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여 개 주얼리 매장이 몰려 있는 서울 남대문시장 액세서리 도매상가 1~2층. 개별 점포 면적은 3.3㎡ 남짓에 불과하지만, 국내 패션 주얼리 대부분이 이곳을 거쳐 판매되는 ‘주얼리의 메카’다.

22일 점심시간 무렵 찾은 이곳은 군데군데 ‘임대 문의’ 딱지가 붙어 있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이었다면 1주일 중 가장 바쁠 시간대였을 오전 11시~오후 1시, 잘나가는 점포에도 손님이 3~4명에 불과할 정도로 한산했다. 남대문에서 10여년간 주얼리 상점을 운영했다는 한 상인은 “통상 봄은 연중 가장 손님이 많은 계절적 성수기”라며 “지금은 거리두기 규제 해제까지 겹쳤는데도 손님이 없다”고 한숨을 지었다.

콧대 높던 상인들, 플랫폼으로

코로나19 사태가 2년여간 이어지면서 패션 도매시장의 대명사인 동대문과 남대문시장은 모두 치명적 타격을 받았다. 장기간 이어진 ‘매출 절벽’을 견디지 못하고 시장을 떠난 상인도 많다.

"밤시장 없애자"…플랫폼으로 간 동대문 MZ상인들
이런 상황 속에 시장 상인들은 생존을 위해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 수년 새 유입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상인들이 변화를 주도하는 주역이다.

가장 눈에 띄는 흐름은 e커머스가 대세로 자리 잡아간다는 점이다. 2018년 무렵 각각 동대문과 남대문에 도입된 ‘신상마켓’, ‘헤이도매’는 거래액과 입점업체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의류를 주로 취급하는 신상마켓의 경우 거래액이 2018년 2549억원에서 지난해 5723억원으로 124.5% 불어났다. 동대문 전체 도매점포 1만1000곳 가운데 80%가 이 서비스를 이용 중이다. 패션 잡화를 다루는 헤이도매는 남대문 매장 1200여 개 중 320여 곳이 활용하고 있다.

“4~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도 못 했던 흐름”이라는 게 시장 상인들의 공통된 얘기다. 동대문의 한 상인은 “도매시장에서는 디자인이 도용되는 일이 다반사여서 플랫폼이나 인터넷에서 취급하는 상품을 절대 공개하지 않는 상품이 상당수였다”며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도매시장을 찾아오는 사람이 급감하면서 위기감을 느낀 상인들이 생각을 바꿨다”고 말했다.

○수출 겨냥한 상인도 늘어

남대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곳 주얼리 매장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8년에 1500여 곳이 영업했으나 3년 만에 1200여 개로 300여 곳(20%)이 사라졌다.

남대문 한 상인은 “2016년 중국의 한한령으로 바이어들이 한국에 입국하지 못하면서 어려움이 이어지던 와중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져 쐐기를 박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동대문에는 신상마켓과 ‘링크샵스’, 남대문에는 헤이도매와 ‘남도마켓’ 등 기업 간 거래(B2B) 플랫폼이 잇따라 생기는 추세다. B2B 플랫폼은 소규모 주문이 가능하도록 관련 서비스를 제공해 도매상들이 물량을 대규모로 떼어가던 동·남대문의 거래 관행에도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해 본격적인 수출 확대를 준비 중인 젊은 상인도 많다. 박정관 헤이도매 대표는 “K콘텐츠 인기를 등에 업고 내수시장보다 중국·대만·홍콩을 염두에 두고 사업하는 상인이 늘었다”며 “시간이 지나면 국내보다 해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바뀌는 패션 도매시장 문화

워라밸을 중시하는 MZ 도매상들은 1년 사시사철 일했던 선배 상인들이 꿈도 못 꿨던 방향으로 시장 문화까지 바꿀 기세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후 두 시장에서 주 5일 근로제가 속속 도입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동대문시장 일각에서는 ‘밤시장’을 없애자는 논의까지 시작됐다. 밤시장은 전날 밤 11시 전국 곳곳에서 상인들이 버스로 모여들어 쇼핑을 끝낸 뒤 다음날 새벽에 돌아가는, 동·남대문을 상징하던 문화다. 박중현 동대문상가 회장은 “젊은 상인들이 유입되면서 워라밸을 중시하는 분위기로 시장이 바뀌고 있다”고 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