를 차려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 박씨는 “치솟는 난방비와 물가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하숙집을 언제까지 운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치솟는 물가 감당 안돼요"…사라지는 '응팔 하숙'
대학가의 상징이던 하숙집이 사라지고 있다. 치솟는 물가에 전기료·난방비까지 오르면서 학생들을 받아도 수익이 나지 않아서다.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비대면·개인주의 문화에 익숙한 신입생들은 하숙집보다 원룸 등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5일 한국경제신문이 주요 대학가 하숙집을 조사한 결과 서울 신촌 43곳, 건국대 3곳, 흑석동 2곳이 남아 있었다. 혜화동 등 일부 대학가에는 하숙집이 한 곳도 없었다. 신촌역 인근에서 20년간 부동산을 운영한 김모씨(58)는 “20년 전과 비교하면 서울 지역 하숙집이 90% 정도 없어진 것 같다”며 “과거에는 하숙집을 찾는 학생과 부모님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하숙집 월세는 원룸과 비교해 저렴한 편이다. 3.3㎡(1평) 남짓한 방 한 칸 월세는 40만원대에 형성돼 있다. 매일 아침, 저녁에 식사까지 제공해준다는 점이 학생들에게 인기 요소로 꼽히곤 했다. 신촌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는 남모씨(61)는 “과거에는 좋은 하숙집을 먼저 선점하기 위해 대학 합격 발표가 나기 전부터 문의가 오기도 했다”며 “요즘에는 신입생이 거의 없고 취업준비생이나 복학생이 하숙집을 찾는다”고 전했다.

하숙집 주인들은 고물가로 인한 운영 어려움을 호소한다. 흑석동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는 한모씨(55)는 “월 30만~40만원대의 월세를 받아선 이제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비대면, 개인주의 문화에 익숙한 신입생들이 단체 생활을 꺼려 하숙집을 기피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학년과 취준생은 공동체 문화에 호의적이고 취직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우선으로 고려하지만 저학년 사이에선 여러 낯선 사람과 어울리기 꺼리고 어색해하는 문화가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최근엔 부동산에서도 하숙을 잘 취급하지 않는다. 주요 대학가에 있는 부동산 20곳 가운데 단 한 곳에서만 하숙집을 소개해주고 있었다.

원종환/권용훈 기자 won04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