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물산은 지난 22일 롯데월드타워 아레나 광장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을 열었다고 23일 밝혔다.15m 높이의 이 트리는 스와로브스키와 협업해 3만여 개 크리스탈로 장식됐다. 트리 좌우에 롯데의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인 '오늘을 새롭게, 내일을 이롭게(New Today, Better Tomorrow)'가 담긴 조형물도 설치됐다.롯데월드타워 높이 555m 외벽에는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빨강, 초록, 하얀색의 조명을 송출해 미디어파사드(LED 조명을 비춰 영상을 표현하는 기법)를 연출했다. 미디어파사드는 다음달 26일까지 롯데월드타워가 보이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즐길 수 있다.롯데월드타워 앞 잔디 광장인 아레나 광장에서는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14분 간격으로 크리스마스 멀티미디어 쇼가 진행된다. 쇼가 진행되는 동안 크리스마스 캐럴에 맞춰 4000여 개의 디지털 눈꽃과 별빛, 은하수 조명이 월드몰 벽면에 연출된다. 특히 올해는 월드몰 남측 및 서측 벽면과 에비뉴엘 상부 벽면의 LED(발광다이오드) 외벽 스크린을 약 5266㎡(1593평) 넓혀 화려함을 더했다.에비뉴엘과 쇼핑몰을 잇는 샤롯데브릿지 하단에는 고보 라이트(GOBO Light·야간에 불빛을 쏴 땅에 글이나 그림을 표현하는 조명장비)를 설치해 광장 바닥에 눈꽃 조명을 연출했다. 아레나 광장 인근에는 조명으로 루미나리에 터널을 조성했다.이병희 롯데물산 커뮤니케이션 부문장은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 시대를 맞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친 모두에게 위로와 희망의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미경 한경닷컴 기자 capital@hankyung.com
“새로운 롯데를 만들어가는 길에 창업주가 몸소 실천한 도전과 열정의 DNA는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그 자산을 바탕으로 새롭고 진취적인 롯데를 이뤄나가는 데 힘을 모아주십시오.”3일 상전(象殿)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롯데가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마련했다. 맨손으로 일본에 건너가 한·일 양국에서 굴지의 기업을 일궈낸 신 창업주의 도전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만큼 탄생 100주기를 맞은 롯데그룹의 의지도 남다르다. “신격호 정신으로 새로운 롯데 만들자”신 창업주의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상전 신격호 기념관’ 개관식에서 “창업주의 정신을 마음 깊이 새기면서 모두의 의지를 모아 미래의 롯데를 만들어나가자”고 임직원에게 강조했다. 신 회장은 “창업주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이곳에서 유지를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책임에 대해 생각한다”며 “우리에게는 ‘오늘을 새롭게, 내일을 이롭게’ 만들어가야 할 사명이 있다”고 당부했다.신 회장은 창업주의 ‘기업보국’ 정신을 임직원에게 강조했다. 그는 “창업주는 대한민국이 부강해지고 우리 국민이 잘살아야 한다는 굳은 신념으로 사회와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기업을 이루고자 노력했다”며 “더 많은 소비자에게 꿈과 희망과 행복을 주는 기업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상전 신격호 기념관은 롯데월드타워 5층에 약 680㎡ 규모로 마련됐다. 기념관에 재현한 신 창업주 집무실에는 ‘화려함을 멀리하고 실리를 추구한다’는 뜻의 ‘거화취실(去華就實)’이라는 문구와 한국 농촌 풍경이 담긴 그림이 걸렸다. 울산 울주군 삼동면 출신인 신 창업주는 일본 집무실에도 농촌 그림을 걸어놓고 항상 고향을 그리워했다.1976~1977년 롯데의 후원을 받은 전 WBA 복싱 챔피언 홍수환 씨는 “도쿄에서 일본의 가사하라 유우라 선수를 이기자 일본 임직원을 모두 사무실에 불러 내 주먹을 보여주며 ‘이 작은 손으로 일본을 이겼다’고 자랑하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대기업 회장답지 않게 공장 점퍼 차림이었고, 집무실에 소가 논을 일구는 한국 민속화가 걸려 있었다”고 말했다. 신격호 회고록 3일 공식 출간신 창업주의 회고록인《열정은 잠들지 않는다》도 3일 공식 출간된다. 회고록에는 그가 고향의 양치기로 일하던 어린 시절, 일본에서의 롯데 창업기와 공격적인 사업 확장기, 고국에서의 대규모 투자 스토리, 평생의 숙원이던 롯데월드타워 건립 뒷이야기 등이 담겼다. 신 회장은 회고록 헌정사에 “아버지의 가장 큰 가르침은 기업은 국민에게 짐이 돼서는 안 되며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가 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평생 조국 경제발전에 보탬이 되고자 한 그 간절함은 롯데의 기업정신이 돼 지금도 임직원 모두에게 계승되고 있다”고 썼다.