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동업한 미용사, 근로자 아냐…퇴직금 안 줘도 돼"
원장과 동업 약정을 맺고 미용실에서 근무하는 헤어디자이너(미용사)는 근로자가 아니므로 퇴직금을 받을 권리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미용사가 근로자인지를 판단한 첫 대법원 판결이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며 대법원 제2부(주심 민유숙)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미용실 원장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충북 청주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A씨는 2005년부터 2018년까지 일한 뒤 퇴직한 미용사 B씨로부터 “4800만원의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고소를 당했다. 퇴직금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만 지급하게 돼 있어 B씨가 A씨 미용실의 근로자인지가 쟁점이 됐다.

A씨는 B씨를 비롯한 여러 미용사와 ‘영업장소 및 시설을 제공하되, 매출은 약정 비율에 따라 배분한다’는 내용의 동업 약정을 맺고 미용실을 운영해 왔다. 취업규칙과 복무규정은 없었고, 미용사별 매출도 달랐다. 이에 대해 B씨는 “동업약정서는 형식적이고 실제로는 근로자였으며, 동업계약서 내용도 모르고 서명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B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과 2심 모두 A씨와 B씨가 각자의 사업을 운영한 별도 ‘사업자’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는 동업약정을 체결하고 미용사들의 매출을 구분해 정산한 다음 매월 미용사별 매출에서 약정 비율에 따른 금액을 분배해 줬을 뿐 기본급이나 고정급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A씨가 업무상 지휘·감독을 했다고 볼 정황도 없고 영업시간과 결근, 지각 등에 대해 감독하거나 제재한 증거도 없다”고 설명했다. 미용사들의 영업시간과 방식, 휴무일 등에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하나의 미용실을 공동 사용하는 동업 관계에서 일종의 영업질서라고 판단한 것이다.

기세환 태광노무법인 대표공인노무사는 “미용업은 개별 능력에 따라 소득과 위상이 천차만별인 직업이라 종속적인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는 현실을 대법원이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미용사의 출퇴근과 근무시간을 철저히 관리하고 위반 시 제재하는 경우 지휘·감독이 인정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번 판결이 미용실업계 전반에 적용된다고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미용업계에 따르면 이용업과 헤어미용업 종사자는 18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진석/곽용희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