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임금피크제와 고령자고용법의 충돌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관한 첫 판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인 셈이다. 대법원은 고령자고용법을 강행 규정으로 해석했다. 노사 합의인 임금피크제에 비해 고령자고용법이 우선한다고 봤다.

고령자고용법 4조의 4-1항 규정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에 따른 차별은 위법이라고 보고 있다. 대법원은 해당 규정에 나오는 ‘합리성’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정년 등을 늘리기 위해 도입됐는지(정당성) △연령에 따라 차등 임금을 지급할 이유가 있는 직업인지(필요성) △실질적 임금 삭감의 폭이나 기간이 정당한지 △임금 삭감에 준하는 업무량·강도의 저감이 있었는지 △감액 재원이 도입 목적에 사용됐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이런 합리적 이유 없이 단순히 연령을 기준으로 근로자의 임금을 ‘획일적으로’ 삭감하는 것은 차별이며, 위법하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의 피고인 B연구원은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기존 정년을 늘리지도 않았으며, 임금피크제 시행에 따라 55세 이상 노동자의 업무 내용이 변경되거나 목표 수준이 낮게 설정돼 업무량이 감소했다는 점을 입증하지도 못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인건비 부담을 완화하고 실적 달성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의 임금피크제 도입은 55세 이상 근로자 임금 삭감의 정당성으로 인정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강세영 광장 변호사는 “이번에는 절차 문제와 상관없이 내용에 따라 무효로 될 수 있다는 판결로 그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법원은 이번 사건이 모든 임금피크제 도입 기업에 일괄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임금피크제의 효력은 위와 같은 판단 기준에 따라 개별 사안, 사업장별로 달리 판단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년을 늘리는 조건으로 도입한 임금피크제도도 이런 부분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을 근거로 근로자들의 임금 청구 소송이 늘어날 경우, 임금 청구 기간도 쟁점이 된다. 민법상 임금채권의 소멸시효는 3년이다. 재판부가 단순 임금 청구 소송으로 판단하면 현시점으로부터 3년간 줄어든 피해 임금에 대해서만 보전을 요구할 수 있다. 고령자고용법 위반에 따른 불법행위가 인정되면 소멸시효가 달라진다. 이 경우 손해배상의 소멸시효가 적용돼 10년까지 청구 가능 기간이 늘어날 수 있다. 법원이 어떤 소멸시효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기업 부담도 큰 차이가 날 것으로 보인다.

오현아/김진성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