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답을 회피한 것을 의사 표시로 간주해 계약을 파기하는 건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계약 상대방의 질문에 즉시 답을 하지 않았다 해도 그것만으로 거절 의사가 분명하게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임차인 A씨가 임대인 B씨를 상대로 낸 계약금 반환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원고 패소 취지로 깨고 사건을 수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A씨는 2016년 3월 B씨의 오피스텔을 2년간 임차하기로 하고 계약금 2000만원을 건넸다. B씨는 잔금 지급일인 4월까지 바닥 난방공사를 해주기로 A씨와 합의하고 이 내용을 계약서에 특약사항으로 명시했다.

이후 난방공사가 쉽지 않다고 판단한 B씨는 A씨에게 “전기패널 공사를 대신 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A씨는 이를 거부했다. A씨는 B씨에게 “바닥 공사는 전기패널 아니면 공사가 안 되는 거죠?”라는 메시지를 보낸 뒤 같은 날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B씨는 A씨의 메시지에 답하지 않았지만 약속대로 바닥 난방공사를 진행해 잔금일 전까지 마무리했다. 이에 대해 A씨는 “B씨가 특약 이행 여부를 묻는 말에 답하지 않아 계약 해지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B씨가 바닥 난방공사를 마무리했지만 이는 계약 해지 이후 상황인 만큼 A씨가 계약금을 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B씨는 “특약이 이행됐기 때문에 A씨가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고 맞섰다.

1·2심은 A씨 손을 들어줬다. B씨가 ‘특약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B씨가 A씨에게 계약금 2000만원과 손해배상액 2000만원 등 총 4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단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B씨가 A씨에게 명백한 거절 의사를 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B씨가 A씨에게 난방공사가 아닌 대안을 설득했고, A씨의 문자에 즉시 답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B씨가 난방공사 이행에 관한 거절 의사를 밝힌 것으로 분명하게 인정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