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대한민국 고졸 인재 채용 엑스포’ > 자문회의가 지난 2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앞줄 왼쪽 세 번째),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네 번째), 김정호 한국경제신문 사장(다섯 번째) 등 참석자들이 고졸 인재 채용 엑스포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허문찬 기자
< ‘2022 대한민국 고졸 인재 채용 엑스포’ > 자문회의가 지난 2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앞줄 왼쪽 세 번째),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네 번째), 김정호 한국경제신문 사장(다섯 번째) 등 참석자들이 고졸 인재 채용 엑스포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허문찬 기자
대한민국 청년고용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등 직업계고 취업률이 2017년 50.6%에서 지난해 28.6%로 반 토막 났다. 올해 서울의 직업계고 3곳 중 2곳은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직업계고 부진 탓에 고졸 청년 고용률(63.5%)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32위로 최하위권으로 처졌다.

반면 25~34세 청년층의 고등교육(대학교육 이상) 이수율은 2020년 기준 69.8%로 OECD 1위다. 청년들의 취업난은 해소되지 않는데 ‘학력 인플레’만 나날이 치솟는 형국이다. 기업들은 필요한 인력을 채우지 못해 ‘일자리 미스매치’를 호소하고 있다.

청년고용 생태계 복원을 위한 해법을 찾기 위해 ‘2022 대한민국 고졸 인재 채용엑스포’ 자문위원이 지난 23일 한자리에 모였다. 교육계, 산업계, 정부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13명의 전문가는 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발족 회의에서 “일자리 미스매칭 문제를 해결하고 능력이 우대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고졸 인재 채용 확대가 필수”라며 정책 혁신과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디지털 인재 육성해야”

자문위원장을 맡은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우리 사회의 과도한 학력 중시 풍조로 인해 ‘학력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이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큰 낭비를 초래했다”며 “앞으로는 학력보다 능력이 있는 인재가 성공하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고졸 인재 채용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문위원들은 고졸 인재 취업을 확대하기 위해선 직업계고의 교과 과정이 4차 산업혁명 등 시대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호형 은행연합회 전무는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전국에 있는 은행 점포가 최근 5년간 1000여 개 줄어들 정도로 은행원을 채용하고자 하는 수요는 급격히 감소했지만, 우수한 디지털 역량을 보유한 인재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다”며 “고교 졸업 직후 은행에 취업하길 희망한다면 디지털 역량을 미리 함양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형우 마이다스아이티 회장 역시 “특성화고의 교육이 자동차 생산과 같은 전통적인 제조업에 특화된 경우가 많은데, 교과 과정을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인력을 배출한다면 고졸 실업과 학력 인플레 문제가 상당히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로교육 중3으로 앞당겨야

고교 취업 활성화를 위해선 정부의 제도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장동원 수도전기공업고 교장은 “한국 교육계에선 고3 학생들에 대한 진로교육만 있을 뿐, 중3 학생에 대한 진로교육은 없다”며 “직업계고와 인문계고를 선택하는 단계에 있는 중3 학생에 대해서도 진로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3 입장에서 가야 할 학교를 찾아줘야 막연하게 일반고와 대학에 가서 고학력 장기 실업자가 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누군가는 루저가 되고 위너가 되는 것으로 끝인데, 이를 중3 입장에서 인생을 바라보고 설계할 수 있도록 바꿔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조재희 한국폴리텍대 이사장은 “고졸 일자리를 확대하기 위해선 학력 단절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도록 취업 후에도 학업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마련해줘야 한다”며 “연금제도도 학업을 이어 나가려는 고졸 취업생들에게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했다.

고졸 취업과 직업계고 입학의 큰 걸림돌 중 하나로 꼽히는 학령인구 감소는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제안도 나왔다. 류장수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원장은 “대학에 입학하는 인원이 줄면서 콧대 높던 대학들이 고졸 인재의 평생학습 필요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인구구조 변화가 고졸 인재의 안정적인 일·학습 병행은 물론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대학들에 도움을 주는 일석이조의 기회 요인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직업계고 학생들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좋은 일자리를 얻고 평생에 걸쳐 다양한 학습 기회를 얻어 해당 분야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권창준 고용노동부 청년고용정책관은 “청년층의 구직 단념 문제가 심각한 만큼 구직 의욕을 촉진하고 필요한 경우 심리 상담도 해주는 정책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지식은 학교에서 길러지지만 기술은 기업에서 만들어진다”며 “미래세대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학교와 기업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블라인드 채용 방식의 실효성 논란

"학력보다 능력…일자리 미스매칭, 고졸 인재 채용으로 풀자"
고졸 인재 채용 활성화가 지역 균형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강한승 쿠팡 대표는 “쿠팡은 전국 각지에서 채용된 고졸 인재가 해당 지역에서 관리직으로 승진하는 인사(人事) 트랙을 운영하고 있는데 소멸하고 있는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있다”며 “정부가 지방에서의 고졸 일자리 창출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을 만들어주면 기업도 고졸 인재 채용을 더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용석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진흥정책관은 “핵심 인력이 장기 재직하는 문화가 확산하는 게 중요하다”며 “내일채움공제와 같은 각종 공제 제도를 고도화하면서 청년들의 장기 재직 문화 형성에 힘쓰겠다”고 했다.

정윤모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은 “고졸 인재 한 명 한 명이 원하는 구직 수요와 기업의 구인 수요를 잘 매칭해주는 노력도 필요하다”며 “중기중앙회는 인공지능(AI) 방식으로 청년과 기업을 연계해주는 시스템을 조만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졸 인재 채용 확대 방안으로는 학력과 무관한 블라인드 채용 방식과 고졸자들끼리만 경쟁하는 별도 채용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형우 대표는 “11개 기업의 직원 2500명을 대상으로 학력과 업무능력 사이의 관계를 분석해본 결과 상관관계가 0점대 수준으로 나왔다”며 “이는 이력서 앞에 선풍기를 틀어 멀리 날아간 순서대로 업무능력을 평가하는 것과 같은 결과”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고졸 인재를 확대하기 위해선 블라인드 채용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김형일 기업은행 부행장은 그러나 “기업은행이 2017년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한 결과 고졸 채용 인원이 ‘0’명이었다”며 “고졸 인재의 역량과 화합 능력이 부족하지 않은 만큼 고졸 인재 채용을 위해선 대졸 채용과 구분된 별도의 채용 전형을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진/최만수/최세영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