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변호인 선정 안 한 원심 위법…대법 "다시 재판해야"
대법원이 형편이 어려운 피고인의 국선 변호인 선정 요청을 기각하고 유죄 선고를 한 2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정보통신망법 위반(불안감 유발 문언 등 반복 전송)과 협박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8년 B씨에게 174회에 걸쳐 협박성 메시지를 보낸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한 업체를 운영하던 A씨는 2015년 B씨 회사와 주식매매 및 경영권 인수계약을 맺었고 이후 A씨 업체는 B씨 회사에 합병됐다. 그런데 A씨는 자신이 계약을 통해 B씨에게서 1억원을 받기로 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벌였지만 받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A씨는 '금융감독원 등에 민원을 넣겠다. 너는 상장을 못 한다' 등의 메시지를 B씨에게 보내면서 그가 운영하는 회사에 비리가 있다는 취지의 제보를 할 것처럼 태도를 취한 혐의를 받는다.

1심은 "메시지의 내용·횟수로 인해 B씨가 입었을 정신적 고통을 고려하면 A씨의 책임을 엄중히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과정에서 A씨는 국선변호인을 선정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형사소송규칙 17조의2는 국선변호인을 필요로 하는 피고인은 그 사유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내야 한다고 규정한다. A씨는 항소심에 그러한 소명자료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2심은 변호인 없이 A씨만 출석한 상태에서 심리를 진행한 뒤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에게 국선변호인이 필요한 사유가 1심에서 이미 확인됐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규칙 17조의2 중에는 국선변호인을 필요로 하는 사유가 기록에 의해 소명되면 별도의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서 조항이 있다.

A씨의 경우에는 1심에서 자신이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에 해당한다는 소명자료를 제출했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대법원은 "기록상 '현재의 가정 형편상 사선 변호인을 선임하기 어렵다'는 소명이 있다고 인정되므로 원심으로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선 변호인 선정 결정을 해 공판 심리에 참여하도록 했어야 한다"며 "이런 원심의 조치에는 형사소송법 규정을 위반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밝혔다.

차은지 한경닷컴 기자 cha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