롯데그룹은 이날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기념음악회에서 다양한 헌정 인터뷰 영상도 공개할 예정이다. 신 창업주의 후원을 받은 바둑기사 조치훈 9단의 형 조상연 7단은 인터뷰에서 신 창업주에 얽힌 일화를 소개한다. 그는 “조치훈 9단이 일본에서 명인 타이틀을 획득한 뒤 한국 정부가 주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으러 올 때 신 창업주가 일등석 비행기표를 끊어 주며 한국까지 동행했다”며 “한국에 도착해서는 ‘내가 데려왔다’고 인터뷰라도 할 법한데 말없이 가버리셨다”고 회고했다.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
‘나는 서울과 부산의 수산시장에 가보고는 깜짝 놀랐다. 시장바닥에 물이 질퍽질퍽했다. 도쿄 쓰키지 시장은 배수구가 따로 있어 손님들이 오가는 통로에는 물기가 전혀 없다. 서울은 도심 가게에조차 시뻘건 녹이 슨 통조림이 쌓여 있었다. 이를 유심히 살펴본 나는 유통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소비자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양질의 물건을 적정가격에 사게 하자는 생각이었다.’신격호 롯데 창업주와 롯데그룹을 저평가할 때 드는 근거 중 하나는 ‘국가경제 기여도가 낮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신 창업주가 사업을 시작할 때 항상 염두에 뒀던 것은 시민 삶의 질, 그리고 국격이었다. 모두가 “한국 수준과 경제 규모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할 때도 신 창업주는 “우리 국민들도 고급 문화를 누릴 권리가 있다”며 밀어붙였다. 국격 생각하며 정상급 호텔 완성호텔업을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강권’ 때문이었다고 신 창업주는 회고한다. 신 창업주는 박 전 대통령이 소공동 반도호텔을 인수해달라고 한 날을 1970년 11월 13일로 기억한다. “긴히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반도호텔 아시죠. 지금 관광공사에서 맡고 있는데 적자 때문에 골칫거립니다. 신 회장이 반도호텔을 맡아 주시지요.”신 창업주는 회고록에서 “호텔업은 손님이 1명뿐이어도 종업원 수백 명이 근무해야 하는 리스크가 큰 장치산업”이라고 규정하면서 “세간에서는 정권으로부터 특혜를 받은 것처럼 바라보지만 당시 롯데의 규모로는 사운(社運)을 걸어야 했다”고 했다.하지만 그는 곧바로 ‘국격’을 떠올렸다. 당시만 해도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아도 묵을 호텔이 변변치 않은 실정이었다. 신 창업주는 “이왕 호텔을 짓는다면 세계 정상급으로 지어 나라의 자존심을 세우기로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신주쿠 게이오플라자호텔을 설계한 일본 가지마건설 관계자 등이 “한국의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객실은 500실 정도가 적정하다”고 했지만 신 창업주는 “호텔 객실 수는 1000실, 높이는 약 40층”이라고 못 박았다. 신 창업주는 서울올림픽을 앞두고도 외국인의 숙소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실 롯데호텔을 빠르게 완성하는 등 호텔업과 국격을 항상 연결지었다. “롯데월드타워는 서울 품격 높이는 사업”신 창업주 평생의 숙원이었던 롯데월드타워와 롯데월드 테마파크 사업의 동기도 ‘이윤 추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롯데월드타워는 1987년 부지 매입부터 2017년 완공까지 30년이 걸렸다. 신 창업주는 사업 이유가 단순한 이윤 추구였다면 30년을 버티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롯데월드타워를 짓는 동안 ‘몇 년이 지나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꽤 많았다.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회수 불가. 이윤 창출 관점에서 보면, 이는 기업인의 역할을 포기한 것과 같다. 나의 셈법은 조금 다르다. 서울의 품격을 높이고 한국의 국격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면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다.”한국을 대표하는 테마파크인 롯데월드 또한 마찬가지다. 롯데월드 건설 과정에서도 여러 반대에 부딪혔다. 겨울철 온도가 매우 추워 테마파크로는 부적절하다는 논리가 대표적이었다. 다른 추운 나라의 사례를 수집하다가 캐나다 에드먼턴에 있는 실내 복합시설에 주목했다. 한겨울에 직접 에드먼턴으로 날아가 테마파크를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왔다. 그는 “에드먼턴에 가니 주말이면 10만여 명이 거대한 유리천장 아래서 테마파크를 즐기고 있었다”며 “황량한 잠실이 꿈의 공간으로 변하는 장면이 어른거려 가슴이 설렜다”고 회고했다.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